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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1학년부터 자취 생활을 했으니 군대 3년을 합하면 셋방살이 인생을 30년 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월셋방이었고. 대학은 전셋방이었지요. 결혼 생활 13년 아직도 셋방살이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경남 통영에서 3년, 진주에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어찌보면 무능력한 남편이지만 아직도 아내는 하늘같이 섬기고 있지요. 얼마 되지 않는 수입과 13년 전셋살이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내는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 불만이 있다면 '싱크대'입니다. 10년 전 주인이 쓰던 싱크대를 아직까지 쓰고 있습니다.

주인에게 싱크대를 새 것으로 교체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우리도 언제 이사 갈지 모르는 사람이라 우리 돈으로 교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0년을 살았고, 10년을 썼습니다. 모든 만물이 오래 되면 낡고, 병들 듯이 싱크대는 물이 새고, 문도 떨어져나갔습니다. 물이 새는 자리는 검은 테이프로 감았습니다.

싱크대가 얼마나 낡았는지 모릅니다. 물이 새기 때문에 테이프로 감았습니다.
 싱크대가 얼마나 낡았는지 모릅니다. 물이 새기 때문에 테이프로 감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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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싱크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았습니다. 옛날 싱크대라 그런지 높이가 낮아 설거지 할 때마다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허리를 자꾸 숙이다보니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모든 곳이 아픕니다. 아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참으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더 이상 말은 하지 못하고, 묵묵히 낡고, 낮은 싱크대를 썼지요.

싱크대가 낮아 설거지 할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싱크대가 낮아 설거지 할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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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는 물이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뚫어 펑'을 몇 번 부었지만 그 때만 잠시 빠질 뿐, 조금 지나면 다시 막혔습니다. 하수구 뚫는 기구로 뚫어보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낮고, 낡은 싱크대가 이제 막히기까지 하니 불만은 더 쌓여갔습니다. 결국 아내는 제발 싱크대 하나만은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잡았습니다. 내일 이사를 가더라도, 아내에게 새 싱크대 하나는 바꿔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싱크대도 바꿔주고, 하수구도 고쳐주기로 하니 아내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혼자 할 수 없어 동생과 형님이 함께 했습니다. 형님이 보일러와 집수리 전문가라 이런 일은 잘 하지요. 동생은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 집에 고칠 곳이 있으면 말없이 잘 해주지요. 동생과 형이 뒤바뀐 집이 우리 집입니다.

아침부터 와서 하수구를 고쳤습니다. 하수구를 고치던 동생은 갑자기 싱크대를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참 못난 형이지요. 동생 말에 아무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얼마나 섬기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차마 고맙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이왕 고치고, 바꿀 것 집안을 조금 더 넓히기로 했습니다. 싱크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로 했습니다. 형님과 동생이 일을 하니 금방 끝났습니다.

동생과 함께 하수구 공사와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를 했습니다.
 동생과 함께 하수구 공사와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를 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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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새 싱크대를 보더니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작은 싱크대이지만 결혼 13년만에 처음으로 새 싱크대를 가졌습니다. 그것도 시동생이 사 준 싱크대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못난 남편 만나 제대로 된 싱크대 하나 해주지 못하고, 10년을 고생시켰으니 이런 남편도 없겠지요.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아내가 조금은 편하겠지요. 앞으로는 더 잘 해주는 남편이 되어야 할 것인데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새 싱크대에 주방 용품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활짝 웃었습니다.
 아내가 새 싱크대에 주방 용품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활짝 웃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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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가 있던 자리를 그냥 둘 수 없어서 도배를 했습니다. 도배도 처음이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싱크대가 있었던 자리는 워낙 더러워 신문지를 한 번 바르고 도배를 했습니다. 잘한 도배는 아니지만 집안이 훨씬 깨끗해졌습니다.

싱크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벽지를 바르고 있습니다.
 싱크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벽지를 바르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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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생활은 참 어렵습니다. 누울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만 자기 집에서 눕는 것과 셋방 살이를 하면서 눕는 것은 다르지요. 아내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언제쯤 내 집에서, 제대로 된 싱크대를 사용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10년만에 싱크대를 바꿔준 것처럼 그런 날이 오겠지요.

덧붙이는 글 | '세입자 이야기' 응모



태그:#전세, #싱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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