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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부터 3월 30일까지 속초에서의 한 달 살기 기록입니다.[기자말]
아침에 눈을 떠니 밖은 어둡기만 하다. 창을 열고 바라보니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어제는 투명한 하늘과 따스한 봄기운이 느껴졌는데 하루 사이에 다시 겨울로 회귀한 듯하다. 봄을 즐기기 위해 온 것인데 다시 겨울이라니. 뉴스에서는 영동 지방 폭설을 예보하고, 한 달 살기를 하러온 나는 창밖만 바라봤다. 

정이 있는 막걸리집

주방을 살펴보니 부족한 것 투성이. 취사도구가 거의 없다는 안내를 사전에 받았지만 레지던스 호텔이라 기본적인 조리 기구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눈이 내리고 있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정리하여 마트에 가기로 했다.

트레킹화를 신고 숙소에서 나갔지만 몇 보 걷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눈이 발목을 넘어 신발 안으로 들어와 걸을 수 없는 상황. 중등산화로 갈아 신고 다시 나갔지만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기는 마찬가지.
 
3월 1일 폭설 모습
▲ 폭설 3월 1일 폭설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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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중심지 로데오 거리의 눈 온 다음날 모습
▲ 로데오 거리 설경 속초 중심지 로데오 거리의 눈 온 다음날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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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가 오지 않아 걷기로 하였다. 4km 정도 떨어진 마트에 도착한 것은 숙소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길을 몰라 헤매기도 하였지만 폭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설 차량은 도로를 왕복하며 끊임없이 눈을 치우고 인도에는 주민들이 넉가래로 눈을 치우지만 역부족이었다. 제설 차량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치웠냐는 듯이 눈이 다시 쌓였다. 

늦은 오후 눈발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밑반찬을 사기 위해 관광수산시장(과거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캐노피 설치가 되어 눈이 와도 걱정 없었다. 밑반찬 몇 가지를 구입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시장이 텅 빈 느낌.

시장 끄트머리에 감자전과 막걸리를 파는 노점이 보였다. 노점에는 반백의 노인 두 분이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고. 감자전을 주문하자 아주머니는 감자 껍질을 벗겨 강판에 갈며 전 만들 준비를 하신다. 옆에 계신 노인 한 분이 슬며시 감자전을 나누어 나에게 주시면서 이렇게 말을 건다.

"기다리려면 힘들어! 먼저 막걸리 한잔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이미 손은 안주로 향하고 있었다. 시장 근처 사신다는 두 분은 이 집의 단골인 듯 아주머니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막걸리가 들어가자 나 역시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속초에 눈이 자주 오나요?"
"많이 오는 편이지만 어제와 오늘만큼 내린 것은 오랜만이여."
"작년 가을부터 강수량이 적어 농사가 걱정이었는데 이번 폭설로 해갈된 것 같아."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재난지원금으로 옮겨 갔다. 말없이 술만 드시던 한 할아버지가 뜬금없이 "이번에는 노점상도 대상이라는데 신청했어?"라고 묻자. 아주머니께서 이렇게 답하신다. 

"저는 관심 없어요. 저는 세금도 내지 않는데.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되어야죠."

그 말씀에,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던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감자전 한 장 5000원, 막걸리 한 잔 1000원인데. 재난지원금은 시장 건물에 입주하지 못하고 밖에서 장사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는 도움이 될 것인데... 지원금 발표가 있을 때마다 가슴 조이며 지급 대상 여부를 확인한 나 자신이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속초는 한 폭의 동양화

폭설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혀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기사가 보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눈은 걷혔고, 투명한 맑은 하늘이 보인다. 베란다에 나가니 동해는 일출을 준비 중이었다.

설악대교 너머 바다 깊은 곳에서 작은 불덩이가 올라와 주위를 붉게 물들인 후 하늘로 치솟는 것이 아닌가! 아름답지 않은 일출은 없지만 속초에서 처음 보는 해 뜨는 모습은 한 달을 살기 위해 온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설악대교 너머 동해의 일출 모습
▲ 일출 설악대교 너머 동해의 일출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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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여전히 걷기 힘들 만큼 눈이 쌓여 있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내가 할 일. 숙소 앞에 있는 청초호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청초호는 좁고 긴 모래 언덕에 의해 만들어진 석호로 거친 풍랑을 피할 수 있어 천혜의 항구이자 철새들의 도래지이고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책 코스다.

청초호 둘레길은 4.5km 정도이고 속초 사잇길 10길 중 하나로 갯배 선착장에서 시작하여 설악대교, 요트 계류장, 엑스포 상징탑 그리고 칠성 조선소를 거쳐 원점회귀하는 여정이다. 

차도와 달리 인도는 제설 작업이 되지 않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호수 주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설악산 정상을 목표 삼아 오르는 기분. 설악대교에서 보는 청초호와 설악산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속초는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가 어우러진 곳인데, 설경이 더해져 금상첨화를 이루었다. 
 
폭설 후의 청초호와 설악산
▲ 폭설 후의 모습 폭설 후의 청초호와 설악산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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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다음날 청초호
▲ 청초호 폭설 다음날 청초호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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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마무리는 칠성 조선소에서. 이곳은 한 달 살기를 준비하면서 가야 할 곳 중 하나로 생각했던 곳이다. 1952년에 만들어진 조선소였지만 1990년대 어획량이 줄고 철선과 플라스틱 배가 등장하면서 2017년 문을 닫았다가 2018년 공연과 전시를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재개장하여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과거의 유산을 해체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야외 공간은 놀이터로 바꾸었고 주거 공간은 카페로 개조하여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한 것이다.
 
폐 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 칠성 조선소 폐 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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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 내려온 게 3일째. 폭설 때문에 숙소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산책을 한 것이다. 속초는 도시가 작아 대부분 지역을 걸어갈 수 있다. 두 발로 걷는 여행의 장점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

아침 일출, 따뜻한 햇살, 청명한 날씨, 미세먼지 없는 하늘,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흰 눈 가득한 산 등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공짜인데, 나의 삶은 더 많이 갖기 위한 삶의 정글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으니!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은 모두 공짜인데, 무엇을 위해 조급하게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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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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