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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몸보신 아귀탕으로 하세요
▲ 아귀탕 올여름 몸보신 아귀탕으로 하세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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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접어들면서 날씨마저 뒤죽박죽 국정 운영을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처럼 흐릿하고 후덥지근하다. 잇따른 밤샘 촛불집회 참가로 온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지면서 속마저 몹시 쓰리다.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꽉꽉 틀어막고 있는 전경들의 닭장차처럼 꽉꽉 막힌 세상, '신(新)보릿고개'가 이어지는 세상을 맞아 허리마저 휘청거린다.          

답답하다. 이 답답한 세상을, 이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음식은 없을까. 이명박 정부에 지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한꺼번에 챙겨주는 음식. 한 그릇 게눈 감추듯 뚝딱 먹고 나면 흐릿하고 후덥지근한 이 세상을 다시 헤쳐 나갈 힘이 불끈불끈 나게 하는 음식. 그런 음식이 아귀탕이다.

매콤하면서도 칼칼한 감칠맛이 기막힌 아귀탕은 무더운 여름철 땀을 많이 흘려 기운이 쭈욱 빠졌을 때 먹는 여름철 보양음식이다. 아귀탕은 특히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 이마와 목덜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 그릇 먹고 나면 금세 속이 편안해지면서 피로까지 싹 사라지게 한다. 때문에 해장국으로도 매우 좋은 음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귀 하면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 등을 듬뿍 넣고 매운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내는 찜으로 먹는 음식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아귀탕의 제맛을 아는, 아귀탕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안다. 아귀탕이 얼마나 시원하고 칼칼하며, 얼마나 구수하고 깔끔하며, 얼마나 깊은 감칠맛이 기막힌 음식인가를.

서울 경기권에서 가장 처음으로 아귀조리를 시작한 아귀 원조집 실내
▲ 낙원상가 아귀 원조집 서울 경기권에서 가장 처음으로 아귀조리를 시작한 아귀 원조집 실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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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면 배 갈라 생선 꺼내고 선창가에 휙 던지던 고기

아귀는 머리와 배가 몹시 큰 바다 물고기다. 특히 아귀의 큰 배는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웬만한 물고기를 다 삼켰다가 소처럼 되새김질을 한다. 때문에 예전에는 어부의 그물에 아귀가 걸리면 배를 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조기와 전어 등 생선들만 꺼낸 뒤 선창가에 휙 내던졌다.

머리와 배만 큰 아귀는 조리해 먹는 물고기가 아니라 버리는 물고기였다는 그 말이다. 아귀는 몸무게가 10kg이 넘는 큰 것도 있지만 대부분 5~7kg이다. 하지만 아귀는 제 아무리 크다 해도 꼬리에 살 한두 토막이 붙어 있을 뿐, 삽날처럼 생긴 머리와 해파리처럼 너울거리는 지느러미, 쪽 빠진 꼬리를 제외하고 나면 먹을 것이 거의 없다.

1960년대 중반. 나그네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마산 어시장 부둣가에 나가 보면 머리만 엄청나게 큰 아귀가 여기저기 버려져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거지들도 꾸덕꾸덕 말라가고 있는 아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가끔 개나 고양이가 버려진 아귀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거나 물어뜯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아귀를 맨 처음 식탁에 오르게 만든 이는 선창가에서 일을 하는 가난한 부두 노동자였다. 하루는 선창가에서 국밥을 파는 한 할머니 집에 부두 노동자 서넛 선창가에 버려져 있는 꾸덕하게 마른 아귀를 들고 들어와 조리를 해 달라 했다. 할머니는 오죽 먹을 게 없었으면 아귀를 들고 왔을까 여기며 미더덕찜을 만들 듯이 아귀찜을 조리해 내놓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단다. 그때부터 아귀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팽이버섯, 콩나물, 두부, 비껴 썬 붉은 고추, 새우, 여러 가지 채소 등이 아귀와 어우러져 한바탕 난장을 벌이고 있다
▲ 아귀탕 그곳에 팽이버섯, 콩나물, 두부, 비껴 썬 붉은 고추, 새우, 여러 가지 채소 등이 아귀와 어우러져 한바탕 난장을 벌이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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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가루가 바알간 국물과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물김치
▲ 물김치 얼음가루가 바알간 국물과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물김치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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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에 아귀골목에 가면 건강이 보인다

"아귀 하면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으뜸이지요. 아귀는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 살 또한 독특한 맛이 있어 뼈 외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답니다. 아귀는 특히 저지방 고단백 음식이어서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물론 동맥경화, 당뇨 등 성인병과 암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지요."

종로3가 낙원상가 아귀찜 골목에 가면 온통 '마산 정통 아구찜' '원조 아구찜' 등의 비슷비슷한 간판이 줄지어 서 있다. 표준어 '아귀'가 아니라 '아구'라 적어 놓은 숱한 간판을 바라보면 어느 집이 진짜 '원조' '정통' 아귀 전문점인지 마구 헛갈린다. 게다가 어느 집을 들여다보아도 손님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그중 아귀찜 골목 첫 번째 집이 서울 경기권에서 가장 먼저 아귀조리를 시작한 아귀조리 전문점이다. 이 집 주인 윤청자(69)씨는 "처음 이 집에서 아귀 조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아귀조리를 하는 집이 한 곳도 없었다"며 "어느날부턴가 이곳에 아귀 조리 전문점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아귀 골목이 되었다"고 말한다. 

