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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 한국에서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선언하고, 밀고, 짓는 토건국가'가 아닌,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을 만드는 돌봄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기획은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면서 지난해 8월 시작됐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생생하게 조명하면서, '마을공동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을의 귀환' 기획팀은 <오마이뉴스> 창간 13주년을 맞아 민관이 협력해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영국식 마을공동체 만들기 모델을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 시장을 찾은 손님과 상인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 시장을 찾은 손님과 상인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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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글 강민수·홍현진 사진 유성호]

'마을의 귀환' 취재팀은 지난해 서울 금천구 남문시장과 강북구 수유시장을 다녀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門前成市) 프로젝트'가 2~3년씩 진행됐던 곳. 문화·예술 단체가 상인·지역주민과 함께 동아리 활동을 벌였고, 설·추석 등 대목에는 축제를 열어 시장 활성화에 힘썼다. 시장 안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장사하기 바쁜 상인들에게 생업 이외에 부수적인 활동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 역시 한계로 지적됐다. 

'사회 혁신'의 나라, 영국에서 전통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4일(현지 시각), 런던 남부의 브릭스톤 시장을 찾았다.

'공동체 이익회사'로 등록된 브릭스톤 시장 상인회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토요시장의 가판대를 설치하는 직원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토요시장을 열기 위해 새벽 3시부터 4시간 동안 가판대를 설치하는데, 시장은 장을 보기 위해 온 인파로 엄청 붐빈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토요시장의 가판대를 설치하는 직원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하고 있다. 스튜어트는 "토요시장을 열기 위해 새벽 3시부터 4시간 동안 가판대를 설치하는데, 시장은 장을 보기 위해 온 인파로 엄청 붐빈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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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톤역 길 커뮤니티 시장(Brixton Station road Community Market)'이 2012년 겨울철 여는 금요시장, 토요시장, 벼룩시장 등의 행사 세부일정을 알리는 포스트를 시장 벽면에 붙여놓고 있다.
브릭스톤 시장 상인들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장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브릭스톤역 길 커뮤니티 시장(Brixton Station road Community Market)'이 2012년 겨울철 여는 금요시장, 토요시장, 벼룩시장 등의 행사 세부일정을 알리는 포스트를 시장 벽면에 붙여놓고 있다. 브릭스톤 시장 상인들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시장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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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톤 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어가자, 140년 역사의 브릭스톤 시장이 나왔다. 길 한가운데 가판대가 설치돼 있었다. 청바지·점퍼·티셔츠가 걸려 있는 가판,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판, 과일을 파는 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편 위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그 아래 카페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한국의 전통시장이 아치형 아케이드로 덮여 있고, 좌우에 상점이 늘어서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평일 오전이라 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통역을 맡은 임소정씨는 "지난 주 토요일에 왔는데, 이 길이 꽉 찼었다"고 말했다.

시장입구의 한 카페테라스에서 브릭스톤 시장 상인회(Brixton Market Trader's Federation) 회장, 스튜어트(Stuart·54)를 만났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 표정과 목소리에서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지나가는 시장 상인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튜어트는 1984년부터 이곳 시장에서 작은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브릭스톤 지역에는 10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될 만큼 다양한 인종이 산다. 특히 카리브 해안·콜롬비아·브라질 출신이 많다. 브릭스톤 시장 상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도에 만들어진 상인회는 40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비정기적인 상인도 30여 명 정도 된다. 비정기 상인들은 자신의 물건을 이곳에서 시험 삼아 팔 수 있다. 가판대의 설치와 이동이 자유로워 나가는 것도 자유롭다. 실험을 통해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도 익힐 수 있다.

스튜어트는 상인회가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인들은 매일 매일의 삶이 투쟁이라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힘들죠.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구청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상인에게는 쉽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상인이라 누구보다 상인을 더 잘 대변할 수 있어요."

공동체 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CIC)란?
사회적 기업의 한 형태. CIC는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해야 하고, 정당의 정치적 목적을 가질 수 없으며, 기업 특정 그룹의 재정적 이익을 추구하지 못한다.

CIC 등록을 위해서는 공동체 이익 테스트(CIC가 공동체 목적을 위해 설립되었음을 증명)와 그 자산과 수익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쓰인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산 동결(Asset lock)'이 필요하다. 자선단체가 자금조달이나 조직운영에 제한이 매우 많은 것과 달리, CIC는 지역 커뮤니티 전체에 이익이 되는 활동이라면 영리활동을 할수 있고 배당액에 상한이 있는 주식도 발행할 수 있다.
상인회가 상인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브릭스톤 상인회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상인회가 '공동체 이익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CIC) 형태를 띤다는 것. 브릭스톤 상인회는 느슨했던 조직을 정비해 2009년 CIC로 등록했다.

