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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히말라야의 바람도 새벽이 되면 잠이 들고 고요가 찾아옵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 전날의 부유물을 날려 보내면 바람의 역할은 끝나고, 찬란한 태양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햇살은 설산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능선을 타고 계곡으로 내려옵니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출의 감동은 자신의 눈으로 경험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소의 고통

어제 오후 따스한 햇볕과 나의 자만심 때문에 해발 3430m라는 것을 잊고 샤워를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고소 증세가 온 것입니다. 해발 3000m을 넘어서면 가급적 씻지 말아야 하는데 샤워까지 하였으니 자업자득입니다.

랑탕 빌리지 모습, 멀리 강첸포(6,387m)가 보임
▲ 랑탕 빌리지 랑탕 빌리지 모습, 멀리 강첸포(6,387m)가 보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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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증세는 해발 3000m 이상 지역에서 나타나며 두통, 의욕감퇴, 식욕감소, 구토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다이아막스나 비아그라와 같은 약품이 있지만 조심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천천히 걷고, 물을 자주 마시고, 자주 쉬면서 무리하지 말라는 경구의 말을 알고 있음에도 어설픈 나의 판단으로 일을 크게 만드는 어리석은 저에게 히말라야는 고소 증세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랑탕 빌리지(3430m)에서 시작하여 캉진곰파(3870m)까지 갈 예정입니다. 거리가 짧고 경사가 완만하여 점심은 캉진곰파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최대한 천천히 걸을 생각입니다.

네팔 속의 티베트

랑탕 마을 주변에는 넓은 평원이 있어 야크와 소 떼들이 거닐고 있으며 마을 뒤편에는 초르텐(불탑)이 마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니차를 돌리는 노인의 모습, 티베트 전통복장인 바쿠를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네팔보다는 티베트가 느껴집니다.

랑탕 빌리지 뒷편의 불탑
▲ 초르텐 랑탕 빌리지 뒷편의 불탑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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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텐을 지나면 네팔에서 가장 긴 마니월(Mani Wall)을 만나게 됩니다. 불교의 경전을 기록한 마니석을 돌담처럼 쌓아 놓았습니다. 마니월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신앙심이 깊다는 뜻이겠지요. 조국을 떠나왔지만,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지켜가는 티베트탄들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습니다. 마니월을 돌 때에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돌고, 길 가운데 있는 마니월은 왼쪽으로 지나는 것이 예의라고 합니다.

티벳 불교의 영향
▲ 마니월 티벳 불교의 영향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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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의 등에 장작을 가득 싣고 가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수목 한계선을 넘었기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장작은 야크와 사람의 힘에 의지해 운송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따뜻한 물 한 잔도 많은 사람과 동물의 도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드디어 목적지에

4시간을 걸어 캉진곰파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은 며칠 전 내린 폭설로 인해 설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네 번 트레킹을 하였지만, 한 번도 눈을 밟아 보지 못했기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누링캉진곰파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합니다. 이 집 주인은 우리나라에서 3년간 일한 경험이 있어 우리말에 능통합니다.

마을 모습
▲ 캉진곰파 마을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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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과 휴식을 취한 뒤 숙소 뒤편에 있는 캉진리(4773m)에 오릅니다. 숙소에서 보면 야트막한 높이의 산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캉진곰파와 무려 해발 1000m의 차이가 납니다. 해발 4000m를 걷는 것은 시간 거리나 공간 거리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한 발 한 발이 고행의 길입니다. 더구나 고소 증세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정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점에서 코피가 터졌습니다. 바닥에 누워 휴지를 코를 막아 보지만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캉진리에서 바라 본 빙하 모습
▲ 캉진리 정상 캉진리에서 바라 본 빙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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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0m도 안 되는 작은 피크(Peak)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지금까지 본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랑탕리룽(7225m), 랑탕Ⅱ(6561m), 강첸포(6387m), 랑시사리(6427m) 등 수많은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설산을 타고 내려오는 거대한 빙하, 구름처럼 피어나는 눈보라, 쪽빛 하늘, 산 아래 계곡의 아름다움 등 고산 지대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정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코리언 드림

저녁은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여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고소 증세가 아직 두통과 식욕부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면에 달걀이 더해지고 더구나 김치까지 밑반찬으로 제공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한국 음식도 한다고 합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검소함과 겸손함이 말과 행동에서 묻어납니다.

Korea Dream의 신화 주인 부부 모습
▲ 숙소 주인 부부 Korea Dream의 신화 주인 부부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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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럭시(네팔 소주)를 한 잔 권합니다. 의정부에서 산업연수생으로 일했으며 그때 번 돈으로 이 롯지뿐만 아니라 랑탕 마을에도 롯지를 운영하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코리언 드림'으로 성공한 전형적인 네팔 사람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본 많은 네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잘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우리말로 대화하니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어제부터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호주 친구들은 무척 신기해합니다. 네팔 사람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니 말입니다. 주인장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없지만, 꼭 한번 오고 싶다는 말에 배낭 깊숙이 숨겨 놓은 소주 한 병을 선물로 주고 말았습니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최대한 천천히 걸었으며 털모자를 하루 종일 착용하였고 저녁을 우리 음식으로 먹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방에 전기가 들어옵니다. 밝은(?)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음에 행복해집니다.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 하나는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 같습니다.

숙소 벽에 있는 낙서
▲ 낙서 숙소 벽에 있는 낙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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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묵은 방에는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 사람의 글귀가 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랑탕의 밤이여"
"떼꺼리(땟거리) 없어도 또 온다"

문명의 이기도 편리함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이 저들을 행복하게 했을까요?


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캉진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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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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