윤씨는 "저희는 맛을 으뜸으로 치기 때문에 값 싼 냉동 아귀는 쓰지 않고 값 비싼 생물 아귀만을 노량진에서 구입해 사용한다"라며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더 이상 아귀 조리를 직접 하기가 어렵다. 까닭에 요즈음에는 지난 37년 동안 쌓은 아귀 조리 비법을 아들에게 전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싱싱한 진녹색 풋고추
▲ 풋고추 싱싱한 진녹색 풋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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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겨자 한 접시
▲ 겨자 노오란 겨자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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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매콤칼칼', 콩나물 '아삭아삭', 미더덕 '오도독', 아귀살 '쫀득쫀득'

6월 17일 점심 나절. 시인 윤재걸(언론인, 61) 선생, 바보새 출판사 대표 김규철(50)씨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낙원상가 옆 아귀 조리 전문점. 10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차림표에 아귀탕과 아귀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물탕과 해물찜도 차림표 한 귀퉁이에 버젓이 붙어 있다.

이 집 주인 윤씨에게 아귀조리 전문점에 웬 해물조리냐고 묻자 요즈음 아귀조리 전문점에 들어와 해물조리를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어나 너도 나도 해물조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아귀조리 전문점이라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들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는 투다.

벽에 걸린 차림표에 붙어 있는 아귀탕(대 5만원, 중 4만원, 소 3만5천원)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요즈음 '신 보릿고개'를 맞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이므로 큰 맘 먹고 와야 할 정도다. 그중 가장 작은 것 하나를 시키자 주인이 빙그시 웃으며 "소자 하나만 해도 3~4명이 소주 한 잔, 밥과 함께 느끈하게 먹고도 남는다"고 귀띔한다.

잠시 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짐해지는 아귀탕이 불판과 함께 식탁 위에 올라온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이 집에서 아귀탕을 시키면 밑반찬이 꼭 4가지만 나온다는 점이다. 얼음가루가 바알간 국물과 예쁘게 어우러져 있는 물김치, 싱싱한 진녹색 풋고추, 구수한 맛이 풍기는 된장, 그리고 노오란 겨자 한 접시가 그것. 

10년 앞에 먹었던 술독까지 땀으로 쪼옥 빠져나오는 아귀탕
▲ 아귀탕 10년 앞에 먹었던 술독까지 땀으로 쪼옥 빠져나오는 아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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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탕의 시원한 국물에 기름기가 촤르르 흐르는 쌀밥을 말아먹는 기막힌 맛은 보너스
▲ 아귀탕 아귀탕의 시원한 국물에 기름기가 촤르르 흐르는 쌀밥을 말아먹는 기막힌 맛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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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앞에 먹었던 술독까지 땀으로 쪼옥 빠져나오는 아귀탕

소주 한 잔 나눠 마시며 풋고추를 된장에 콕콕 찍어 입에 몇 번 물고 있자 어느새 아귀탕이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아귀 특유의 구수한 내음을 풍기기 시작한다. 냄비 뚜껑을 열자 그곳에 팽이버섯, 콩나물, 두부, 비껴 썬 붉은 고추, 새우, 여러 가지 채소 등이 아귀와 어우러져 한바탕 난장을 벌이고 있다.

국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자 매콤하면서도 칼칼한 깊은 맛이 혀를 깜짝 놀라게 한다. 아귀탕 난장의 조연 콩나물을 건져 입에 넣자 아삭아삭 씹히는 감칠맛이 혀를 두 번 놀라게 한다. 아귀탕 난장의 조연 미더덕을 건져 입에 넣자 오도독 씹히는 향긋한 바다 맛이 혀를 세 번 놀라게 한다. 아귀탕 난장의 주연 아귀살을 겨자에 찍어 입에 넣자 쫀득쫀득 씹히는 고소한 맛이 혀를 네 번 놀라게 한다.

국물 한 접시 떠서 후루룩후루룩 삼키면 10년 앞에 먹었던 술독까지 땀으로 쪼옥 빠져나오는 아귀탕의 시원한 국물에 기름기가 촤르르 흐르는 쌀밥을 말아먹는 기막힌 맛은 보너스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 '밥이 주식'이라지만 반찬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밥이 어디 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아귀탕 국물을 바닥까지 거의 비워낼 즈음이면 이마와 목덜미는 땀으로 목욕을 한다. 그때 얼음조각과 함께 물김치를 떠먹으면 이마와 목덜미에서 마치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시원해지면서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진다. 답답한 이 세상 온갖 시름들이 흐릿하고 후덥지근한 장마전선 속으로 사라진다. 올여름, 무더위가 풍덩 빠져 사라지는 아귀탕으로 몸보신하는 것 어때요?


태그:#아귀탕, #낙원상가 아귀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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