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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호텔의 밤하늘은 화려했습니다. 바닷가 모래알보다 더 많은 별들이 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제 고향은 덕유산 자락입니다. 어린 시절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을 나서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교교하게 빛나던 별빛이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별을 잊고 살았는데 히말라야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걸어 몸이 무척 피곤하였지만, 숙면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숙소 앞에 흐르는 랑탕콜라(강)의 물 흐름소리가 잠든 저를 자꾸만 깨웠습니다. 낮에는 조용히 흐르던 강물이 밤이 되면 깨어나 잠들려는 저에게 자꾸만 말을 붙여 옵니다. 히말라야에서는 강물도 사람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트레킹은 혼자 걷는 것

아침이 오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옷을 입고 짐을 정리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점점 적응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출발 준비를 끝내니 포터가 카고백을 가져갑니다. 어제 샤워와 빨래를 하였기에 몸과 마음 모두 개운합니다. 몸이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오늘은 고라타벨라를 거쳐 랑탕(3430m)까지 갈 예정입니다.

찌아 한잔과 삶은 감자로 아침을 끝내고 출발하였습니다. 차가우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타고 폐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옵니다. 계곡은 아직 해가 들지 않은 시간이라 살얼음이 있습니다. 울창한 원시림을 걷는 것으로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포터 인드라는 짐을 메고 멀찌감치 앞서 갑니다. 이곳은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위험하지도 않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혼자 걷습니다.

랑탕 트레킹에서 접할 수 있는 풍경
▲ 원시림 랑탕 트레킹에서 접할 수 있는 풍경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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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질 무렵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설산 모습이 보입니다. 계곡 저 멀리에서 랑탕 리룽(7225m)이 하얀 손을 내밀며 손짓하고 있습니다. 랑탕 트레킹은 거대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기에 어제부터 설산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려는 우리 마음을 히말라야 신이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도 자연도 모두 멈춘 것 같은 적막함 속에서 설산은 떨림으로 다가 옵니다.

원시림 사이에서 보이는 설산의 모습
▲ 랑탕 리룽의 모습 원시림 사이에서 보이는 설산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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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000m, 식생도 지형도...

4시간 정도 걷자 체크포스트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고라타벨라(2970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넓은 개활지로 몇 개의 롯지와 군부대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체크포스트에서 팀스(Tims)를 제시하니 군인이 인적 사항을 기재합니다. 장부를 보니 제가 오늘 이곳을 지나는 다섯 번째 트레커입니다. 겨울철은 비수기라 트레커들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해발 3,000m 지점에 있는 마을
▲ 고라타벨라 해발 3,000m 지점에 있는 마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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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타벨라를 기점으로 해발 3000m를 넘어섰습니다. 거대한 동굴에서 빠져나온 느낌입니다. 식생도 지형도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식생은 울창한 원시림 지대를 벗어나 작은 관목들만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지형도 V자 지형에서 U자 지형으로 바뀌었습니다. 계곡의 상류로 올라갈수록 넓은 개활지 모습이 보입니다. 개활지에는 고산지대에만 산다는 야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자연은 교육받지 않아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아는 것 같습니다. 20년간의 부모의 보호와 교육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있어야할 곳을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히말라야는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발 3,000m 넘어서야 볼 수 있는 모습
▲ 야크 해발 3,000m 넘어서야 볼 수 있는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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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샵(3140m)에서 점심을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산을 오를수록 전망은 점점 좋아집니다. 오늘 목적지인 랑탕 빌리지 모습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히말라야는 맑은 공기로 인해 자신의 가시거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부족한 산소는 트레커의 걸음을 지체시키기에 두 시간을 더 걸은 후에야 마을 입구 현수교에 도착하였습니다. 히말라야 자락에는 계곡과 강물 사이에 걸쳐 있는 현수교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차량 통행이 되지 않는 험한 히말라야에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연결 수단입니다.

랑탕 빌리지 입구 모습
▲ 현수교 랑탕 빌리지 입구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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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도시 '랑탕'

트레킹은 똥(변)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처음 트레킹을 시작하였을 때는 말이나 야크의 배설물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걷는 트레일은 사람과 짐승이 함께하는 공간이기에 똥 천지입니다.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집니다. 물론 악취도 나지 않습니다. 현지인들은 배설물을 말려 연료와 건축자재로서 사용하는 귀한 자원이기에 집집마다 배설물을 수집하고 말리는 장소가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이 함께하는 랑탕
▲ 트레일 사람과 짐승이 함께하는 랑탕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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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 빌리지에 도착하였습니다. 해발 3430m에 자리 잡은 규모가 큰 마을입니다. 랑탕콜라(강)의 풍부한 수량으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으며 치즈공장, 빵집 그리고 학교 등 다양한 주민과 트레커의 편의시설이 있습니다. 마을 중심에는 불교의 경전을 담은 마니차(praying wheel)가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돌고 있습니다.

티벳 불교에서는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불교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히말라야를 넘어 이곳에 정착한 그들의 염원은 무엇일까요? 이곳에서는 네팔식 인사인 "나마스떼" 보다 티벳식 인사인 "타시텔레"라는 인사말이 더 정감있게 들려옵니다.  

오늘 숙소는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Eco Guest House'입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숙소는 전망이 무척 좋습니다. 멀리 보이는 캉진리(4773m)를 물들이고 있는 석양의 모습은 저의 짧은 어휘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숙소 또한 나무와 석재를 이용하여 단아하게 지어 깨끗할 뿐 아니라 화장실도 실내에 있어 무척 편리합니다.  

아름다운 정경을 가진 랑탕의 숙소
▲ 창문 넘어 설산이 아름다운 정경을 가진 랑탕의 숙소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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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는 방심에서부터

해발 3000m를 넘어서면  고소에 대한 예방으로 샤워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숙소에 도착하였을 때, 아직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려 있어 춥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실내에 있는 화장실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판단이 흐려져 샤워를 하였습니다. 샤워 후 옷을 갈아입으니 몸이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숙소에는 저와 두 명의 호주 젊은이가 전부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네팔 트레킹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제가 다섯 번 째 트레킹이라고 이야기하니 놀라는 표정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여섯 달 동안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팔 트레킹이 끝나면 태국으로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가이드나 포터 없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여행하는 젊은이들
▲ 호주에서 온 젊은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 여행하는 젊은이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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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돌 그리고 야크의 배설물로 만들어진 숙소는 바람의 출입을 막지 못합니다. 능선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허술한 지붕과 창문을 넘어 트레커의 뼈속까지 파고듭니다. 히말라야의 바람은 룽다와 탈루초(불교의 경전이 기록된 깃발)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세상 곳곳에 전파하기 위해 밤을 새워 불고 있나 봅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심약한 트레커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고 있습니다.


태그:#히말라야, #랑탕, #랑탕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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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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