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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포럼 둘째 날인 지난 17일, 총회에서 연설하는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
 아비뇽포럼 둘째 날인 지난 17일, 총회에서 연설하는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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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에 다보스포럼이 있다면 문화에는 아비뇽포럼이 있다.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개최된 아비뇽포럼은 경제에 뒤지지 않는 문화의 힘을 확인하는 무대였다. 전 세계 경제, 문화, 미디어 전문가 250여 명이 초청된 아비뇽포럼은 오는 12월 15일부터 유네스코에서 열리는 정부간 협약회의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개최돼 특히 눈길을 끈다.

아비뇽포럼, "문화가 밥 먹여주나?" "그렇다"

유네스코 정부간 협약회의에서는 지난 2005년 11월 유네스코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문화다양성협약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할 전망이다. 문화다양성협약이 통과된 뒤 지금까지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집트, 아르헨티나, 중국, 캄보디아 등 총 193개 국가가 비준했다. 한국은 아직 유보 상태.

한편, 문화다양성은 부를 창출하지 못하고 끝없이 지원만 해줘야 하는, 이른바 '밑 빠진 독'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이때, 프랑스가 EU(유럽연합) 의장국인 올해 프랑스에서 개최된 아비뇽포럼은 '문화가 밥 먹여 주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각계 권위자들의 경험과 상세한 예를 통해 문화적 투자가 다양성을 보호하고 시민가치를 지켜줄 뿐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계기였던 것.

'성장 동력으로서의 문화'라는 기치 아래 올해 처음 문을 연 아비뇽포럼은 18일 낮 12시 30분(현지시각) 크리스틴 알바넬 프랑스 문화장관의 폐막 연설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비뇽포럼이 "문화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 알바넬 장관은 "문화예술의 창작은 문화다양성 보호를 위해 산업적인 관점 뿐 아니라 문화적 특수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문화다양성을 위한 공공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 정책이 제 역할을 못 할 경우 즉 시장논리에 내맡겨질 때 문화는 결국 경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문화의 성장'과 '문화에 의한 성장'이 필요한 시기임을 역설한 알바넬 장관은 "올해의 성공적 포럼 개최를 바탕으로 아비뇽포럼은 매년 개최될 것"이라 선언하기도. 알바넬 장관은 "특히 멀리서 날아온 한국 대표단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말로 폐막연설을 마무리 했다.

이보다 앞선 16일 개막식에 이어 17일에는 오전 총회 직후 4개의 워크숍이 동시에 진행됐다. 대한민국 대표로 나선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이 '세계화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발제를 한 바로 그 시간, 우리에게 영화 <연인>(1991)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자크 아노의 사회로 또 다른 위크숍이 진행됐다. 여기서는 '위기에 빠진 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이득'에 대해 토론했다.

"문화를 자랑스러워 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만찬에서 만난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자크 아노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했다.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만찬에서 만난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자크 아노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 했다.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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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아노를 만났다. 아비뇽포럼 이틀째인 17일, 아비뇽교황청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인사를 건네자 장-자크 아노는 주변에 있던 참석자들을 붙들고 한국 찬양에 여념이 없었다. '호들갑스럽다'는 말이 무색하도록. 장-자크 아노는 지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아래 장-자크 아노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 아비뇽포럼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프랑스가 EU 의장국인 올해 아비뇽포럼이 처음으로 개최됐다. 프랑스는 언제나 문화가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믿어왔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매우 오만하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방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아름다운 나라다. 우리는 프랑스 음식과 포도주를 사랑하고 프랑스 여성들의 패션 스타일을 좋아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세계화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우리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타인의 것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즉시 한국에 매혹됐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과 대화하는 게 좋았다. 프랑스영화와 다른 한국영화가 좋고 프랑스와 다른 한국의 음식과 풍경이 좋았다. 아비뇽포럼은 다양한 국가들이 만나서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수천 년 전부터 프랑스는 그림과 조각, 기념물 등 예술에 투자해왔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의 유산으로 내려오는 예술작품들을 보고 경험하는 것을 즐긴다. 아무리 상업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 해도, 문화가 비싸다 해도 문화 자체가 벌어들이는 수익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평소 내가 만나지 않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포럼을 통해 이틀 동안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우리 (영화)업종에서는 전 세계의 감독, 배우, 제작자들을 만난다. 건축가, 안무가, 요리사, 음악가, 패션디자이너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장차 매년 개최될 아비뇽포럼은 각자의 예술, 창작활동 들이 조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아비뇽포럼 참석자들은 평소 시간을 분초 간격으로 나눠 살 만큼 바쁜 사람들이다. 이들이 아비뇽에 온 이유가 뭘까.
"나와 동일한 이유일 것이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우리가 존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사고를 확장시킨다. 행복한 일이다. 말리와 아일랜드의 영화감독, 합창단 지휘자,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재단 책임자 등 같은 프랑스인이라 하더라도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사람들과 오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각각의 분야에만 매몰된 우리에게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6개월 전에 나는 내 친구 건축가인 장 누벨과 함께 2천여 명이 모이는 파티에 간 일이 있다. 그때 장 누벨이 말했다. '이봐, 장 자크. 너는 이 파티에 온 유일한 영화감독이야'. 나머지는 모두가 건축가들이었던 거다. 그러던 장 누벨이 여기서 요리사, 디자이너, 음악가들을 만났다. 모든 문화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우리는 목말라 있었다. 아비뇽포럼은 앞으로 전 세계 문화계 인사들이 만나고 서로 섞이는 장이 될 것이다."

