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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한국 극장가에 기막힌 코미디 영화가 개봉했다. 감우성, 김수로, 신구, 김수미, 성지루, 신이 등 이름만 들어도 재미난 영화 <간큰가족>이었다.

영화는 간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에게 50억의 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가족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그리고 있다.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묘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통일이 되었을 때에만 유산 상속이 가능하다는 것.

이에 가족들은 통일이 되었다는 가짜 뉴스를 만드는 등 아버지를 상대로 웃지 못할 사기극을 벌이게 된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기쁜 소식에 아버지는 점차 기력이 회복되고, 가족들은 통일 소식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여기 <간큰가족>과는 반대 상황인 독일 가족이 있다. 통일된 사실을 숨겨야 하는 한 독일 가족의 웃지 못할 사기극, 바로 볼프강 베커 감독의 2003년작 <굿바이 레닌>이다.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독일판 '간큰가족'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인 크리스티아네는 늘 자식들에게 사회주의식 교육을 시킨다. 그러나 그녀는 다 큰 아들 알렉스(다니엘 브륄)가 베를린 장벽 붕괴를 주장하는 시위에 가담한 것을 보고는 충격에 8개월을 혼수 상태 속에 지낸다.

크리스티아네가 쓰러진 8개월 동안에 독일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많이 약해져 충격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알렉스는 고민에 빠진다. 열혈 공산당원인 어머니가 통일 소식에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알렉스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기극을 벌이기로 한다. 마치 독일이 통일이 되지 않은 것처럼 꾸미기로 한 것. 알렉스는 어머니가 좋아한 동독제 오이피클 병도 찾고, 방도 동독식으로 꾸미고, 더 나아가 동독 뉴스까지 친구와 함께 제작하기에 이른다.

독일의 <굿바이 레닌>과 한국의 <간큰가족>

영화 <굿바이 레닌>은 사기극이 시작되는 동기 자체에 대한 설정은 다르지만 이야기의 흐름 전개상 <간큰가족>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간큰가족>이 개봉했을 당시에 표절 시비가 일기도 했었다.

굳이 앞뒤를 따지자면 <굿바이 레닌>이 2003년에 개봉했고, <간큰가족>이 2005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간큰가족>이 표절했다는 쪽으로 주장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간큰가족>의 시나리오는 이미 <굿바이 레닌>이 제작되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었다.

이제 와서 어느 것이 가장 먼저 제작되었는지, 그 표절 시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실제로 두 영화를 모두 보고 나면 맥락상 비슷한 점이 무척이나 많지만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감동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간큰가족>이 좀 더 코미디에 기울어져 있다면, <굿바이 레닌>은 드라마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영화다. 둘 모두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 서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어디에 더 비중을 두었는지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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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은 <간큰가족>과는 다르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 자체가 진지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종일관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굿바이 레닌>이다. 비슷한 거짓말을 펼치더라도 <간큰가족>은 다소 불순하며 유머스러운 동기가 부여된 것이고, <굿바이 레닌>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동기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극 중 알렉스는 어머니가 충격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거짓말로 통일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없는 것을 있다고 거짓말하는 것보다 있는 것을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굿바이 레닌>은 <간큰가족>과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다.

이미 세상 전체가 통일된 기쁨으로 넘쳐나고, 온갖 자본주의의 산물들이 들어오면서 변화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것 자체에 무리수가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무리수를 코믹적인 요소들로 어렵지 않게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감동의 차이를 선사하는 <굿바이 레닌>

영화 <굿바이 레닌>은 독일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보거나 봤음직한 영화다. 그만큼 유명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간큰가족>이 개봉하면서 그 비교로 인해 더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굳이 또 <간큰가족>과의 비교를 통해 언급하자면, 감동의 깊이에도 차이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더 강한 감동을 선사하면서 웃었다가 울도록 해주는 영화는 <간큰가족>이다. 반면에 <굿바이 레닌>은 솔직히 격한 감동이나 슬픔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굿바이 레닌>은 짠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눈으로 보이는 슬픔을 선사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알렉스의 중저음으로 깔리는 나래이션으로 인한 감동, 그리고 마지막에서도 여전히 알렉스의 입으로 전달되는 감동이 있다.

특히, 유심해서 봐야 할 것은 '알렉스의 거짓말이 어디까지 통했는가'다. 어머니 크리스티아네는 어디서부터 알렉스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세상이 변화했음을 알게 되었을까? 더한 감동은 아들의 거짓말을 알고도, 그 마음을 눈치채고도 모른 채 한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침대에 누워 있는 크리스티아네와 어머니 곁에서 자신이 제작한 가짜 뉴스를 보는 알렉스의 투 샷을 보면 크리스티아네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얼굴로 무언가를 꾸준히 바라봄을 볼 수 있다. 그녀가 본 것은 TV 화면이 아니라, 아들인 알렉스의 얼굴이다.

'독일영화 다이어리'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소재

영화 <굿바이 레닌>은 앞서 소개한 7편의 독일영화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보여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스>부터 <베를린 천사의 시>까지 소개한 영화들이 대부분 독일의 느낌이 강했다면 <굿바이 레닌>은 훨씬 친숙하다.

통일이라는 매우 독일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도 같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오는 유사함과 <간큰가족>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굿바이 레닌>을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아무래도 계속해서 언급한 것처럼 <간큰가족>과 비교해서 보는 것이다. 그리하면 매우 유사한 장면들에 묘한 호기심이 일어날 것이고, 이와는 달리 감동의 차이와 색깔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로울 것이다.

영화는 제24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블루 엔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제16회 유럽영화상에서는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굿바이 레닌 볼프강 베커 간큰가족 독일영화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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