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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식당에서 각자 준비해 온 음식으로 다함께 저녁을 나눠먹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주민들은 '커먼 하우스(Common House)'라는 공유공간에서 일주에 세번(수,목,금요일) 의무적으로 저녁 음식을 만들어 함께 식사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주민들이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식당에서 각자 준비해 온 음식으로 다함께 저녁을 나눠먹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주민들은 '커먼 하우스(Common House)'라는 공유공간에서 일주에 세번(수,목,금요일) 의무적으로 저녁 음식을 만들어 함께 식사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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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글 홍현진·강민수 사진 유성호]

# 75세 나탈리(Natalie)

"영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은빛 머리의 영국인 나탈리(Natalie. 75)는 홍콩, 인도, 태국 등 다른 26개 국가에서 살아봤다. 나탈리의 작은 아파트에는 버마에서 구입했다는 그림, 부처상 등이 있었다. 나탈리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나 아동기가 너무 불행했다"면서 "여행을 다니면 그곳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고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나탈리에게 '이곳에 꼭 정착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건 10여 년 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 '코하우징(Co-housing)'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다. 코하우징은 인접해 있는 각기 다른 주택에 살면서 공동의 공간을 공유하는 주거형태를 의미한다. 나탈리는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에 살면서, 이런 곳에서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67세 앤(Anne)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앤(Anne)이 공동작업으로 화단을 정리하고 있다.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앤(Anne)이 공동작업으로 화단을 정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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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똑같아요."

앤(Anne. 67)은 2년 전 스트라우드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에 오기 전 옥스퍼드에서 20년을 살았다. '한국은 아파트가 많아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자, 앤은 "옥스퍼드에도 학생들이 많아서 누가 사는지 모른다"면서 영국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예술가인 앤은 "사람들이 많고 다들 바쁘니까 혼자 살기 외로워서 커뮤니티에 오게 됐다"고 했다. 앤은 두 번 이혼했고, 자식은 없다.

코하우징에 이사오기 전, 앤은 다리를 다쳤다. 스프링힐 주민들은 앤이 쇼핑을 하고, 페인트칠 하는 것을 도와줬다. 60년 넘게 이웃들과 커뮤니티 활동을 해본 적이 없던 앤은 매주 화요일 노래 모임에서 소프라노를 하고, 목요일에는 바느질 모임을 한다. 두 번의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첫번째는 카페트 상인을, 두번째는 요정 역할을 맡았다. 앤은 남은 삶을 여기에서 보내고 싶다.

"35세대 80명의 주민들이 서로 누구인지 잘 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이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역  도착하자, 마중 나온 제인(JAne)이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알리는 책자를 들어보이며 취재팀을 반기고 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이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역 도착하자, 마중 나온 제인(JAne)이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알리는 책자를 들어보이며 취재팀을 반기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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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런던에서 2시간,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저 멀리서 제인(Jane. 63)과 닐(Neil. 60)이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스트라우드역까지 취재팀을 마중 나온 것. 제인의 손에는 스프링힐 코하우징 소개 책자가 들려있었다. 사전에 이메일을 통해 취재팀의 이름을 물어본 제인은 "현진", "민수", "성호"라며 취재팀의 이름을 서투른 한국어 발음으로 한 명, 한 명 불러주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어서 미리 외워왔단다.

기차역에서 나오자 런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한적하고 정돈된 느낌. 스트라우드는 도시(City)와 시골(Country) 사이에 있는 타운(Town)이다.

제인이 디저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크림을 사러 잠깐 슈퍼에 들른 사이, 닐이 우리를 안내한다. 언덕처럼 경사진 초록빛 공원너머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스프링힐 코하우징이 보인다. 닐은 "영국에는 보통 평지가 많은 반면, 이곳은 경사진 곳이 많다"면서 "세계대전 당시 스트라우드 지역에는 군복 옷감을 짜는 물레방아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언덕을 올라 스프링힐 코하우징 입구에 들어서자 피터(Peter. 47)가 5살 딸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크림을 사온 제인이 "이 분들이 내가 말한 한국인들"이라면서 "오후 4시 티타임, 잊지 않았죠?"라고 말하자, 피터는 고개를 끄덕인다.

