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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웅이란 이름을 각인했던 계기는 2000년에 개봉한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라는 엄청나게 긴 제목의 영화였다. 27자를 사용하여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긴 제목으로 등재된 이 영화는 긴 제목만큼이나 '매춘' '토막 살해' 등 어휘 선택도 과감했다. 아마도 요즘의 경직된 영등위의 분위기에선 제목부터 제한상영가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영화 <콩가네>의 포스터

영화 <콩가네>의 포스터 ⓒ (주)이웃엔터테인먼트

이야기 역시 놀라웠다. 대학로에서 몸을 팔던 여고생이 담임선생에게 토막살해 당하고 나서 공포의 살인 기계로 부활하여 복수한다는 황당무계한 전개라니. 남기웅 감독은 여기서 나아가 성기 대신 흥분하면 총알이 발사되는 성기총을 장착한 남자가 복수에 나선다는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를 2006년에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허무맹랑한 B급 정서는 소수의 지지자에겐 사랑받았으나, 대중과의 소통에선 실패했다. 이후 케이블 채널에서 제작한 <이브의 유혹> <기담전설> 등의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하던 남기웅 감독은 한참 동안 B급 정서를 발산하지 못했던 침묵을 깨고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콩가네>로 돌아왔다.

가장 이데올로기의 강요와 남성 중심의 폭력이 불편하다

<콩가네>는 교도소에서 나와 국숫집을 내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장백호(김병옥 분)가 교도소에서 모았던 오백만 원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돈의 행방을 쫓는 내용이다. 가족 내부의 소행으로 의심한 그는 부인 오정숙(윤다경 분), 맏딸 장숙희(심은진 분), 둘째 딸 장애란(서효명 분), 막내아들 장영덕(김동범 분)을 용의 선상에 올린다.

영화는 한 사람씩 심문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과정으로 갈 것 같았으나, 실상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부인은 바람이 났고, 맏딸은 정숙한 아나운서와 화려한 복장으로 춤추는 이중생활을 즐기며, 둘째 딸은 일곱 명의 남자와 연애를 하고, 막내아들은 학교에 안 나간다는 정도를 대단한 비밀인양 제시한다.

 <콩가네>의 한 장면

<콩가네>의 한 장면 ⓒ (주)이웃엔터테인먼트


가족 구성원의 책임을 가장으로서 추궁할 수 있으나, 영화 속 장백호는 그럴만한 위치가 못 된다. 아내 오정숙은 장백호에게 자식들이 4살 터울인 까닭은 4년마다 교도소를 들락거렸기에 그렇다고 고함친다. 장백호는 씨만 뿌렸지 남편과 아버지로서 어떤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가족 누구도 면회나 연락이 없었다며 섭섭해하고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아느냐"며 성질만 부린다. 그는 자신의 돈을 찾겠다며 가족 모두를 직장과 학교에 못 가도록 창고에 감금한다. 고작 오백만 원에 가족이 생계를 잃든 말든 관심이라곤 없다.

책임감 없이 가장의 권위만을 내세우며 가정폭력을 일삼는 장백호는 비단 가족에게만 문제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가 출소하고 나서 저지른 행동을 보자. 편의점에서 거스름돈을 주던 직원에게 자길 무시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은 이해한다 쳐도, 길에 차를 세워놓고 소변을 보는데 여성운전자가 차를 빼라고 경적을 울리자 그녀의 얼굴에 성기를 들이밀고 소변을 보는 행동은 정상인과 거리가 멀다. 그는 변태성과 폭력성을 지닌 위험인물이다.

<콩가네>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큰 문제다. 맏딸 장숙희가 길에서 춤추는 모습이 몰래 동영상으로 유포되자 그녀를 사모하던 남자는 창피하다며 바로 안면을 바꾼다. 그것이 지탄받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 둘째 딸 장애란도 그렇다. 농락당했다고 여긴 일곱 명의 남자는 그녀를 길에서 만나자 분노를 폭력으로 해소하려 한다. 마치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봐라는 식이다. 장백호에게 소변 테러를 당한 여자는 영화 마지막까지 그를 두려워하면서 벌벌 떤다. 영화 속 여성들은 시종일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더욱이 이것에 시달리던 여성까지 폭력에 물든 모습은 안타깝다. 오정숙과 바람이 났던 남자는 장백호의 폭력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용기없다고 혀를 차던 오정숙은 그가 다른 여자를 만나자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는 집에 자물쇠가 달렸을 정도로 평생 폭력과 감금에 시달린 그녀에게 배려라곤 없다. 그저 다른 이에게 예사롭게 폭력을 행사하는 여성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전근대적인 발상과 남성 우월의 판타지로 채워진 <콩가네>

 <콩가네>의 한 장면

<콩가네>의 한 장면 ⓒ (주)이웃엔터테인먼트


근래 저예산 B급 영화들은 자신들의 여건을 재기 발랄한 힘으로 돌파했다. <죽이러 갑니다>에선 호러 영화의 정서가, <에일리언 비키니> <불청객들>에선 SF 장르의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렇기에 <콩가네>의 '감옥에서 막 나온 남자가 가족을 가두는 상황'이란 흥미로운 설정에서 <죽이러 갑니다>와 유사한 끝을 알 수 없는 막무가내와 좌충우돌의 소동극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맞아도 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과 '어떤 잘못을 저지른 남자라도 돌아갈 집은 있다'는 남성 우월의 판타지로 채워진 <콩가네>는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개그맨 손헌수가 만든 조악한 완성도의 <통키는 살아있다>에도 아련한 무엇은 존재했었는데, <콩가네>는 어떤 부분에서도 칭찬할 거리가 없다. 남기웅을 지지했던 사람에겐 실망감을, 그의 영화를 처음 본 사람에게 불쾌감만 선사한다. 몇 차례 웃긴다고? 그럴 바엔 차라리 <개그콘서트>를 보는 편이 현명하다.


콩가네 남기웅 김병옥 윤다경 심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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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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