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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나누어 줄 필요가 있겠소?”

성곤이 노란색 녹피주머니를 열자 운중보주와 맞은편에 앉은 상만천이 제지했다. 성곤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들까지 모두 죽일 필요는 없지 않소?”

말과 함께 세 알의 단약을 자신의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면서 가장 먼저 중독증상이 나타난 궁수유에게 다가갔다. 이미 궁수유는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고, 입술은 말라 터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성곤은 세 알의 단약을 궁수유의 입에 넣어주었다.

“…”

상만천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성곤을 바라보았지만 제지는 하지 않았다. 굳이 성곤의 심기를 건들 필요는 없었다. 성곤이 말한 의미는 분명했다. ‘아이들까지…’라는 말은 상만천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운중은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 정도라면 성곤의 생각대로 처리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제지할 필요는 없었다.

“받거라.”

성곤은 상만천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다시 추교학에게 세 알의 단약을 건넸다. 이어 차례로 모가두와 옥기룡에게도 나누어 주고는 조금 떨어져서 서있는 장문위에게 단약을 던졌다. 장문위가 날아온 단약을 받고는 사부를 잠시 바라보다 성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부님께는…”

장문위에게는 아직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었던가? 성곤이 고개를 저었다.

“재보께서는 아마 네 사부에게 해약 주는 것을 원치 않을게다.”

그 말에 상만천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자들에게 해약을 나누어주는 것이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그리 큰 위협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인한 것이고, 상만천의 목적은 운중 하나뿐이었다.

“…”

장문위가 손바닥에 올려놓은 해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듯 했다. 허나 그 순간 장문위의 손이 약간 비틀리며 단약은 곧바로 운중에게로 향했다. 그것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부님께서 먼저 드시는 것이….”

헌데 그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운중이 가볍게 날아오는 단약을 향해 손짓을 하자 그 단약은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장문위의 입을 향해 날아갔다. 장문위는 말을 하다말고 자신의 벌린 입으로 단약이 날아오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단약을 입으로 받아야했다.

그것을 피할 수 없었거나 막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놀랐다. 아니 이 안에 있는 인물들 모두 놀랐다. 아주 간단하게 보여준 사부의 한 수는 그가 중독이 되었든 아니든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아직도 이 사부를 믿지 못하는구나.”

입을 연 운중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전신에서는 알 수 없는 기세가 뿜어지고 있었으며 초췌한 얼굴은 어느새 평상시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사부님…”

장문위 뿐 아니라 아직 단약을 삼키지 않고 있던 옥기룡과 모가두가 동시에 외쳤다. 성곤이 놀란 듯 외쳤다.

“자네… 중독이 되지 않은 것인가?”

성곤의 얼굴색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역시 정말 놀란 듯 했다.

“왜? 내가 중독 되지 않아서 실망했나?”

그것은 운중이 무형독에 중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말이었다. 놀람이 극에 달한 인물은 역시 무형독을 풀었던 중의였다. 그는 입을 딱 벌리고 말을 하지 못하다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형독에 중독이 되지 않을 정도였나? 우리는 정말 자네를 모르고 있었군.”

그것은 반드시 운중에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토록 자신을 가지고 있던 무형독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에 찬 중얼거림이었다. 운중이 빙그레 웃었다.

“자네의 용독 솜씨를 피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더구나 무형독을 말일세.”

아직까지도 친근한 친구를 위로하듯 하는 말투였다. 중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치켜뜨자 뭔가 깨달은 듯 성곤이 탄성을 뱉었다.

“그렇군!”

감탄이 가득 찬 음성이었다.

“자네는 스스로 무형독을 몸 밖으로 배출해 낸 것이군.”

성곤의 시선은 운중의 오른편 바닥을 보고 있었다. 바로 상만천이 들어올 때 다섯 모금이나 토해낸 핏자국은 아직까지도 물기가 다 마르지 않고 있었다. 성곤의 말과 시선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데 충분했다.

운중은 피를 토한 것이 아니라 독을 토한 것이다. 이미 중의가 독을 사용할 것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상만천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배출해냈던 것이다. 성곤이 허탈한 듯, 한편으로는 정말 감탄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다.

“역시 운중이야…자네는 언제나 나를 감탄하게 만드는구먼….”

상만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래 예상하지 않았던 좋은 기회를 얻었다가 날렸다는 애석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조금 귀찮게 되었구려. 좀 편하게 일을 처리하려 했는데….”

그 때였다. 밖에서 시비인 미려(美麗)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주님께 아뢰옵니다. 좌총관 어른께서 창월에게 심히 부상을 입고 운중선으로 가셨다고 하옵니다.”

“좌등! 그 친구가?”

갑자기 운중의 눈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주 보면 눈이라도 멀 것 같은 강렬한 안광이었는데 그 시선은 곧바로 성곤에게로 향했다. 밖에서 미려의 말이 이어졌다.

“위어른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보주님께는 목숨으로 용서를 빌겠다는 전언입니다.”

무슨 뜻일까? 허나 밖에서 들리는 미려의 말을 곱씹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서히 운중의 전신에서 분노가 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머리칼이 곤두서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것까지 앗아가겠다는 것인가?”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수만 장 지하에서 울리는 유부(幽府)의 전언(傳言) 같았다. 성곤이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을 쳤다. 운중과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몰랐다. 자연 운중과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만천의 곁으로 다가갔다.

덧붙이는 글 |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내일과 모레 이틀은 연재를 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대미를 몇 회를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틀 간 연재를 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태그:#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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