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는이야기 다시 읽기(사이다)'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이 오마이뉴스에 최근 게재된 '사는이야기' 가운데 한 편을 골라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특산품인 사는이야기의 매력을 알려드리고, 사는이야기를 잘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글의 조건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중학생인 자녀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와 증언이 접수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학생인 자녀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와 증언이 접수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옥상에서 발견된 담배꽁초. 할아버지가 피우는 담배와 종류가 다르다. 한밤중 옥상에 올라가는 것이 가끔 발견된 중학교 3학년 큰아들. 그렇다면 과연 담배꽁초의 주인은?!

이거 참 심각합니다. 중학생인 자녀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의심되는 증거와 증언이 접수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3 아들 흡연에 대처하는 법... "쿨한 엄마"라네요>(8월 26일 게재)를 쓴 문경자 시민기자처럼만 할 수 있다면 '자녀교육의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글쓴이도 아들의 흡연 혐의(?) 제보를 듣고 "순간 당황하며 그럴 리가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말았다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저 같은 사람과는 많이 다르네요. 저라면 일단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문초'를 시작했을 것 같거든요.

글쓴이는 일단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부터 열심히 자문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친구들한테서 과거에 그들이 담배를 피우다 들켰을 때 "그냥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글쓴이는 마음 먹습니다. 자신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봐야겠다고 말이죠.

그날 저녁 드디어 마주 앉은 모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상현아, 나 너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는데, 엄마한테 해줄 말 없니?"
"엄마, 뭐?"
"니가 비밀이었으면 하는 그 이야기. 나는 직접 듣고 싶은데…."
"엄마한테 비밀은 없는데?"

긴장감이 전해집니다. 조금 더 이어지는 탐색전을 보면서 독자들은 '엄마는 뭐라고 운을 뗄까' '아들은 뭐라고 변명할까' 하고 호기심을 한껏 느끼게 됩니다. 탐색전이 끝나고 글쓴이의 입에서 드디어 '담배'라는 말이 나오자, 아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씨익 웃으며 혐의를 인정합니다. 담배를 왜 피운 거냐는 글쓴이의 질문에 아들이 "호기심" 때문이라고 대답하자, 글쓴이는 놀랍게도 '감사 인사'를 합니다.

"근데 엄마는 그 호기심이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넌 그게 지금이니 조금 고맙기는 하다."

혼내지 않느냐며 당황하는 아들에게 글쓴이는 "담배 사러 떳떳하게 편의점 드나들 수 있을 때, 그때 피웠으면 한다"고 타이릅니다. 그러자 아들은 미안하다며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리고 글쓴이에게 "근데 엄마…. 이게 다야?"라고 묻습니다. 글쓴이가 "학교에서 들켰으면 넌 반쯤 죽었을 테지. 왜, 반 죽여줄까?"라고 되물으니, 아들이 답합니다.

"엄마, 쿨해."

글쓴이와 아들의 대화가 이 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 부분의 분량이 길어서 좋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의 '장면'으로 잘 그려졌다는 점이 좋습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아마 독자들은 이 대화 장면이 먼저 기억날 것입니다. 사는이야기를 쓸 때는 이처럼 하나의 대표적인 장면을 독자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기는 것이 중요한데, 이 글은 그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멋진 엄마와 솔직한 아들, 마무리도 정말 훈훈합니다. 혼내고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서, 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가는 글쓴이의 내공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보니 글쓴이가 속으로 삭이고 삭인 분노(?)가 유쾌하게 들여다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준 용돈으로 담배 사놓고 버린 게다. 아, 아깝다. 내 돈. 이 녀석, 용돈 확 줄일까 보다.

사는이야기의 미덕은 '공감'과 '재미'... 두 가지 다 담은 좋은 글

8월 26일 게재된 문경자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중3 아들 흡연에 대처하는 법... "쿨한 엄마"라네요>
 8월 26일 게재된 문경자 시민기자의 '사는이야기' <중3 아들 흡연에 대처하는 법... "쿨한 엄마"라네요>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쿨한' 엄마의 '반전 뒤끝'에 낄낄 웃음이 납니다. 글쓴이는 아들에게만 쿨한 게 아니라 독자들한테도 참 쿨합니다. 대화가 끝나고, 구구절절 아들에게 하는 글쓴이의 잔소리가 길어지거나 독자에게 하는 논평(자식들과 대화할 때는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는 식의 이야기)이 주절주절 나왔다면 글을 망칠 뻔했습니다. 재치 있는 문장으로 독자의 긴장을 탁 풀어주고 글을 맺은 것. 이 글에서 가장 좋게 본 부분입니다. 글을 쓸 때는 이렇게, 끝까지 독자와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듣는 이'의 관심을 고려해야 합니다.

시원하게 글이 읽혀서 좋습니다. "둘째도 엄마가 멋있단다" "그러자 큰아들이 '엄마, 진짜 부끄럽고 미안해'라고 말했다" "큰아들이 버린 담배를 봤다" "두 개피밖에 안 피웠던데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식으로 비교적 간결하고 단순하게 문장을 쓴 덕분입니다. 한 번 읽은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드는 일은 독자한테 큰 실례거든요. 복잡하게 꼬인 문장이나 지나친 꾸밈말 등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는이야기의 목적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짧고 단순한 문장일수록 이야기를 쉽게 전달합니다.

전날 밤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벌어진 일들을 썼는데, 있어야 할 얘기만 있고 없어야 할 얘기는 없습니다. '제보를 들었다' → '자문을 구했다' → '대화로 풀었다'는 세 덩어리의 이야기로 글을 구성하며 글의 하이라이트에 빨리 도달할 수 있게 합니다. 불필요하게 초반에 변죽을 울리거나 중간중간 구구절절 논평을 늘어놓지 않는 만큼, 독자들은 이 글의 알맹이인 엄마와 아들의 대화에 더 쉽게 집중하게 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대화로 갈등을 풀어가는 상황은 눈에 보이게 충실히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살짝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글쓴이의 '마음속 갈등'인데요, 처음의 당황하던 마음에서, 대화로 풀겠다는 '쿨한' 마음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꼼꼼히 설명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들과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마음의 변화'거든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조금만 더 설명해줄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7월 5일, 퇴근하고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제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중학교 3학년 '큰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같다는 이야기.(줄임)

"우리 집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옥상이나 마당에서 발견된 꽁초를 보면 '할아버지' 담배는 아니더라. 가끔 한밤중에 '큰아들'이 옥상에 올라가는 걸 봤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 더 말씀드릴까요? 위에서 인용한 부분(작은따옴표는 제가 친 겁니다)을 보시면 '할머니' '큰아들' 하는 낱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글쓴이의 할머니인지 글쓴이 아들의 할머니인지, '아들'은 할머니의 아들인지 글쓴이의 아들인지 좀 알쏭달쏭하게 돼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번 읽은 문장을 두 번 읽지 않게 해줘야 독자가 글을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요렇게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신경 쓴다면 독자들을 더 편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은 '장면'에 있습니다. 글쓴이와 아들이 나눈 대화를 충실히 보여줌으로써 장면을 잘 살렸고, 독자들이 그 장면에 몰입해서 같이 공감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보여준 재치 역시 좋았고요. 훈훈한 웃음 속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공감을 전해주는 이야기. 사는이야기의 미덕은 공감과 재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글이네요.


태그:#생활글, #사는이야기, #삶글, #비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