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후 기자의 동시상영관]은 현재 개봉 중이거나 개봉 예정인 영화 한 편을 선정하고, 거기에 함께 연결해서 보면 좋을 만한 다른 영화 한 편을 묶어 소개합니다. 단순히 개봉 영화에 관한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다른 영화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런닝맨>과 <도주왕> 영화 포스터

▲ <런닝맨>과 <도주왕> 영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소나무 픽쳐스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조동오 감독의 <런닝맨>과 알랭 기로디 감독의 <도주왕>을 함께 놓는다면 의아스럽게 여길 분이 많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영화 10편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도주왕>을 평범한 오락 영화 <런닝맨>과 비교할 수 있느냐며 반문할 분이 있을 수도 있다.(참고로 <런닝맨>에 매겨진 <씨네21>의 전문가 평점은 10점 만점에 5.25점이다). <런닝맨>은 자신을 둘러싼 음모를 돌파하는 남자의 위기 탈출극지만, <도주왕>은 40대의 남성과 10대 여성이 벌이는 사랑의 도피극을 다룬다는 내용의 뚜렷한 차이점을 언급할 분도 있을 것이다.

<런닝맨>과 <도주왕>은 모두 자신들을 막고 있는 자들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간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 편을 묶는 건 김치와 피자를 같은 테이블에 놓는 것만큼이나 뜬금없다. 왜 거리가 먼 두 편의 영화를 함께 묶고자 했을까? 이유는 '도망'이라는 부분 외에도 '남성의 회복'이란 유사함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런닝맨> 영화 스틸

▲ <런닝맨> 영화 스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함정에 빠진 남자의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런닝맨'

<런닝맨>은 함정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도심을 위험천만하게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차종우(신하균 분)가 능숙한 운전솜씨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다음 날, 그의 아들이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차종우의 아버지는 '구멍이란 구멍은 따는데 선수'라며 그를 한심하게 여긴다.

여기까지 영화는 앞으로 전개에 필요한 요소들, 즉 그가 도망을 잘 치고, 아들과 사이가 나쁘며, 어두운 과거를 살았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설명이 끝난 후엔 바로 '어떻게 그가 음모에 빠졌는가'로 진입한다.

음모에 빠진 차종우는 살아남고자 동작대교, 종로 한복판, 상암 월드컵경기장, 택배 물류 창고 등을 오가며 다양한 술래잡기를 펼친다. 자동차를 이용한 추격신을 보여주는가 하면, 종로라는 공간을 위험천만하게 뛰어다니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선 쇼핑카트를 탄 채 질주한다. 그야말로 지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그렇다고 마냥 달리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영화는 어떤 음모에 빠졌는가, 어떻게 증거를 확보해서 위기를 극복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차종우가 빠진 음모를 치밀하게 구성할 의사가 애초부터 없다. 누명을 쓴 남자라는 유사한 소재를 다루었던 <골든 슬럼버> 같은 구성을 <런닝맨>에서 바라선 곤란하다. 황당하게도 <런닝맨>에서 주인공의 음모를 파헤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차종우의 아들 차기혁(이민호 분). 그렇다고 차기혁의 능력이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뛰어난 건 아니다. 그저 영화 속에 나오는 경찰이 게으르고, 멍청하게 다루어질 뿐이다.

무리하게까지 아들 차기혁을 이야기에 집어넣은 <런닝맨>은 줄곧 달리고, 치고받고, 뛰어내리는 액션 일변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드라마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무시로 일관하던 부자는 어느덧 협력자의 관계로 발전한다.

<도주왕> 영화 스틸

▲ <도주왕> 영화 스틸 ⓒ (주)소나무픽쳐스


자신의 고민으로부터 일탈하는 '도주왕'

<도주왕>은 <런닝맨>과 양상이 전혀 다르다. <런닝맨>이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이야기라면, <도주왕>은 선택으로 겪는 여정이다.

<도주왕>은 트랙터를 파는 아르망(루도빅 버딜럿 분)이 손님과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에서 망설이는 손님. 그 다음은 아르망이 트랙터 영업 사원끼리 정한 영업 구역을 침범했다고 질타 받는 장면이다. 이 지점까지 영화는 '선택'과 '경계'를 강조한다. 이후 아르망을 게이들이 파트너를 구하는 장소로 이동시킴으로 그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처음에 나타났던 선택과 경계는 이윽고 하나의 장면에서 만들어지는 분기점과 연결된다. (아마도 마음에 들었던) 한 남자의 뒤를 쫓던 아르망은 불량 청소년들에게 위협받던 소녀 퀴를리(합시아 헤지 분)를 위기에서 구출해준다. 남성이 아닌 여성을 선택한 아르망은 퀴를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퀴를리도 아르망에게 감정을 느끼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도망가는 사고를 저지른다.

보통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40대 중년 남성 아르망과 10대 소녀 퀴를리의 사랑은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다. 두 사람의 도주극은 관습을 향해 던진 도전장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이상하리만치 자주 출몰하며 아르망을 감시하는 형사는 아르망의 내면에 있는 다른 자아의 표출로 읽을 수 있다. 형사는 계속하여 아르망에게 전자 팔찌를 채운다든가, 돌아가라고 말하면서 사회적 관습의 테두리 속으로 위치시키고자 한다.

아르망의 도주는 자기 정체성의 혼란상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자신을 억압하는 무엇에게서 일탈하고 싶었던 아르망은 퀴를리와의 도주를 통해 그것을 시험해본다 그러나 아르망은 어떻게 결정짓기 보단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퀴를리와의 도주를 멈춘다.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아르망. 결국 <도주왕>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받아들이며 회복하게 되는 결말로 끝맺는다.

<런닝맨> 영화 스틸

▲ <런닝맨> 영화 스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결국은 약한 남자의 '회복'을 향한 모험담

<런닝맨>에서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차종우와 함께 또 한 명의 무시당하는 남자로 등장하는 이는 형사반장 안상기(김상호 분)다. 동료와 선후배에게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그는 차종우의 도주극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담하며 함께 활약한다.

<런닝맨>과 <도주왕>은 소재도, 전개도 전혀 다른 영화다. 그러나 도착 지점에서 그들은 '회복'되어 있다. 차종우는 거침없는 질주극을 통해 아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당당한 가장으로 위치를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안상기는 직장에서의 위상을 굳건히 한다.

아르망은 황당한 도주극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떳떳하게 수긍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런닝맨>과 <도주왕>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이 시대의 남성의 위치 회복을 향한 좌충우돌 모험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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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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