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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가치 제대로 느껴 보세요
▲ 대패삼겹살 만원의 가치 제대로 느껴 보세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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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유가 폭등에 하루가 다르게 생필품 값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그렇잖아도 가계가 휘청거리고 있는 서민들은 '新보릿고개' 시대를 맞아 아등바등 힘겹게 사느라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는 것만 같다. 꽉 죈 허리띠를 더 바짝 졸라매도 살기 어려운 세상. 돈 만원이 예전의 돈 천원보다 더 가치 없는 세상.

돈 만원을 들고 시장에 나가 본 사람은 안다. 배추 서너 포기를 사는 사람들이 왜 돈 500원을 놓고 주인과 실랑이를 계속하고 있는지. 마늘이나 대파 한 단을 사는 사람들이 왜 돈 1~200원 차이를 놓고 어느 것을 고를까 고민하고 있는지. 생선이나 삼겹살 가게 앞에 선 사람들이 왜 입맛만 쩝쩝 다시다가 축 처진 어깨로 되돌아서는지를. 

그렇다고 잡식성인 사람이 초식동물처럼 매일 채소만 먹고 있을 수도 없다. 어디 재래시장보다 더 값 싼 삼겹살을 파는 곳은 없을까. 오랜만에 만난 가까운 벗이나 눈에 몽땅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가족끼리 빙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삼겹살 한 번 푸짐하게 나눠 먹을 곳은 정말 없는 것일까. 

있다. 차돌박이처럼 얇고 푸짐하게 나오는 삼겹살, 언뜻 보기에 차돌박이처럼 붉은 살점 곳곳에 하얀 띠를 두르고 있는 삼겹살. 바로 '대패삼겹살'이다. 마치 대패로 얇게 밀어놓은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대패삼겹살은 값도 아주 싸고 양도 푸짐하지만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고소한 감칠맛 또한 끝내준다.

대패로 얇게 밀어놓은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대패삼겹살
▲ 대패삼겹살 대패로 얇게 밀어놓은 것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대패삼겹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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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가치 제대로 느껴보세요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와 곧바로 직진해서 2~3분 정도 걸어가면 식당 안팎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집이 있다. 그 집이 바로 1인분에 1천500원 하는 값 싼 삼겹살을 파는, 요즈음 눈을 몇 번이나 씻고 찾아보아도 쉬이 찾을 수 없는 대패삼겹살 전문점이다.

그렇다고 이 집의 인테리어가 몹시 초라하다거나, 삼겹살의 양이 형편없이 적다거나, 삼겹살의 맛이 1인분에 8천원 하는 삼겹살에 비해 뒤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니, 일반 삼겹살 전문점보다 인테리어가 훨씬 깔끔하며, 양도 훨씬 푸짐하다. 게다가 고기가 질기지 않고 몹시 부드러우며, 맛도 탁월하다.

특히 큰 벼루처럼 생긴 널찍한 불판에 수북이 쌓인 대패삼겹살을 수북이 올려놓고 마늘, 김치와 함께 슬쩍슬쩍 구워먹는 맛은 차돌박이 못지않다. 밑반찬 걱정도 없다. 처음 자리에 앉으면 밑반찬을 차려주지만 밑반찬을 다 먹고 나면 언제든지 먹고 싶은 만큼 더 먹을 수 있다. 이는 식당 들머리에 밑반찬을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차려놓았기 때문이다. 

'新보릿고개'로 주머니 사정이 몹시 어려운 시대, 이 집에 가야 돈 만원의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2~3명이 자리에 앉아 대패삼겹살 5인분을 시키고, 소주 한 병 시켜봐야 1만500원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까닭에 나그네가 이 집 대패삼겹살을 '新보릿고개'를 넘기는 비밀병기라 소문낼 만하지 않은가.

적상추, 파저리, 김치, 간장에 담근 양파, 마늘, 된장, 간장겨자소스
▲ 밑반찬 적상추, 파저리, 김치, 간장에 담근 양파, 마늘, 된장, 간장겨자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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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벼루를 닮은 널찍한 불판에 대패삼겹살을 수북이 올리자 이내 치익칙~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 대패삼겹살 큰 벼루를 닮은 널찍한 불판에 대패삼겹살을 수북이 올리자 이내 치익칙~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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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에 1천500원 하는 삼겹살 구경해 봤어요?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먹으러 갑시다. 요즈음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 고기를 먹지 못했더니, 온몸에 기름기가 다 빠져 나갔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아니,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면서 웬 삼겹살 타령?"
"1인분에 1천500원 하는 삼겹살 구경해 봤어요?"
"술도 마시기 전에 벌써 취해버렸나? 요즈음 세상에 그렇게 값 싼 삼겹살이 어디 있소?"
"만원만 투자하시오. 나머지는 내가 모두 책임질 테니까."

