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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렇게 기자들이 몰려오는가. 그게 아니라면 직접 써라. 당신의 사는이야기를.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렇게 기자들이 몰려오는가. 그게 아니라면 직접 써라. 당신의 사는이야기를.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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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를 왜 써야 하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합니다. "아무도 당신 이야기를 써주지 않으니까요". 박근혜 대통령이나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은 사는이야기를 직접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분들은 어디 가서 뻔한 얘기 한마디 해도 열심히 받아쓰는 기자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국민, 시민, 민중, 서민 등으로 '통칭'되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를 직접 써야죠.

우리들의 삶에는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1000만'이라는 숫자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1000만 비정규직의 인생을 진정으로 알리려면 그들의 삶을 각자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진정성을 담는 사는이야기, 김준수 시민기자의 글 대한민국 '20대 고졸', 이렇게 삽니다 역시 그런 글이었습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글쓴이는 2004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온 뒤 등록금 때문에 복학을 못하고 제적당했다는 것부터 이야기합니다. 이어지는 그의 '분투기'. 20대 초반은 군대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육체노동도 망설임 없이 해냈습니다. '막노동'부터 푸드코트에서 접시 닦는 일, 휴대폰 케이스 공장 일 등. 하지만 공장에서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호주로 떠납니다.

호주에서 보낸 2년. 최저임금이 한국의 4배 가까이 돼서 아르바이트만 하면서도 숙식을 해결하고 취미생활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0년 20대 후반이 돼 한국으로 돌아온 뒤, 대학 졸업장이 없는 글쓴이는 모든 것을 '0'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20대 초반에는 면접 때마다 젊어서 좋다며 반기던 인사담당자의 표정은 이력서 나이 란에 적힌 숫자가 늘어갈수록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대학교는 왜 졸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 하나는 늘 한결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이력서를 넣어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대졸자를 원하는 곳이 많고, 고졸 학력자를 찾는 곳은 위험하고 힘든 일자리뿐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런 일자리는 대부분 최저임금수준의 급여를 줄 뿐이었고요. 하지만 글쓴이는 열심히 일합니다. 보안업체, 인쇄소, 서점, 언론사 녹취록 알바, 임상실험 피실험자 알바, KTX 잡지 교체 등, 3년 동안 무려 20가지 이상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글쓴이는 자신의 20대는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고 정의합니다. 세상은 청년 구직자들에게 '눈을 낮추라'고만 자꾸 말하는데, 현실은 "내 몸을 낮추어 바닥에 바짝 엎드리는 정도"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글의 마무리는 연애 이야기입니다. 취업이 연애와 같다면 지금 자신의 연애는 "너무 일방적인 나머지 눈물겨운 짝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더 약한 쪽이 권리를 착취당하는 씁쓸한 '을의 연애'를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할까"라는 마지막 탄식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사회·경제 문제 여러 개를 한 편의 '사는이야기'로

김준수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대한민국 '20대 고졸', 이렇게 삽니다>
 김준수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대한민국 '20대 고졸', 이렇게 삽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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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회면이나 경제면에서 읽을 법한 여러 문제들이 한 편의 사는이야기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등록금 문제, 학벌 문제, 청년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 등록금이 몇 퍼센트 올랐고, 최저임금 인상률은 얼마나 되고, 하는 기사들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사들은 정보와 지식을 줍니다. 반면 김준수 시민기자의 글은 그런 기사들이 죽었다 깨도 줄 수 없는 '공감'을 팍팍 던져줍니다.

실제로 등록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학벌 없는 청년구직자로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으로, 그 숱한 '문제'들의 주인공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줍니다. 통계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한 편의 사는이야기 글 속에 담겨 있는 겁니다. '사실'을 쓴다는 것은 사회면, 경제면 기사와 다를 바 없지만, 그것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짠한 감동까지 전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시종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자신의 힘든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담담함을 유지한 것은 참 좋습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감정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고 과장됐다면 읽기 불편했을 것입니다. 너무 불쌍해 보이기만 한다거나, 억지스럽게 현실을 긍정하려 한다고 보이면 독자들은 글쓴이와 공감하기가 힘듭니다. 사는이야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감정을 앞세우는 것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글쓴이는 담담하게 자신의 20대를 돌이켜보면서 중간 중간 중요한 '장면'들은 잊지 않고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귀국 이후에는 주로 보안업체에서 일했다. 밤낮근무를 교대로 해야 하는 일은 변함이 없었고, 근무기강을 위해서 말할 때 '다나까'를 쓰는 분위기 때문에 마치 군대에 다시 온 기분이 들었다.

특정지역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통제'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온갖 항의를 듣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고함과 욕설을 듣고 뺨을 맞는 일도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엔 의식불명인 환자를 옮기느라 손이 피범벅이 된 경우도 있었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냥 '몇 살 때 이런 일 했다, 또 몇 살 때 저런 일 했다' 하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독자들의 눈앞에 그려지는 게 없죠. 특히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짤막하게라도 중요한 장면들을 그려줘야 독자들은 그것에 몰입하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없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대부분 말 그대로 '언급'해주는 선에서 짧게 짧게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글 한 편을 다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없는 것입니다. 글 전체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20쪽 정도입니다. 글의 후반부 다섯 문단은 글쓴이가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논평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좀 줄이고 자신의 '일' 이야기 중에서 한두 장면을 위에 인용한 대목처럼 조금 더 상세히 그려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김준수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대한민국 '20대 고졸', 이렇게 삽니다.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이야기해준 덕분에 세상의 문턱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의 삶을 생생하게 알게 됐습니다. 글쓴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청년들에게는 더 큰 공감으로 다가왔겠죠. 그 공감이, 높기만 한 것 같은 세상의 문턱을 깎아 없애는 소중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흔한 뉴스 속에서 '사람'을 배우게 해주는 사는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요점 정리] 신문기사에 없는 '사람', 사는이야기로 그려라!


태그:#사이다, #사는이야기, #사는이야기다시읽기, #김준수,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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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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