스프링힐 코하우징에 살고 있는 35세대, 80명의 주민들은 서로가 누구인지를 잘 안다. 이는 이곳에서 7년을 살았다는 제인도, 피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3년을 살았으니 그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셈"이라는 피터의 딸도 마찬가지다. 취재팀이 오기 전, 제인은 "한국 사람들이 온다"는 제목으로 내부 이메일을 보내놓았다. 제인과 닐은 이곳에서 방문객 담당이다.

스프링힐 코하우징에는 침실이 2개 있는 방부터 4~5개 있는 방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있다. 각 주택은 집 자체만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내부는 집주인이 직접 디자인했다. 세들어 사는 주민도 있다. 제인은 취재팀에게 코하우징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침실 5개인 제인과 닐의 집, 침실 4개인 캐롤라인(Caroline)과 브라이언(Brian)의 집, 침실 3개인 니키(Nicky)와 클레어(Clare)의 집, 침실 2개 아파트에서 각각 살고 있는 앤(Anne), 나탈리(Natalie)의 집을 소개시켜주었다. 취재팀은 이들 집을 차례로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3년 첫 번째 집 지어져... 준비-공사 기간만 6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주민들은 날씨가 좋은 봄에 다같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주민들은 날씨가 좋은 봄에 다같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 스프링 힐 코하우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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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니키(Nicky)가 공사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입주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니키(Nicky)가 공사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입주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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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어진 건물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코하우징'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코하우징만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건물을 지은 것은 영국에서는 스프링힐 코하우징이 처음이다. 코하우징 초기 단계부터 참여했다는 니키(60)와 클레어(54)는 코하우징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스트라우드 지역에서 코하우징을 해보려는 그룹이 있었어요. 정기적으로 준비모임을 가졌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그룹이 되어버렸어요. 도무지 코하우징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죠(웃음). 그러다 주거 개발을 하던 데이빗이 스트라우드에 이사를 왔고, 투자자들을 모아서 이곳 부지를 샀어요. 이후 2001년에 허가를 얻는 데만 2년이 걸렸어요."

나탈리는 허가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청과 갈등이 있었어요. 구청장은 '이 사람들은 히피고, 녹색정당이고,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우리를 반대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한 사람이 이 부지를 다 가지고 싶어서 구청에 로비를 한 거였어요. 그 사람에게 '왜 코하우징을 반대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거였어요. 첫째, 이 사람들은 같이 식사를 한다. 둘째, 물건을 싸게 대량으로 구입한다. 셋째, 다들 싸울 것이다(웃음)."

허가를 얻은 이후에도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탈리는 "건축가들이 이 지역에 언덕이 많아서 어려워했고, 우리는 회사가 아닌 주민 협의체이다 보니까 건물을 지으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이상한 사람들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나탈리는 "이런 어려움 때문에 브리스톨(Bristol)에는 코하우징 준비만 9년을 하고 있는 그룹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탈리 역시 스프링힐 이전에 2번이나 코하우징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영국 코하우징 네트워크(the UK Cohousing Network) 사이트를 보면, 영국에서 안정적으로 코하우징을 하고 있는 커뮤니티는 14곳에 불과하다. 준비 모임은 40여개에 이른다.

2002년 5월, 드디어 공사가 시작됐다. 니키와 클레어는 공사가 시작되는 날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첫 삽을 뜨자, 색색의 풍선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고사 떡'이 아닌 '고사 케이크' 사진도 보인다. 클레어는 "여기가 지금 우리 집이 있는 곳"이라면서 흙과 건축자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마다 니키와 클레어의 딸 핀리가 활짝 웃으며 서있다. 2003년 11월, 니키 가족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첫 준비모임부터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4년,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 완공되기까지 2년이 걸린 셈이에요. 그 사이에 어떤 커플은 이혼하기도 했고, 옆집은 시공이 시작되기도 전에 두 번이 팔렸어요. 건설 과정에서 이건 내가 생각하던 게 아니라면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죠."

