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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의 묵룡검(墨龍劍)이 칙칙한 검광을 뿌렸다.

츠으으으----

어둠 속이어서 그런지 묵룡검의 검기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와 비슷한 검은 형체가 마치 바람을 타고 흐르듯 잠시 나타났다가 나무 위쪽으로 사라졌다. 매화향이 은은하게 주위에 퍼지고 있었다.

파팍----!

우슬의 옆에 있던 선화가 그 검은 형체를 쫓아 신형을 허공에 떠올리며 쌍수를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하얀 수영(手影)이 십여 개 나타나며 검은 형체를 향해 덮쳐들었다. 허나 허공만 가를 뿐 소수인장이 어딘가에 적중하는 둔탁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가 나타났고, 살수를 가했다. 그것을 보고 무화가 공격했다. 헌데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나뭇가지에 몸을 싣고 주위를 살피던 선화가 더 이상의 기척이 없자 다시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르신….”

우슬은 이미 귀산노인의 상체를 안고 있었다. 약간 빗나갔던가? 미간에서 한 치 정도 벗어난 이마에 조그만 매화인이 찍혀있었다. 즉사는 면한 셈이었지만 얼굴은 이미 검은 기운이 덮여 있었고, 숨소리는 미약했다.

세 명의 시녀 중 두 명은 이미 절명한 상태. 그토록 짧은 시각에 시녀 두 명과 귀산노인에게 손을 썼던 것은 분명 매교신이 틀림없었다. 은신술이 극에 달해 몸을 드러내 본 적이 없다는 여자. 더구나 어둠 속에서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뭇가지 위에 있는 선화와 마찬가지로 무화 역시 온 감각을 동원해 매교신의 기척을 느끼려 하고 있었지만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파악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의 일검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치명적인 상처는 주지 않았더라도 분명 매교신은 자신의 검에 적중 당했다. 묵룡검 끝에 맺혀있는 핏방울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미 도망간 것일까?’

그녀는 오히려 눈을 감고 청각과 후각, 그리고 몸에 느껴지는 촉각만으로 매교신의 흔적을 느끼려 했다. 언제 불쑥 나타나 살수를 가할지 모르는 일이다.

“정신 차리세요…. 어르신….”

진기를 불어넣어도 귀산노인의 상세는 회복되지 않았다. 지독한 매교신의 일격을 감당하기에는 벅찬 노구(老軀)였다.

“우…흑…. 운중… 각… 운중…각으로 가….”

귀산노인은 메마른 입술을 달싹거렸다. 죽음의 그늘이 덮이고 있는 지금 무엇이 그를 재촉하는 것일까?

“이제… 구룡과의… 빚은 모두 청산…되었다고… 고맙다고… 그렇게… 전해….”
“어르신…!”

“부탁이라…고… 이 안에… 들어온 인물들… 살려… 보내지 말라…고… 후욱….”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했음일까? 귀산노인은 큰 숨을 몰아쉬었다. 우슬이 급히 가슴과 목의 혈도를 누르려 하자 귀산노인은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화… 이제… 너도… 자유의… 몸이야….”

무슨 뜻일까? 이미 초점도 맞추어지지 않는 시선을 무화에게 던진 후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렇게 귀산노인은 숨을 거두었다. 구룡과 운중과 맺었던 약속의 이행자이자, 감시자였던 귀산노인은 자신의 몫을 모두 했다는 듯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서 모든 은원을 정리했음일까?

“어르신…!”

우슬이 이미 지치고 늙은 육신에게서 떠나가는 영혼을 붙잡으려 불러보았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

무화의 감긴 눈에서 잠시 이슬이 내비치는 듯했다. 허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는 모두 흘러간 일인 것을…. 언제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던가?

선화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젓고 있었다. 그것은 매교신의 흔적을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무화가 눈을 뜨면서 주위를 살피려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마 남들에게 눈물자국을 보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군요. 이미 갔는지….”

무화가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우슬이 고개를 흔들었다.

“있어요. 하지만 언니의 검을 맞고 다시 공격하지는 못하겠죠. 우리는 이제 술래잡기에서 빠져야겠군요.”

이 생사림에서 나가자는 말이다. 우슬이 귀산노인을 안고서 일어서려 하자 무화가 얼른 다가가 귀산노인의 시신을 안았다. 선화가 주위를 예리하게 살피며 어디선가 나타나 공격할지 모르는 매교신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 명 남은 시비는 거의 넋이 빠진 채 서둘러 우슬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얼마가 지난 후 목소리가 흘렀다. 목소리는 아주 탁해서 목이 쉰 듯한 것이었는데 여자의 목소리도, 남자의 목소리라고도 할 수 없는 괴상한 음성이었다.

“무화…. 그 계집의 검은 정말 무섭구나….”

선화가 있었던 나뭇가지 뒤쪽에 있는 나뭇잎이 서너 개 떨어져 내렸다. 아마 그곳에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흑교신…. 이 자식은 뭐하고 있은 거야? 아직도 그 어린놈하고 술래잡기를 끝내지 못한 건가? 이 자식부터 찾아봐야겠군.”

말투도 오히려 남자에 가까웠다. 허나 그녀는 분명 매교신이었고 그리 서두는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주인은 위충현 태부이지 추태감이 아니었다. 그저 돕는 정도이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허나 매교신과 흑교신의 관계는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 특이한 체질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렸던 그들은 동료이자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였다. 더구나 위충현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한 짝의 신이 되었던 남녀였다. 만약 그가 죽었음을 알면 매교신은 아마도 목숨을 내놓고 달려들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본래 주어졌던 임무까지도 포기하고 알이다.


태그:#천지, #추리무협,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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