"말리 아이들의 존엄 상실, 끔찍하지 않은가"

- 경제위기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아비뇽은 문화다양성을 역설하고 있다.
"왜냐면 문화가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상업화에 익숙한 지배적인 문화 즉 미국문화가 있다. 물론 우리는 미국문화를 존중한다. 그러나 뛰어난 미국문화는 다른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지배적인 문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각자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한국은 뛰어난 배우, 뛰어난 영화감독과 함께 매우 강력한 영화산업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한국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한국이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다른 국가들은 한국만큼 강력한 문화를 소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조차 문화적 위기에 놓여있다.

말리 영화감독 압데라만 시사코는 위기에 빠진 문화가 끔찍한 이유를 말리의 아이들을 예로 설명했다. 시사코에 따르면 말리 아이들은 말리의 국적을 가진 영웅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인이나 미국인이어야 비로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끔찍하지 않나. 이것은 존엄의 상실이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가 문화다양성 보호를 위해 싸워온 이유다. 문화다양성은 각국, 각 민족이 소유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동시에 타자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여행을 할 때면 나는 이전만큼 행복하지 않다. 각 나라의 모든 호텔이 닮았고 모든 도시가 닮았다.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것만 하니까. 모든 교외가 닮았다. 전 세계에 똑같은 슈퍼마켓에서는 똑같은 상품을 팔고 있다. 규격화다. 타자를 발견하는 기쁨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나."

- 한국인들은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던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여러분이 일궈온 문화 들을 보면 그렇다. 종교가 다르고 가족 간의 관계가 다르다. 높이 평가돼야할 부분이다. 이 같은 차이 때문에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 과정은 나를 풍요롭게 한다. 당신들이 나와 비슷했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 지난 2006년 당신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었다. 이때 당신은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를 지지했던 것으로 안다.
"한국영화가 위협을 받는 바로 그 순간, 한국영화인들이 한국의 문명을 한국어로 된 영화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프랑스영화 보호제도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다. 프랑스영화는 서구 국가에서도 미국영화에 저항할 힘을 가진 유일한 영화다. 프랑스에서 미국영화 대 프랑스영화의 싸움은 무승부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영화는 자국의 영화를 통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영화학도일 때 나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본, 중국, 터키, 러시아 영화를 보기 위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가기를 즐겼다. 오늘날에는 너무 많은 영화들이 너무 닮았다. 같은 생각을 전파한다. 이런 영화에 나는 관심이 없다. 한국인들처럼 자신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기본이다."

"스크린쿼터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미국"

지난 18일 열린 아비뇽포럼 폐막 총회 전경
 지난 18일 열린 아비뇽포럼 폐막 총회 전경
ⓒ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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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에 대해 아나.
"나는 한국영화의 제목이나 영화인의 이름을 기억할 자신이 없다. 발음하기에 너무 어렵다. 그러나 나는 한국영화를 수집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세계무대에 당당히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 감독의 지적 생명력 덕분이다.

내가 본 한국배우들 또한 매우 아름다웠음을 고백한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그들은 한국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눈은 크고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다. 이것은 서구인들뿐 아니라 아시아인들의 구미에도 맞는 신체조건이다. 한국인이 가진 우아함과 꾸밈없는 순수함 즉 자연미에 나 또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얌전한 다른 아시아 민족과 비교해 쾌활하고 밝다. 이런 성향들은 한국영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영화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리고 나는 한국 영화인들이 프랑스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좋아하고 프랑스가 가진 표현의 자유를 좋아한다. 프랑스와 이토록 먼 나라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프랑스 영화에서 받은 영감을 한국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교역이 아닌 교류다."

- 인상적인 한국영화가 있었나.
"제목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정확히 11년 전에 한국의 전쟁영화를 본 일이 있다. 고전영화였는데 매우 낭만적인 흑백영화였다. 현대 한국영화도 물론 좋아한다. 한국영화는 매우 폭력적이다. 한국사회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 축소 소식을 들은 바 있나.
"없다."

- 한국영화 146일 의무상영 기간이 73일로 줄었다.
"엿 먹은 거다. 이전에는 의무상영일이 146일이었는데 한미FTA 결과 73일로 줄었다고? 당신 생각에 이것은 누구에게 유리한 결과인가?"

- 물론 미국이다.
"당연하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미국이다. 이해할 수가 없다. 당신들은 왜 스크린쿼터 축소에 찬성했나. 이유가 뭔가. 돈과 문화를 바꾼 것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내게는 충격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할리우드와 함께 일하고 있으나 내가 할리우드와 일을 할 때 내 이익을 위해서 강력한 한국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문화의 접촉을 통해 문화는 발전한다. 강력한 한국영화산업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의 영화가 뛰어나야 하는 이유다. 한국영화를 죽이는 것은 상상력을 죽이는 것이요 예술가들의 경쟁력을 죽이는 것이다. 단 하나의 생각이 옳을 수는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대화가 존재할 수 없다."

"정치 지도자들, 한국 국민 희망 우선시 하길"

-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나.
"정치 지도자들은 상품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자국 문화의 존엄성과 자부심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민족주의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자부심은 타자를 싫어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내가 프랑스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당신을 만난 것이 자랑스럽다. 당신들에게 강한 민족을 보여줄 수 있어 자랑스럽다. 모두의 행복은 각자의 행복에서 비롯된다. 세계영화의 힘은 하나의 생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물론 한 나라에서 자국의 영화가 나오지만 그 나라의 강력한 힘에서 다양한 재능이 나온다.

정치 지도자들이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한국 국민의 희망을 우선시 했으면 좋겠다. 나는 한국인들이 자국에서 더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한국 영화감독, 닮고 싶은 한국배우들을 기대할 것이다. 한국영화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한국을 위해 결코 좋은 일일 수 없다. 이것은 한국 정치인들에게 주는 선언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우러난 생각이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즉시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 매혹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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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비뇽포럼, #장-자크 아노, #스크린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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