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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로수용소(1951. 2. 26.)
 부산포로수용소(1951. 2. 26.)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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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나는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 볼티모어가(街)에 있는 '데이즈인' 숙소에서 '릿츠' 비스킷과 '허쉬' 초콜릿을 안주삼아 와인을 마시며, 정길 고종형이 들려준 김준기 아저씨의 인생유전 이야기를 되새김질했다. 그 뒤 김준기 아저씨는 어떻게 됐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수첩에서 정길 형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이얼을 눌렸다.

"누구신교?"
"형님, 저 상민입니다."
"반갑다, 동생. 그래 어데고?"
"미국 워싱턴 옆 메릴랜드 주입니다."
"뭐, 미국이라고? 그런데도 전화 감이 아주 좋네. 그래 우짠 일이고?"
"옛날 형님 앞집에 살았던 가축병원 김준기 아저씨 소식이 궁금해 전화드린 겁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카더니, 동생이 갑자기 준기 그 사람 소식은 와?"

"제가 요새 이곳 미국워싱턴 근교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살펴보는 중입니다."
"그래?"
"오늘 여기서 인민군 포로사진들을 보니까 문득 어린 시절 가축병원 김준기 아저씨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그래 보자, 언제 적 이야기고. 육이오가 1950년도에 일어났고, 1953년에 휴전이 됐고, 준기 그 사람이 구미에 온 때가 휴전 후 두어 해 지났으니까 아마 1956년 전훈데 벌씨로 50년이 더 지났네. 그 당시 가축병원 김교문 수의사는 구미를 떠나 대전 충남대학에서 정년퇴직한 뒤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그 부인도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준기 그 사람이 포로가 된 이야기까지는 아는데, 그 다음 이야기는 잘 모르겠는데…."
"저도 언젠가 형한테 거기까지는 자세히 들었지요."

재미동포 김준기

메릴랜드 주립대학
 메릴랜드 주립대학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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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가? 김교문 교수 아들 김진우 씨가 아랫구미에서 치과를 하고 있는데 몇 해 전에 치료하러 갔다가 김준기 그 사람 안부를 물었더니, 요새 미국 엘에이 어느 병원에 있다카더라. 준기 그 사람이 나보다 다섯 살 더 많았으니까 살아있다면 일흔 서넛 됐을 끼다. 요새는 모두 오래 사니까 아마 십중팔구는 살아있을 끼다. 준기 그 사람 인생이 참 기구하다."
"압니다. 그래서 저도 형한테 그분 안부를 묻는 겁니다."

"그래, 작가에게는 아주 좋은 글감이 될 끼다. 내 지금 바로 이 전화를 끊고, 치과로 전화를 걸어 준기 그 사람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아봐 줄 테니까 니 미국 전화번호 알키 도고."
"형님, 저는 지금 전화카드로 통화하고 있는데, 아직 통화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제가 거는 게 전화요금도 적게 들고 편할 겁니다. 30분 뒤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나는 전화를 끊고, 정확히 30분이 지난 뒤 정길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그래 나다. 참 세상 마이 좋아졌다. 미국에 있는 사람하고 이레(이렇게) 빨리 서로 소통이 되다니…. 조금 전에 진우 그 사람하고 통화했다. 그 사람 말이 김준기씨는 요새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다 카네."
"네에? 그렇다면 지금 제가 있는 곳과는 멀지 않습니다."
"그라믄 잘 됐다. 이번 기회에 준기 그 사람 꼭 만나보고, 거기서 우째(어째) 사는지 나중에 귀국해 그 이야기 함 들려도. 그 사람 만나면 내 안부도 꼭 전해라."
"그럼요, 전하겠습니다. 형하고는 얼마나 친했습니까."

"그라이만. 준기 그 사람 우리 집 앞 가축병원에서 혼자 자취하며 살았는데 그때는 한집 식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아이가. 특히 돌아가신 어무이가 그 사람 성실하고, 이북에서 혼자 내려와 산다고 불쌍하다며 디기(몹시) 챙겼다. 그래서 별난 반찬 만들면 내 편에 한 쟁반 따로 담아 보냈다. 우선 그 사람 전화번호부터 받아 적어라."
"잘 알겠습니다. 부르세요."
"1-301-807-37**이다. 정말 참 세상 좋아졌다. 그 먼 미국이 옆집처럼 가까워지다니."
"그러게요. 저도 김준기 아저씨 전화번호를 이레 금방 알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귀국한 뒤 자세한 소식 전하겠습니다."
"잘 알았다. 준기 그 사람 참 진국이데이."
"형님, 잘 알았습니다. 그만 끊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헬로우"

나는 반가운 마음에 김준기 아저씨에게 곧장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늦은 밤이라 참았다. 이튿날 아침시간은 내셔널아카이브(NARA)에 출근 준비로 바빴고, 또 오전시간은 새로 신청한 상자의 사진을 검색하는 일로 쫓겼다.