우여곡절을 겪으며 얻은 공간인 만큼, 집 구석 구석에는 집 주인의 개성과 정성이 묻어난다. 이날 방문한 집 가운데 어느 한 곳도 집 구조가 비슷한 집이 없었다. 손재주가 많은 캐롤라인(53)의 남편 브라이언(Brian)은 직접 가구를 손질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개인공간을 가지면서 공동공간을 갖는다... 핵심은 공동공간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캐롤라인(Caroline)이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공동작업장을 보여주며 집집마다 중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필요한 주민들은 언제든지 이용할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6일 오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캐롤라인(Caroline)이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공동작업장을 보여주며 집집마다 중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필요한 주민들은 언제든지 이용할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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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는 탁구와 당구를 즐길수 있는 놀이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는 탁구와 당구를 즐길수 있는 놀이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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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 있는 커뮤니티 룸은 요가, 노래, 바느질 등 다양한 여가생활 장소로 이용된다.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 있는 커뮤니티 룸은 요가, 노래, 바느질 등 다양한 여가생활 장소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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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는 집의 평수가 작아 세탁기를 집안에 구비하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공동세탁기를 설치해 놓고 있다.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의 공동주택인 커먼 하우스(Common House)에는 집의 평수가 작아 세탁기를 집안에 구비하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공동세탁기를 설치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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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 개념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는 스프링힐 코하우징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제인은 "코뮌(Commune)은 공동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지만, 코하우징은 개인공간을 가지면서 공동공간을 갖는다"면서 "처음 여기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나 막 우리 집에 들어오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개인공간은 내가 초청을 했을 때만 들어올 수 있다, 개인 공간을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 소개는 이곳에서 역시 10년을 살았다는 캐롤라인이 해줬다. 커먼 하우스는 모두 3개 층으로 되어있다. 가장 위층에 있는 식당에서는 매주 수·목·금요일 코하우징 주민들이 저녁을 함께 먹는다. 식비는 2.6 파운드. 한화로 4350원 정도(19일 외환은행 공시기준). 부담 없는 가격이다.

"밥을 같이 먹기 시작하면서 커뮤니티가 시작됐어요. 여기 살아도 매일 매일 이웃을 만나는 건 아니거든요. 스프링힐 코하우징에서는 18세 이상 주민이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씩 4명이 팀을 이뤄서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정관에도 적혀있어요. 어제는 제가 당번이라 25인분 요리를 했는데, 오후 4시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오후 7시에 끝이 났어요."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쇼파가 둥글게 놓여 있는 커뮤니티 룸이 나왔다. 중앙에는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이 남아있다. 캐롤라인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주민들이 이곳에서 연극을 한다"면서 "보통 3개월 동안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캐롤라인은 "주민들 중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아서 연극을 할 때면, 트럼펫이나 색소폰으로 무대음악을 담당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평소에도 요가, 노래, 바느질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열린다.

가장 아래층에는 탁구와 당구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용으로 쓸 수 있는 세탁기들을 놓아둔 공간, 목재 작업장도 자그맣게 있다. 캐롤라인은 "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버디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이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한국의 마을만들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이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한국의 마을만들기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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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의 직업은 마사지 테라피스트다. 아일랜드 출신인 캐롤라인은 "아일랜드는 가족 중심적 성향이라 커뮤니티가 강하지만, 영국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 사람들이 친해지기 어려워요. 그런데 여기는 달라요. 매주든, 한 달에 한 번이든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고, 북클럽도 있고. 아무집이나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구조라서 좋아요. 안전하다는 느낌도 들고. 그렇지만 코하우징이 하나의 '큰 가족'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갈등도 존재해요. 친해졌기 때문에 감정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무래도 집들이 붙어있다보니 프라이버시에도 민감해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스프링힐 코하우징에는 '갈등조정매뉴얼'이 있다. 제인은 "민수와 내가 싸웠다고 가정해보자"라며 강민수 기자를 가리켰다.

"이곳에서 7년 정도 살면서 마을에 4~5번의 큰 갈등이 있었어요. 민수와 내가 싸웠다면, 한 명씩 자신의 버디(친구)를 데리고 오는 거예요. 버디는 내 편을 들어주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해요. 먼저, 버디가 내 이야기를 모두 다 들어줘요. 그리고는 버디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요. 그 다음에는 나와 민수, 그리고 버디들이 4자 대면을 하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90%의 갈등이 해결이 됐어요."