스튜어트는 "CIC는 자선단체와 기업의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면서 "자선단체와 달리, 지역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면 상업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비영리 단체처럼 펀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자생력을 갖는 셈이다.

브릭스톤 교도소와의 협력... 수감자 재활 도와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온라인 벼룩시장(Makerhood) 소속 상인들이 주말에 오프라인 장터를 열어 손수 만든 수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온라인 벼룩시장(Makerhood) 소속 상인들이 주말에 오프라인 장터를 열어 손수 만든 수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 브릭스톤마켓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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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톤역 길 커뮤니티 시장(Brixton Station road Community Market)'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래, 춤 등 문화 공연을 열어 시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브릭스톤역 길 커뮤니티 시장(Brixton Station road Community Market)'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래, 춤 등 문화 공연을 열어 시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 브릭스톤마켓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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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외부단체가 시장에 들어와 문화·예술 활동을 벌이는 것과 달리, 브릭스톤 시장은 상인 스스로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먼저 브릭스톤 교도소와의 협력을 꼽을 수 있다. 교도소는 출소를 앞둔 수감자들에게 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다. 교도소 내 빵집에서 생산한 빵과 비스킷을 시장에 팔 수 있도록 파트너십도 맺을 예정이다. 스튜어트는 "영국에서는 출소한 뒤 바로 범죄를 저질러 다시 감옥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시장에서 지역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물건을 파는 경험을 통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막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브릭스톤 마켓은 또한 '브릭스톤 소사이어티'(Brixton Society)라는 지역 단체와 함께 지역 문화 유적 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이 건물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 설명하는 역사교육 프로그램에 브릭스톤 시장이 빠질 수 없다. 이 단체는 상인회가 CIC로 설립하는데 고문 역할을 하는 등 서로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만들고 있다. 또 지역주민들의 온라인 벼룩시장인 '메이커 후드(Makerhood)' 상인들에게 시장 공간을 개방해 오프라인 장터도 연다.

토요일에는 노래·춤 등 문화 공연이 어우러지는 시장 축제가 벌어진다. 스튜어트는 취재진에게 "토요일에 오면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꽉 차있다"며 "토요일에 꼭 다시 한 번 와 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상인회는 인근의 램버스 대학(Lambeth College)과도 파트너십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브릭스톤 시장은 지난해 정부로부터 5만 파운드(22일 외환은행 고시 기준·약 8275만 원)의 '혁신 기금(Initiative Fund)'을 받았다. 이 지원금은 인건비 등 상인회 유지비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시장 축제에도 쓰이고 있다.

1990년대 대형 슈퍼마켓이 인근에 들어오고 구청의 길거리 상인 단속이 심해지면서 2000년 초반까지 시장은 침체됐다. 하지만 지역사회와의 활발한 협력 덕분에 최근에는 '브릭스톤의 명소'라는 시장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한 카페 사장은 저에게 매번 고맙다고 해요. 상인회가 들어선 후, 이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가 한눈에 늘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0년대, 이 시장을 담당하는 램버스 구청(Lambeth Council)은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 허가받지 않은 노점 상인을 단속했다. 스튜어트는 당시를 "동그라미에다 네모를 넣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오랜 협상 끝에 상인회는 구청에서 허가권을 일부 양도 받았고, 시장에서 가판 설치 및 관리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차량 출입 시간문제로 구청과 줄다리기 중이다. 현재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장에 차량 진입이 금지된다. 구청은 이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연장하자는 입장이지만, 상인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변경하기를 바란다.

86세 어머니-64세 아들 상인, "대형마트 두렵냐고?"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과일가게 주인인 데이브(Dave)와 아들 아이린(Irene)이 싱싱한 과일을 보기좋게 가판대에 진열하고 있다.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과일가게 주인인 데이브(Dave)와 아들 아이린(Irene)이 싱싱한 과일을 보기좋게 가판대에 진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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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손님이 가판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싱싱한 채소를 구입하고 있다.
 14일 오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손님이 가판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싱싱한 채소를 구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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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회 소개가 끝나자, 스튜어트는 시장을 보여주겠다며 일어섰다. 스튜어트와 함께 둘러본 시장에는 한국 재래시장처럼 없는 게 없었다. 옷·모자·벨트·과일·휴대전화 케이스·신발·생선·냄비 등등.

