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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쳥(NARA) 자료실 내부. 전 세계 각종 귀중한 정보 기록물들이 이 문서상자들에 담겨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쳥(NARA) 자료실 내부. 전 세계 각종 귀중한 정보 기록물들이 이 문서상자들에 담겨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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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여파

2007년 2월 하순, 내가 3차로 내셔널아카이브(NARA)를 찾아갔을 때 큰 변화가 있었다. 금세기로 들어온 뒤 미국도 장기불황의 여파로 아키비스트(학예사)들이 상당수 구조조정당해 1, 2차 방미 때 익힌 몇몇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아카이브 열람일도 주당 하루가 줄어들었고, 개관시간도 대폭 단축되었다,

2005년 11월 하순, 2차 방문 때까지만 해도 주중 3일(월, 수, 금)은 밤 9시까지 열람할 수 있었고, 토요일에도 오후 4시까지는 전날 미리 신청해둔 문서상자는 열람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방미 때 주중 닷새는 모두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열었고, 토요일은 아예 개관조차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아카이브에 갔다. 열람시간과 개관일 단축 때문에 자료수집에 절대시간이 부족했다. 첫 주말은 숙소에서 혼자 우두커니 보냈다. 미국은 어디나 대중교통이 발달치 않아 자기 승용차가 없으면 매우 불편했다. 나는 승용차는커녕 운전면허증도 없기에 고 선생이 오지 않는 주말은 발이 묶였다. 그래서 주말에는 숙소 언저리만 맴돌거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텔레비전만 보니까 몸부림이 났다.

이런 가운데 아카이브 자료실에서 찾은 사진 한 장 때문에 마침내 김준기 아저씨를 찾게 했고, 그 결과 천만 뜻밖에도 주말에는 그를 만나기로 했다. 한국전쟁 직후 인민군 출신 아저씨와 마을 코흘리개 소년이 반세기 만에 워싱턴디시에서 상봉하게 될 줄이야.

워싱턴 미국 국회의사당
 워싱턴 미국 국회의사당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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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혼 원인

2007년 3월 3일 토요일 오전 10시 55분, 고동우는 내 방 초인종을 울렸다. 그는 미국시민답게 시간을 늘 칼같이 지켰다. 아니 늘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고 선생님, 저 때문에 주말에도 쉬지 못하시고."
"이게 쉬는 겁니다. 솔직히 나이가 들면 대부분 부인은 날마다 남편이 밖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지요."

사실은 나도 그런 듯했다. 그래서 답사를 핑계 삼아 팔자 좋게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을 헤매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황혼이혼이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대체로 남편이 퇴직한 뒤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부인들이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저희 할머니는 늘 그러셨지요. '남자들은 그저 밥 한 술 먹고 집을 나가 해거름 때 돌아와야 한다'고요."
"그건 아마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을 겁니다. 그저 남자는 늙으면 인기가 없어요. 아마 다른 동물들도 수컷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수컷은 태어나자마자 살처분되지요."
"그럼요. 식용 고기 값도 암컷이 더 비싸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전경.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전경.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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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날 취재용 가방에 노트북도 챙겼다. 김준기 아저씨의 한국전쟁 체험담, 특히 포로수용소 생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려면 노트북에 저장된 그때의 사진을 보여드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준비가 철저합니다."
"그래야지요. 나에게는 오십 년 만에 만나는 대단히 귀중한 분입니다. 언젠가 제 작품 속에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아무쪼록 좋은 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말이라 워싱턴디시로 가는 길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동안 이곳에 1차, 2차 두 차례 60여 일 동안 머문 탓인지 실버스프링, 우드리지, 포토맥리버, 495번 고속도로, 95번 고속도로 등 지명도, 지형도 눈에 다소 익었다. 하지만 워싱턴디시 외곽은 온통 숲이라 워싱턴디시 일대 전체 지리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국군 헌병이 카빈소총을 든 채 소년 인민군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다(1950. 8. 9.).
 국군 헌병이 카빈소총을 든 채 소년 인민군 포로들을 감시하고 있다(1950. 8. 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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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옥

용문옥은 워싱턴디시 케이 스트리트에 있었는데 겉보기에도 우아해 보였다. 우리가 용문옥에 들어가자 지배인은 두 사람을 확인하고는 곧장 특실로 안내했다. 용문옥 홀 테이블에는 대부분 미국인이 앉아 있었고, 간혹 한국인도 보였다.

"박 선생!"
"오랜만입니다. 준기 아저씨, 김준기 회장님!"
"회장은 무슨, 기냥 아저씨라고 불러요. 님자와 나 사이에는 기게 더 편해."
"그럼, 저에게도 박 선생이라 하지 말고,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기럴 수는 없디. 환갑을 넘긴 작가 선생을 보고 어릴 때 이름을 부르다니. 작가 선생이 얼매나 훌눙(훌륭)한 분이신데. 서구사람들은 최고 지성인으로 치디. 내레 박 선생이 아저씨라고 부르니까 친밀감두 있구, 듣기 더 좋아 기래. 내레 회장이란 말을 하두 많이 들어 이제 아주 신물이 나."

김준기 아저씨는 머리만 하얗게 희어졌을 뿐, 전체 모습은 옛날 그대로였다. 우리는 악수를 하다가 곧 서로 부둥켜안았다. 

"무턱, 반갑네."
"워싱턴에서 아저씨를 만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회장님!"
"아, 예. 고 선생님."

두 사람은 안면이 있는 탓으로 반갑게 인사했다. 

"이렇게 만날 줄이야."
"기러게 말입네다. 세상은 참 좁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네요."
"우리나라 사람은 한 사람만 건너면 다 안다고 하더니…."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을 받고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1950. 9.).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배식을 받고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1950. 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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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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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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