<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 포스터

▲ <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 포스터 ⓒ 대원미디어,롯데엔터테인먼트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설화 <다케토리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았다. <다케토리 할아버지 이야기><가구야공주><가구야공주 이야기> 등으로도 불리는 <다케토리 이야기>는 구전 문학을 대표하는 요소인 대나무, 날개옷 등을 두루 갖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일본 문학의 뿌리라고 평가받고 있다.

작품이 쓰인 정확한 시대는 아직 밝혀진 바 없으며, 다만 무로마치 시대 초기의 고코곤 천황이 썼다고 전해지는 사본이 가장 오래된 책이라 전해질 따름이다. 헤이안 시대 전기인 890년대 후반에 쓰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로 알려졌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의 한 장면

▲ <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의 한 장면 ⓒ 대원미디어,롯데엔터테인먼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끄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다케토리 이야기>의 어떤 면에 매료되었기에 <이웃집 야마다군> 이후 14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한 것일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원작에서 가장 끌렸다고 밝힌 부분은 가구야공주가 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아버지에게 털어놓는 대목이다. 그런데 원작소설엔 가구야공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무엇이고, 달과의 약속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쓰여있지 않다.

여백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런 수수께끼를 풀면 원작을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가구야공주의 심경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나무에서 나온 가구야공주, 가구야공주를 향한 귀공자들의 구혼, 귀공자들이 구해온 선물, 황제의 구혼, 가구야공주의 고백, 하늘로 올라간 가구야공주의 순서로 구성된 원작 소설에 가구야공주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을 보탬으로써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가능성을 본 것이다.

<반딧불이의 묘><추억은 방울방울><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웃집 야마다군>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 안에서 줄곧 가족을 그려왔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원작이 다루는 가족의 소중함을 살리면서, 공주의 심리 변화를 명확하게 만들고, 여기에 특유의 유머를 덧붙여 설화 <다케토리 이야기>를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로 새롭게 창조했다.

21세기에 <가구야공주 이야기>를 만들면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요즘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그림체와는 거리가 먼 수묵담채화 연상케 하는 그림체를 사용했다. 이미 <이웃집 야마다군>에서 기존 스튜디오 지브리의 화풍과는 다른 방법을 채택했던 감독의 이력을 떠올린다면 낯선 선택만은 아니다.

수묵담채화 풍으로 그려진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화면은 형형색색의 색깔로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고, 인물은 따스하게 그려졌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CG 애니메이션이 활개 치는 시대에 <어네스트와 셀레스틴>과 마찬가지로 셀 애니메이션의 참맛을 만끽하게 해준다. 특히 가구야공주가 주변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묘사한 장면에서 보여주는 화면 구성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성숙한 연출력과 그림체가 어우러진 명장면이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의 한 장면

▲ <가구야공주 이야기> 영화의 한 장면 ⓒ 대원미디어,롯데엔터테인먼트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원작에 없던 어릴 적 가구야공주의 성장 모습을 새로이 추가했다. 애지중지 가구야공주를 키우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공주를 고귀한 아가씨로 만들기 위해 시골에서 수도로 거처를 옮긴다. 시골에 살던 친구들을 보고 싶어하는 가구야공주에게 할아버지는 이제 그녀석들과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원작을 살짝 변형하며 옮긴 마지막 장면과 대구 관계를 형성한다. 가구야공주에게 온 달의 사람들은 어서 날개옷을 입고 더러운 곳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구야공주는 더러움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며,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생기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살아있음을 강조하는 가구야공주는 "난 (새나 짐승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라고 고백한다. 영화는 삶과 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가구야공주 이야기>에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러 간 가구야공주가 모두 떠난, 황폐하게 변해버린 고향을 목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산이 죽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가구야공주에게 남은 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돌아올 것이라 일러준다. 차디찬 겨울을 버티면 봄이 올 거라는 메시지는 니카이도 카즈야가 부른 주제곡 <생명의 기억>의 가사와도 연결된다.

"지금의 모든 것은 과거의 모든 것이라네. 또 만날 수 있다네. 그리운 그곳에서. 지금의 모든 것은 미래의 희망이라네. 꼭 기억하고 있을게. 생명의 기억으로"라는 <생명의 기억>의 가사는 3.11 대지진을 경험한 일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노래와도 같다. 소노 시온 감독이 <두더지>의 마지막 장면에서 "힘내라"를 반복하여 부르짖었던 것처럼 말이다.

살아야 한다는 의지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힘주어 외치는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전쟁의 혼란기에서 꿈과 열정을 불태웠던 인물을 그렸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와 더불어 스튜디오 지브리가 보내는 희망의 편지로 느껴진다. 80대 노감독이 건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으면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는 위로는 아마도 지금 일본인들에겐 더욱 각별하게 다가갔으리라 생각한다.

가구야공주 이야기 다카하타 이사오 히사이시 조 스즈키 토시오 스튜디오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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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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