물건만큼 상인들의 인종도 다양했다. 상인들은 자메이카 등 카리브 해안에서 온 이들이 많다. 이 외에도 아프가니스탄·나이지리아 등 백인이 드물 정도로 이민자 위주다. 해안 출신 상인들 덕분에 냉동된 생선이 많은 다른 시장과는 달리 브릭스톤 시장에서는 싱싱한 생선을 볼 수 있었다. 스튜어트는 만나는 상인들마다 '굿모닝' '헬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 사람들은 모두 내 가족"이라고 웃어보였다.

오렌지·사과·바나나들이 진열된 가판대에서 스튜어트가 멈춰 섰다. 86세의 아이린(Irene)이 아들 데이브(Dave·64)와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데이브도 8살 때부터 어머니를 도왔다. 바구니 앞에는 'Juicy and Sweet'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었다. 가판대에 진열된 과일들의 색깔이 유독 선명했다.

'한국은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이 어려워졌다'고 말하자 데이브는 "슈퍼마켓은 창고에 저장해놓은 물건을 팔지만 우리는 신선한 과일을 바로 팔기 때문에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스튜어트는 "슈퍼마켓에 가면 빠르고 간단하게 쇼핑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상인과 상인, 상인과 손님 사이에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튜어트는 생선가게 주인인 데릭(Derek·53)을 "New boy"라고 칭했다. 그 말을 듣고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1~2년쯤 된 줄 알았지만 데릭은 자신을 "23년 전에 시장에 왔다"고 소개했다. 23년 경력의 장사꾼을 '신입'이라고 부를 만큼 브릭스톤 시장의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릭은 상인회를 "시장 관련 정보를 제공해주고 우리를 대신해서 구청에 목소리를 전해준다"라고 평가했다. 취재팀 홍현진 기자가 데렉에게 "젊어 보인다고"고 말하자 그는 "나와 결혼해줄 수 있나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어 스튜어트가 "브릭스톤 시장에 오면, 오렌지도 살 수 있고 남편도 구할 수 있다"고 말해 취재진에게 큰 웃음을 줬다.

No 엘리자베스 여왕... '데이비드 보위' 얼굴 박힌 지역화폐

14일 오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영국의 유명 대중음악가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얼굴이 찍힌 브릭스톤 지역화폐를 보여주고 있다. 1파운드는 지역화폐인 1브릭스톤 파운드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지역 자원의 지역 내 교환을 장려하고 있다.
 14일 오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영국의 유명 대중음악가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얼굴이 찍힌 브릭스톤 지역화폐를 보여주고 있다. 1파운드는 지역화폐인 1브릭스톤 파운드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지역 자원의 지역 내 교환을 장려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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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손님에게 시계를 판매하고 있다.
 14일 오후 런던 브릭스톤(Brixton) 역 인근 브릭스톤 시장에서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스튜어트(Stuart) 시장 상인회 회장이 손님에게 시계를 판매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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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래시장처럼 아케이드가 설치된 실내 시장도 둘러봤다. 이곳은 상인회 소속 가판대보다 월세가 2배 이상 비싸다. 예전에는 도매를 하던 가게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점의 50%가 카페나 바로 바뀌고 있다. 빈곤층 지역에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빈곤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한국의 홍대·이태원이 떠올랐다. 스튜어트가 말했다.

"시장이 레저 공간으로 바뀌는 게 나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길거리 시장만은 시장의 역사를 보존시키고 싶어요." 

말굽 모양(U자형)의 시장을 한 바퀴 돌아 스튜어트가 운영하는 가게 앞에 섰다. 가판대에는 수십 가지의 시계가 걸려 있다. 그의 본업은 시계 수리공이다. 시장을 안내할 때 활달하던 모습과 달리 시계를 고치는 진지한 눈빛에서 장인 정신이 엿보였다.

가판대에는 이 가게에서 '브릭스톤 파운드'(Brixton Pound)를 쓸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스튜어트가 지갑에서 꺼낸 브릭스톤 파운드에는 영국의 유명 음악가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려진 일반 화폐와 달랐다.

브릭스톤 파운드는 런던의 첫 지역 화폐다. 지역 화폐를 쓰는 사람에게는 특별 할인이, 가게에는 브릭스톤 파운드 누리집과 전단지를 통해 가게를 홍보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 같은 지역 화폐 사용을 통해 지역거래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 스튜어트는 "모든 상점이 브릭스톤 파운드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단골 가게가 브릭스톤 파운드를 받는 곳이라 거기에서 커피를 사마신다"고 말했다.

브릭스톤에 대해 열렬히 설명하는 그에게서 어떤 신성함이 느껴졌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성공적인 지역 사업에는 어김없이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이 유별난 인물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두워진 시장에 불이 들어왔다. 환한 가판대 앞에서 손님과 상인의 '에누리'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그:#마을공동체, #브릭스톤 시장, #문전성시, #마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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