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철북> 포스터

영화 <양철북> 포스터 ⓒ Argos Film

어둡고 으스스한 밤, 한 아이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부터 이미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던 아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 어둡고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 그리고 어른들의 음탕하고도 외설적인 모습에 아이는 진저리를 친다.

결국에 3살이 된 소년은 스스로 계단에서 떨어져 성장을 멈추기로 한다. 3살에서 성장을 멈춘 아이는 양철북 두드리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였다.

그리고 소년은 무서운 능력을 지녔다. 소년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기 시작한 것이다.

소년은 그 모든 죽음이 자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소년은 그렇게 성장을 멈춘 채 살아간다.

북 치는 소년, 그 어려운 메시지

1979년에 제작된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영화 <양철북>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스스로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한 '오스카'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독일 나치 시대 소시민들의 모습을 묘한 시선으로, 더 나아가 냉소적으로 꼬집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양철북>은 다소 어려운 영화에 속한다. 수많은 모티브와 숨겨진 의미들이 영화 전체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장을 스스로 멈추기로 한 '오스카'가 보여주는 몇 가지의 설정은 판타지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다. 세상에 대한 부조리에 맞서 싸우면서도 경고의 의미에서 그치는 '오스카'의 메마른 북소리는 영화 전체에 삽입되어 있으며, 2번의 출생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가 주로 보여주는 장면은 폭력과 죽음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외설 등급 받았을 정도로 곳곳에 숨은 성

영화 <양철북>은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번 보면 볼수록 그 매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수수께끼처럼 함축되어 나타난 여러 숨은 의미와 모티브를 찾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양철북>이 내비치고 있는 메시지가 섬뜩하게 와닿을 정도다.

특히 영화에서 '오스카'의 북소리 다음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성(性)이다. 영화는 직설적으로 성을 비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간접적인 성 표현으로 보는 관객들에게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네 겹의 치마 밑에서의 인연으로 태어난 '오스카'의 어머니 이야기, '오스카'와 '마리아'의 비등산 놀이 등 모두가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관객들의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들이 영화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제작되고 18년이 지난 후에야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양철북>에 대하여 외설 등급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미성년자의 성행위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영화가 제작되고 한참이 지난 후에, 그 비디오를 모두 회수한 것이다. 1980년에 영화 <양철북>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부문을 수상한 것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양철북>의 한 장면

영화 <양철북>의 한 장면 ⓒ Argos Film / 양기승


섬뜩하고 기괴한 한 소년의 성장기

영화 <양철북>은 이렇게 여러 상징적인 의미와 성적 표현들로 인하여 평범한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어렵다. 영화 자체가 가지는 분위기도 그러하거니와, 주인공인 '오스카'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들 자체도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설정과 이야기는 영화 <양철북>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판타지로 가득한 영화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의 일부 판타지 요소는 관객들로 하여금 충분한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선사할 수도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오스카'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우며, 그 정도가 심하여 기괴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소설 속 글로 표현된 것보다 영상으로 나타난 <양철북>은 그렇게 섬뜩하다. 특별히 센세이션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영화는 공포 장르보다도 더 섬뜩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다분히 녹아있는 영화가 <양철북>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중 하나

영화 <양철북>은 귄터 그라스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도 볼 만한 영화다. 영화의 각본에도 귄터 그라스가 참여하여 그 내용에도 변화가 없다. 하지만 어느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보다 <양철북>은 더욱 더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그 만큼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은 총 3부작으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영화는 소설의 2부 분량에서 끝이 난다. 이런 차이에서 오는 재미도 소설을 먼저 접한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3부의 내용으로 후속편을 만들겠다는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희망 사항도 있었지만 지금은 무산된 상태다.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양철북>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마로니에 북스)'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명작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척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에 속하기는 하지만 1번 정도는 봐야 할 명작 중에 명작이다. 제6회 LA 비평가 협회상과 제5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고, 제32회 칸 영화에서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양철북 귄터 그라스 THE TIN D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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