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 The Criterion Collection

만일 당신이 여성이고, 인생에서 세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 살 것을 다짐할 수 있겠는가?

한 명은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다. 듬직한 모습도 보기 좋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 사람이 좋다. 하지만 능력은 부족하다.

다른 한 명은 처음부터 좋아했던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자상하고 능력도 적당히 있다.

마지막 한 명은 나이가 많고 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부유한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당신에게 세 남자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당신의 생계와 명예를 생각한다면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처절한 독일의 사회 내에서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의 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마리아 브라운이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에게는 한 남자와의 행복한 사랑을 꿈꾸는 평범한 여성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의 부양을 위해 남자를 이용할 줄 아는 요부가 될 수도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바로 파스빈더 감독의 1979년작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이다.

전쟁이 끝난 시대 속에서 한 여성의 홀로서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있을 무렵, 마리아 브라운(한나 쉬굴라)은 포탄이 떨어지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우열곡절 끝에 사랑하는 헤르만과 결혼한다. 하지만 신혼의 행복도 잠시, 헤르만은 전쟁에 끌려나가고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헤르만이 사라지고 마리아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미군들이 많이 가는 바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흑인 미군인 빌을 만나게 되고, 헤르만의 전사 소식에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사랑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사랑도 잠시, 죽은 줄 알았던 헤르만이 돌아오면서 마리아 브라운은 파란만장한 삶을 걷기 시작한다.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돌아온 헤르만을 위해 그녀는 세 번째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한 회사의 사장이자, 재력가인 오스발트를 만나게 된 마리아 브라운은 전혀 새로운 여성으로 변화해 가기 시작한다.

난해하고 어려운 마리아 브라운의 삶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제목만 보고 판단한다면 단순한 멜로라고 생각하기 쉬운 영화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는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느낌을 준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동시대적 영화인 <양철북>과는 달리,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는 한 여성의 삶을 일상적으로 그려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열악한 전후의 상황에서 갓 결혼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이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 마리아 브라운은 스스로의 가치를 이용할 줄 아는, 사회적으로 진화한 여성으로써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는 남성에게 이용당하는 여성이 아닌, 여성 스스로 남성을 선택하여 이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중심적인 내용은 사회적인 중심에 선 여성 마리아 브라운과 세 남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하여 마리아 브라운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에 주시하며, 겉으로 보이는 세 남자와의 관계 그리고 사랑의 감정 유무를 딱 잘라 분석하고자 한다면 영화는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세 남자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감정 상태를 보이는 그녀의 감정 상태 표현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영화의 청각적인 요소 삽입이 주는 난해함의 효과

영화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의 자체적인 표현 방법에서도 비롯되는 문제다.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세 남자 사이에 서있는 마리아 브라운의 감정 상태를 속시원하게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것이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이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모든 소리를 배제한 채, 들리는 아데나우어 수상의 라디오 연설 소리와 월드컵 경기 중계 소리 그리고 전쟁 중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안내 방송 소리까지. 모두가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영화가 때로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유도 이러한 요소들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들이 가지는 특징은 여러가지다. 우선은 이러한 청각적인 효과의 삽입은 관객들로 하여금 시대상을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대략적인 제2차 세계대전 후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 브라운에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얻는 효과도 있다. 세 남자에 대한 그녀의 감정 상태를 완전하게 개방하지 않아, 관객들로 하여금 모호한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마리아 브라운의 심중을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는 것이고,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열린 결말에 다다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의 한 장면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의 한 장면 ⓒ 양기승


충격적인 내용 전개와 결말의 연속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마리아 브라운의 이야기는 식상한 줄거리에 속하기 때문이며, 딱히 센세이션한 장면이 없을 수도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센세이션한 것을 뛰어넘어 관객에게 충분한 충격을 선사한다. 소소한 한 여성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이런 충격 요법은 영화에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요소다. 그 충격적인 내용 전개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언급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정도로 충격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열린 결말 형태로 끝나는 마지막은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마지막 충격이다. 마리아 브라운의 삶이 종료된 것인지, 아니면 시련의 한 과정인지에 대한 언급도 없거니와 결말에 대한 원인 또한 영화는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감독의 의도대로 찍었다면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마리아와 헤르만의 동반 자살로 끝을 맺었어야 하지만, 마리아 역할의 한나 쉬굴라가 반대하여 고쳐진 결말 장면이 바로 현재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결말이라고 한다. 이러하니 더욱 더 결말에 대한 해석은 애매모호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고, 보는 관객의 몫으로 돌려지는 것이다.

파스빈더 감독의 빛나는 걸작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에 대한 메시지와 결말에 대한 확실한 의미는 이 작품의 감독인 파스빈더만이 알 것이다. 영화를 빨리 찍기로 유명했고, 양성애자이면서 마약 복용자이기도 했던 그의 세계가 모두 담겨있는 영화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는 파스빈더 감독의 빛나는 걸작이라는 칭호와 함께 제1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는 마리아 역할의 한나 쉬굴라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보고 나면 다시금 생각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가 취하고 있는 약간의 몽롱한 느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은 반복적으로 보면 볼수록 세 남자를 향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 작품이다.

인생의 단 한 번의 결혼과 세 남자 사이에 서있는 마리아 브라운의 파란만장한 삶 이야기는 현재 DVD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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