지난 15일(일) 밤 10시. 시인 이적, 이주형 등과 함께 찾은 지하철 7호선 면목역 옆 대패삼겹살 전문점. 이 집에 들어서자 일요일 꽤 늦은 시각인데도 남은 자리가 하나뿐일 정도로 대패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대패삼겹살의 값이 싸다고 해서 '값싼 비지떡'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꼭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아, 유니폼을 예쁘게 차려 입은 20대 후반 남짓해 보이는 여종업원에게 대패삼겹살 5인분을 시키자 큰 벼루 같이 생긴 널찍한 불판에 불부터 먼저 켠다. 차돌박이처럼 얄팍한 대패삼겹살은 불판을 먼저 가열한 뒤 슬쩍슬쩍 구워 먹어야 대패삼겹살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단다.

그렇게 말을 흘리며 총총총 주방으로 걸어간 여종업원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적상추, 파저리, 김치, 간장에 담근 양파, 마늘, 된장, 간장겨자소스 등을 식탁 위에 주섬주섬 차린다. 이어 대패삼겹살이 엄청나게 큰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져 나온다. 모두들 눈이 크게 떠지고 입이 절로 벌어진다.

고기가 종잇장처럼 아주 얇다 보니 불판에 올리기 무섭게 바로바로 집어먹어야 한다
▲ 대패삼겹살 고기가 종잇장처럼 아주 얇다 보니 불판에 올리기 무섭게 바로바로 집어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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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워진 대패삼겹살을 간장겨자소스에 찍어 입에 넣자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 대패삼겹살 잘 구워진 대패삼겹살을 간장겨자소스에 찍어 입에 넣자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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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보릿고개'에 지친 세상살이 시름 싸악~

"어휴~ 이렇게 많은 걸 누가 다 먹어? 3인분만 시킬 걸."
"이게 보기는 이래도 막상 구워놓고 보면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요. 마늘, 김치와 함께 지글지글 구워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입에 넣으면 맛이 기막히지요."
"이 집 소스도 특이하네."
"일반 집에서는 삼겹살 소스를 참기름에 소금을 넣고 만들지만 이 집에서는 간장과 겨자를 섞어 만든답니다. 한번 찍어 먹어 보세요. 맛이 독특할 겁니다."

큰 벼루를 닮은 널찍한 불판에 대패삼겹살을 수북이 올리자 이내 치익칙~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고기가 종잇장처럼 아주 얇다 보니 불판에 올리기 무섭게 바로바로 집어먹는 재미가 마치 차돌박이를 구워먹는 듯하다. 잘 구워진 대패삼겹살을 간장겨자소스에 찍어 입에 넣자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소스에 찍은 대패삼겹살 서너 점 상추 위에 올려놓고 불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마늘과 김치를 얹어 쌈을 싼 뒤, 소주 한 잔 캬! 마신 뒤 입에 넣는다. 대패삼겹살의 부드러운 맛과 상추, 마늘의 향긋한 맛, 구운 김치의 새콤달콤한 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눈가에 돼지머리의 웃는 눈처럼 잔잔한 미소가 절로 흐른다.

불판에 올리기 무섭게 바로바로 집어먹는 재미가 마치 차돌박이를 구워먹는 듯하다
▲ 대패삼겹살 불판에 올리기 무섭게 바로바로 집어먹는 재미가 마치 차돌박이를 구워먹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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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 먹는 냉면(2천원) 한 그릇도 한 줄기 소나기처럼 속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 냉면 후식으로 먹는 냉면(2천원) 한 그릇도 한 줄기 소나기처럼 속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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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보릿고개'에 지친 세상살이의 시름은 소주 한 잔에, 지친 몸과 마음은 대패삼겹살의 고소한 감칠맛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대패삼겹살을 다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먹는 냉면(2천원) 한 그릇도 한 줄기 소나기처럼 속을 시원하게 달래준다. 이 집 냉면의 특징은 일반 냉면처럼 돼지수육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은 계란 반쪽에 송송 썬 오이채를 얹어낸다는 것이다. 근데도 세상살이의 시름까지 싸악~ 씻어주는 그 얼얼함이라니.

'新보릿고개'가 서민들의 허리띠를 마구 옭죄고 있다. 절약! 절약! 절약을 외치며 아무리 몸부림쳐도 지갑은 점점 더 얇아지기만 한다. 어디 뾰쪽한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이명박 정부가 만든 이 지독한 '新보릿고개'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까. 이런 때 맛 좋고 양 많고 값 싼 대패삼겹살 한 접시 어떨까.


태그:#대패삼겹살, #냉면, #면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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