'어떤 갈등이 있었냐'고 묻자, 제인은 "주로 소음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칼부림도 난다'고 하자, 제인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인은 "10%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어떻게 해야할지 마을 사람 모두가 고민 중"이라면서 "모두가 비폭력 대화를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주말에는 외부에서 전문가를 데려와서 주민들 간의 의사결정 방법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코하우징에서는 2주에 한 번씩 모든 주민들이 모여서 회의를 연다.

스프링힐 코하우징에서는 공동요리와 함께 1년에 20시간씩 공동체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한다.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자르고, 공동공간을 청소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집에서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기도 한다. 제인이 하고 있는 방문객을 담당하는 일도 공동노동의 일부다.

7살 프레야 "할아버지 할머니와 놀 수 있어 좋다"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제인(Jane)이 자신의 집에 놀러온 프레야(Freya)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제인(Jane)이 자신의 집에 놀러온 프레야(Freya)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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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힐 코하우징 주민들의 연령대는 4살부터 80살까지 다양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피터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피터는 크리스마스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제인의 집에 놀러온 7살 프레야(Freya)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같이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선생님으로 일하다 은퇴한 제인의 집에는 마을 아이들이 그린 그림, 장난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마을 사람들 간의 친밀한 관계가 부담이 되어서 스프링힐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에게 '텃새'같은 건 없을까? 앤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니까, 친해지기가 쉬워요. 공동 식사를 해먹고, 회의를 하면서 쉽게 친해져요. 파티도 자주해요. 닐의 60번째 생일 때 티파티를 했어요. 그 날 눈이 많이 와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이 다 왔어요. 닐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데, 제인이 파티를 잘 준비했어요.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코하우징에 살면서 아쉬운 점으로 앤은 정원을 꼽았다. 침실 2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앤은 "여기에서 집을 살 돈이면 일반 동네에서 침실 3개에 정원이 딸린 집을 살 수 있다"면서 "옥스퍼드에 있던 정원이 그립다"고 말했다. 대신, 앤은 공동 노동으로 마을의 정원과 텃밭을 가꾸고 있다. 여름이면 공동의 녹지공간에서 수시로 작은 파티가 열린다.

스프링힐에서 성대골 마을과 중계동 아파트공동체를 소개하다

오후 4시, 커먼 하우스에서는 취재팀을 위한 티타임이 있었다. 제인과 닐, 나탈리, 앤, 니키, 클레어, 피터를 비롯한 10여명의 주민이 모였다. 제인은 티타임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했다.

'마을의 귀환' 취재팀은 그동안 취재했던 한국의 마을공동체 가운데 동작구 성대골 마을과 노원구 중계동 청구 3차 아파트공동체를 소개했다. 엄마들이 중심이 된 에너지 자립마을 만들기, 역시 주부들이 주축이 된 아파트 커뮤니티 활동을 보면서 스프링힐 사람들은 흥미로워했다.

피터는 "한국 하면, 산업화라든가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말했고, 니키는 "한국의 에너지 넘치는 젊은 여성들을 이곳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따릉따릉~"

오후 6시 30분이 되자 스프링힐 코하우징에는 종이 울렸다. 커먼 하우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러 오라'며 울리는 종소리다. 니키는 커먼 하우스의 창문을 하나, 하나 열면서 종을 흔들었다. 토요일은 저녁을 함께 먹는 날이 아니지만 취재팀을 위해 특별히 식사 자리를 마련해줬다. 주민들은 각자의 집에서 수프, 샐러드, 감자 튀김 등을 준비해와서 함께 나눠먹었다.

물이 샘솟는 곳, '스프링힐'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니키(Nicky)가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식당에서 주민들에게 저녁식사를 알리는 종을 흔들고 있다.
 16일 오후 영국 스트라우드(Stroud) 지역에서 '스프링 힐 코하우징(Springhill Cohousing)'을 하고 있는 니키(Nicky)가 공동주택의 커먼 하우스(Common House) 식당에서 주민들에게 저녁식사를 알리는 종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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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을의 귀환, #영국, #코하우징, #스프링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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