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포스터2

영화포스터2 ⓒ 홈페이지

영화나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다. 허구의 세계란 무엇인가? 현실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현실에선 없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세계는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공의 세계이며 상상의 세계이다. 잘된 영화나 소설이란 그걸 감상하는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현실과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있다.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그대로 카피하여 적당하게 편집한 기록영화를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이다. 가공의 세계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편집의 과정만을 거쳤을 뿐, 허구나 상상을 가미하진 않는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에는 현실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명징성이 담겨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인간의 정서를 깊숙하게 건드리는 부분에선 한계가 있다. 대저 인간이란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누군가가 건드려줄 때 감동이라는 바다에 빠지게 된다.

1948년 이탈리아의 탁월한 사실주의 감독인 비토리오 데시카는 영화적 장치와 다큐멘터리적 장치를 변증법적으로 결합한 작품 하나를 세상에 발표했다. 영화 같은 다큐멘터리이자,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인 <자전거 도둑>이란 작품이다.

주인공인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조라니 분)는 실제 무명의 공장노동자이며 그 아들로 나오는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 분)는 거리의 부랑아였다. 미국의 제작자가 제작비를 대면서 미남배우를 쓰라는 권고를 했을 때, 매몰차게 거절한 그의 고집이 세계10대 영화에 반드시 들어가는 <자전거 도둑>을 탄생시켰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피폐한 로마이다. 전쟁에 패한 이탈리아 로마의 허름한 거리. 수많은 실업자들과 부랑자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그리고 건물 계단의 한 쪽에선 일단의 실업자들이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장 앞에 몰려 있다.

카메라는 흑백의 영상미를 통해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팍팍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노동자 안토니오를 발굴해낸다. 3년간 실업 상태에 있던 그가 마침내 직업을 구하게 된 것. 그런데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자전거를 갖고 와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자전거'는 주제이자 소재가 된다. 그리고 삶의 연속성을 담보해내는 소중한 오브제로 작용한다. 안토니오에게 있어 자전거는 삶이자 목표이다. 자전거만 있으면 그와 그의 가족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해결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전거가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전당포에 맡기고 만 것이다.  

<자전거 도둑>에는 단 한 차례도 스튜디오 촬영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 장면은 철저히 로케이션 촬영이며 건물과 식당, 거리 곳곳에서는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적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전후 이탈리아 민중의 피폐한 삶을 여러 가지 소도구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가령, 전당포에 가득 저당 잡혀 있는 자전거들과 침대보, 자전거 수리점 들에 널부러진 자전거 부품들, 안토니오의 자전거를 훔쳐간 사내가 살고 있는 빈민가의 더러운 집들이 그것이다.         

안토니오는 아내의 도움으로 자전거를 찾은 후에 안정된 직장을 찾았다는 기쁨에 들뜨게 된다. 그의 직업은 벽보를 붙이는 단순한 것이지만 그의 직장은 그에게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야근수당과 휴일수당, 심지어 가족수당까지 주는 생명과도 같은 직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첫 출근하는 날 무참하게 깨어지고 만다. 첫 벽보를 붙이는 과정에서 목숨과도 같은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 것이다. 자전거 도둑을 죽어라고 쫓아가는 안토니오의 얼굴표정. 실제 공장노동자인 그의 얼굴에서 풍겨나는 고뇌와 슬픔을 감독은 흑백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잡아낸다.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홈페이지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그리고 화면 구성 또한 기교가 없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줄거리와 기교 없는 화면 구성이기에 네오리얼리즘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가 된 것이다. 등장인물을 이상화하지도 영웅화하지도 않으며, 현실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위주로 하는 네오리얼리즘은 2차 대전 말기의 특별한 영화 운동이었다.

이 특별한 영화 운동은 로케이션 촬영을 기본으로 했으며 비직업배우를 기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또한 현실의 사진들을 있는 그대로 나열하는 듯한 화면 구성을 통해 현장감과 생동감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영화 <자전거 도둑>은 네오리얼리즘의 교과서적인 영화이자 문법이 되었다. 비평가들의 찬사가 어렵고 따분한 영화에만 바쳐지는 것이 아님을 입증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자전거를 통해 생의 희망을 찾으려던 평범한 이가 결국엔 자전거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신이 자전거 도둑이 된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론 숙연하다. 일요일의 해질녘, 거리의 식당에서 아들에게 피자를 사주는 안토니오의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눈물겹다. 자전거를 훔치다가 붙잡힌 아버지의 모자를 주워들고 아버지의 이름을 외치는 아들의 모습은 왜 이 영화가 사실주의의 걸작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루이지 바르톨리의 작품을 체자레 자바티비가 시나리오로 각색했으며, 데시카는 이 시나리오를 탁월한 사실주의 기법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분명 이 영화는 플롯과 대사를 가진 허구의 세계이다. 그러나 너무 사실주의적인 기법 때문에 영화가 아닌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나 잘된 작품인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충분히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을 뚜렷하게 안겨주는 작품인 것이다.

자전거 주인의 선처로 인해 경찰서로 가게 된 것을 면하게 된 안토니오. 안토니오와 아들 브르노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해질녘 로마의 거리를 하릴없이 걸어간다. 수치와 좌절감, 허망함에 의해 부자는 충격을 받은 채 터벅터벅 거리를 헤맨다. 그러나 두 사람이 꼭 잡은 손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그리운 정이 흐른다.

사랑와 이해의 교감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묻어나는 것이다. 안토니오는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아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손을 꼭 잡는다. 그 맞잡은 손에서는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손에서는 이런 멜로디가 흐른다. ‘생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있다.’

만일, 사실주의가 뭔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한다. 만일, 영화적 장치와 다큐멘터리적 장치를 동시에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한다. 또 만일, 무기교가 때론 가장 기교가 넘치는 장치임을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한다. <자전거 도둑>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등장시킨 영화 중에서 걸작이란 칭호를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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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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