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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네 번째로 팔금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노동의 갯들 너머 거친 바다로 여객선이 지나가고 있다.
 노동의 갯들 너머 거친 바다로 여객선이 지나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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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에서 출발한 철부선이 팔금도에 도착했지만 내리는 사람은 고작 두 명에 불과하다. 철부선에 탄 여객들의 태반은 육지로 나가는 길. 배 갑판을 가득 메운 자동차 역시 모두 목포로 상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섬에서 섬으로 가는 이들은 예전처럼 많지 않다. 섬과 섬이 어울려 하나의 생활경제권을 꾸리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주민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섬들끼리의 생활경제권은 점차 약화됐다고 이야기한다.

섬에선 생수 한 병 안 사는 도시것들

이제 섬사람들은 섬에 살아도 생활은 도시에서 한다. 아프면 도시 병원으로 나가 진료를 받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도시의 대형마트에서 산다. 아이들은 도시 학교나 학원으로 내보내 공부를 시킨다.

이런 현상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육교가 놓아지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도시는 섬의 사람과 자원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한때 17만4569명이 살았던 신안군의 72개 유인도엔 이제 겨우 4만 명이 넘게 살고 있다.

"자가용을 운전해 다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온 도시인들이 남기는 거라곤 쓰레기뿐"이라는 한숨 섞인 말들이 섬마다 가득하다. 현란한 모텔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섬마을 민박집에서 자지 않는다. 먹을거리는 도시의 마트에서 이미 다 사와 섬에선 생수 한 병조차 사 마시는 경우가 드물다. 섬은 도시에 모든 것을 내주고 있지만 도시는 섬에게 쓰레기와 한숨만을 주고 있는 것이다.

팔금도 서근마을엔 십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벼가 익어가는 논 곁에 사람 떠난 빈집이 누런 황토살을 드러내고 있다.
 팔금도 서근마을엔 십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벼가 익어가는 논 곁에 사람 떠난 빈집이 누런 황토살을 드러내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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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금도 서근등대 찾아가는 길. 바다가 시작하기 전 땅의 끝을 지키는 것은 다른 나무 아닌 소나무다.
 팔금도 서근등대 찾아가는 길. 바다가 시작하기 전 땅의 끝을 지키는 것은 다른 나무 아닌 소나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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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금도 서근등대를 찾아가려면 우선 서근마을에 들어서야 한다. 서근마을엔 십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다. 서른 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은 논을 경작하거나 갯일을 하며 소득을 올린다. 서근마을에서 서근등대까지는 약 2.5km. 논과 바다가 나란히 이어지는 외딴 마을의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다.

지주식 김양식장이 펼쳐진 바닷가엔 여름 휴가철인데도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는다. 거친 모래와 군데군데 자갈밭이 물놀이하기엔 적합하지 않아서다. 관광객 한 명 찾지 않는 거친 바다엔 섬사람들의 노동과 생활이 온전히 스며 있다. 낙지를 잡고, 굴을 따며 김을 기르고….  

그러나 힐링에 목마른 도회지 사람들은 생활과 노동이 겹쳐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형수술로 치장한 배우처럼 매끈한 풍광이 있는 바다. 그저 잊고 싶을 뿐이고, 그저 떠나고 싶을 뿐이다.

빨간 등대 하얀 등대,  다 이유가 있었네

도시사람들은 거친 바다를 찾지 않는다.
 도시사람들은 거친 바다를 찾지 않는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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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잊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떠난 길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쳇말로 어설픈 힐링은 몰핀과 같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겠다며 자꾸 길을 나서지만 그 치유라는 것은 순간의 마취이자 잠깐의 망각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의 갯들 너머 다도해로 여객선이 지나간다. 100년 동안 한국에선 여객선의 야간 출항이 금지되었다. 생사를 다투는 사단이 벌어져도 섬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섬사람들은 이중삼중으로 고립되고 봉쇄되었다. 신안군의 노력 덕분에 100년 만에 밤에도 여객선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여객선이 다닐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새로운 시간대가 섬에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밤에도 여객선이 다닐 수 있게 되자 일몰 이후엔 운행하지 않던 섬마을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충원되고, 주유소 운영시간이 연장되고, 밤에 물건을 사러 가는 이도 생겼다. 등대도 더욱 바빠졌다.

팔금도 서근등대에 노을이 물들고 있다.
 팔금도 서근등대에 노을이 물들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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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근등대는 무인등대다. 등대 색깔이 흰색인 것으로 보아 항로 왼쪽에는 암초 등 장애물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다니라는 뜻이다. 또 배가 부두에 접안할 경우엔 부두가 오른쪽에 있다는 표식이다.

빨간색 등대는 항로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다니라는 뜻이고, 부두에 접안할 경우엔 부두가 왼쪽에 있다는 뜻이다. 노란색 등대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선박들에게 주변 해상을 주의하라는 신호다.

살면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좋은 '멘토'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두렵고 쓸쓸하고 확연하게 끝이 보이는 인생항로에 깜빡거리는 빨갛고 희고 노란 등대. 나의 등대는 어디에 있을까.

다도해에 노을 물들고 등대는 빛을 내보내기 시작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내야 마침내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는 존재들. 그들이 보내는 위무의 타전을 그대, 온전히 받으시라.

"너의 눈이 천리를 안을 수 있다면

너의 눈이 천리를 안아
내 언저리에 둘러 앉힐 수 있다면

우리 가리
천리 함께 가리"

- 강은교 <등대의 노래>


태그:#팔금도, #등대, #힐링, #멘토, #여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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