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 포스터

▲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 포스터 ⓒ 에이원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은 2008년에 웹으로 공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2010년에는 극장판으로 발표되어 아이튠즈 무비 순위에서 3위로 오를 정도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래. 아마도 일본. 로봇이 실용화된 지 오래. 안드로이드가 얼마 전 실용화된 시대"라는 설명으로 시작하는 <이브의 시간>은 안드로이드와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카페 '이브의 시간'에 모인 자들의 사연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의 관계를 다루었다.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은 프로 데뷔 이전부터 계속 실내에서 보여주는 회화극을 중심으로 만들었고, 그런 작업의 집대성으로서 <이브의 시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카페라는 실내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이브의 시간>은 제한된 공간이란 설정에서 연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했으나, 질문의 깊이는 공간의 한계를 가벼이 넘어섰다.

"당신은 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여러 이야기를 하고, 더 이해하고 싶다"는 응답으로 소통을 강조했던 <이브의 시간>은 인간과 로봇을 가족으로 보듬으면서 따뜻하게 마무리 지었다.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에이원 엔터테인먼트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의 신작 <거꾸로 된 파테마>도 인간과 로봇 사이의 관계를 다루었던 <이브의 시간>과 비교하여 이야기의 방향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실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나아가 다음은 문밖에도 나갈 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생각은 <거꾸로 된 파테마>에서 중력이 다른 두 세계에 사는 인물의 이야기로 발전했다.

<거꾸로 된 파테마>는 중력이 뒤바뀐 지하 세계에 살던 소녀 파테마(후지이 유키요 목소리)가 비밀스러운 출구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을 통해 지상 세계의 소년 에이지(오카모토 노부히코 목소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에서 두 세계는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에이지가 사는 지상 세계는 규율과 질서를 지킬 것을 명령한다. 통제된 사회만이 국민의 이상적 생활의 원동력이라 믿는 독재 국가가 에이지가 속한 세계다. 그곳에선 하늘을 보는 행위 자체를 불경스럽게 여긴다. 하늘을 본다는 것은 꿈을 꾸는 행위와 다름없다. 꿈을 꾸는 것은 획일화된 통제 사회에서 금기 사항이다.

파테마가 사는 지하 세계는 어두운 터널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방호복을 입고 살아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였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온화하다. 서로 다른 중력만큼이나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 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던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는 다른 세계를 알고 싶어 하던 파테마와 하늘을 동경하던 에이지를 만나면서 닫혔던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한다.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에이원 엔터테인먼트


<거꾸로 된 파테마>에서 <업사이드 다운>라는 영화가 떠오름은 당연하다. 거꾸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나 다른 중력이 갈라놓은 남녀라는 설정 등은 <업사이드 다운>과 <거꾸로 된 파테마>를 표절 논쟁에 빠져들기에 충분한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두 영화는 중력이 다른 세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다.

<업사이드 다운>는 계급 사회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는 현격한 경제적인 차이를 보이는 다른 중력 세계를 통해 월가 시위로 대표되는 경제적 박탈감을 감지한다. 이런 사회적 징후를 반영한 다른 영화들, 시간이 화폐로 통용되는 사회가 등장하는 <인 타임>이나 자신이 속한 구역의 개념을 부각하는 <헝거게임>, 돈이 없으면 목숨조차 지킬 수 없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 <더 퍼지>처럼 <업사이드 다운>도 사회의 모순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거꾸로 된 파테마>는 다른 두 세계의 사람이 함께 꾼 꿈을 이야기하며 미래를 강조한다. "네가 만난 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과 다른 세계를 적대시하는 사람들과 달리, 파테마를 구하기 위해 손을 잡은 사람들은 서로가 만든 두 세계 사이의 장벽을 함께 넘는다. 예전엔 이어졌었지만, 어느 순간 막혔던 통로는 이들은 노력으로 다시금 열린다.

이런 <거꾸로 된 파테마>의 내용은 3.11 동일본 대지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린 한 세계에서 산다"는 극 중 대사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꿈을 의미한다. 서로 갈라진 하늘과 땅을 이어나가는 파테마와 에이지의 모습은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이 바라는 미래상이다. 미야자기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면, <거꾸로 된 파테마>는 두 세계의 공존을 통해 치유와 희망을 노래한다.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거꾸로 된 파테마> 영화의 한 장면 ⓒ 에이원 엔터테인먼트


현재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극장용으로 만들어진 기획과 각본의 영화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극장가에 걸리는 상당수의 작품은 만화를 원작으로 삼거나,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인 실정이다. <늑대아이>의 호소다 마모루와 <언어의 정원>의 신카이 마코토 정도만이 고군분투하는 현실에서 요시우라 야스히로의 행보는 값진 의미를 지닌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싸구려 작품을 남발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단비처럼 내린 <거꾸로 된 파테마>는 지금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치유'와 '희망'이라는 소중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 노래는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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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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