그날 점심시간 아카이브 카페(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고동우에게 김준기 아저씨 이야기를 했다. 나는 미국 체류 중 전화를 할 때는 가능한 한 그를 곁에 두었다. 상대방이 나를 초대하거나 내 숙소로 찾아오고자 할 경우에는 그곳 지리에 밝은 고동우에게 곧장 전화를 건넸다. 그러면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 

하지만 내셔널아카이브 구내는 손 전화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도 실내정숙과 보안을 위해 이동통신 전파를 방해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식사 후 건물 밖 산책길에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김준기 씨입니까?"
"누굽네까?"
"저는 한국에서 온 박 상 민입니다."
"박상민?"
"네, 구미가축병원 앞집에 살았던 정정길 외사촌 동생 박상민입니다."
"상민이?"

갑자기 소리가 커졌다.

"세상 참 좁아뎟구만"

"님자(임자)가 요기는 웬일이야?"
"마, 그래 됐습니다."
"메라구? 지금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요?"
"메릴랜드 주립대학 근처 내셔널아카이브에서 전화합니다."
"기래? 반갑네. 거기는 무슨 일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어제 이곳에서 그때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생각나 구미에 사는 정길 형한테 전화로 물어 이 번호를 알았습니다."
"그래, 세상 참 좁아뎟구만. 정정길 그 사람 무고하신가?"
"그럼요. 아저씨 안부 단디 전합디다."

"머? '단디'라는 말 오랜만에 들으니 참 반갑네. 내레 얼투(얼추) 듣기로 님자는 서울에서 교편생활한다고 던해(전해) 들었디."
"네,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퇴직했습니다."
"발쎄(벌써) 기렇게 됏나?  아무튼 반가워. 님자가 요기에 오다니."
"그래 말입니다."

"옛날 생각이 문득 나네. 가축병원 마당 평상에서 님자와 같이 장기도 여러 번 두었고, 정길이 그 사람과 겨울밤 덴지(전지, 플래시)로 토가(초가)지붕 터마(처마) 둥디(둥지)의 참새를 잡아 때 님자가 돌돌(졸졸) 따라다니고 그랬디."
"네, 그랬지요."
"이번 주말 시간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기럼, 우리 농문옥으로 오디. 우리 농문옥은…"
"잠깐 기다리세요. 저와 같이 일하는 고 선생님을 바꿔 드리겠습니다."
"알았네."

나는 손 전화를 곧장 고동우에게 건넸다. 고동우는 잠깐 대화를 나눈 뒤 손 전화를 돌려주며, 당신도 김준기씨를 잘 안다고 했다. 그 용문옥은 미국 동부 워싱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집으로, 당신도 이따금 가족들과 그곳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가 토요일 점심시간에 찾아가기로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김준기는 워싱턴디시 케이(K) 스트리트에서 용문옥이라는 한식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조종'은 너를 위해 울린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산책로(2005. 12. 6.).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산책로(2005. 12. 6.).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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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우는 영문학자답게 아카이브 산책길을 앞장서 걸으며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명상 17>의 한 대목을 나직이 읊었다.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어떠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축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누가 죽었기에 조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결코 사람을 보내지 말라.
조종은 너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까.)

"이 시에서 보듯이 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사람은 인류의 한 분자로 모든 사람의 삶이 서로 연결돼 있지요. 시인 존 던은 심지어 낯모르는 사람의 죽음까지도 자기 삶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지요. 용문옥 김준기 회장이 인민군 포로 출신으로 한때 박 선생 고향에서 살았다고 하니, 참 세상 그물코처럼 얽혀 있습니다. 김 회장은 미주 동포사회에서 매우 성공한 인물로, 우리 한인동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아, 네. 정말 세상 좁군요. 김준기 아저씨가 미제(미 제국주의)를 타도한다고, 인민군 전사로 내려와 미국 수도 워싱턴디시 한복판에서 한식집 주인으로 성공할 줄이야. 그야말로 뽕나무밭이 바다가 된 듯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그렇구먼요. 사람의 앞날은 그 누구도 모르지요."

내셔널아카이브 경내 산책길은 우거진 숲으로 아주 쾌적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자료조사자들이 일하다가 잠시 머리를 잠시 식히라고, 이렇게 쾌적한 산책로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사실 서류와 사진을 검색하는 일은 피로도가 몹시 심했다.

철조망 앞의 한 국군 특무상사로 전선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1950. 10.)
 철조망 앞의 한 국군 특무상사로 전선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1950. 10.)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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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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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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