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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경인고속국도와 서해안고속국도를 경유해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 여의도 구간을 달리는 시내 일반버스 내부. 안전벨트를 찾을 수 없는 입석형 버스이다.
ⓒ 이준혁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매일 시내버스로 통학하는 대학생 김아무개씨. 최근 해당 노선이 좌석형 직행좌석버스에서 입석형 시내 일반버스로 바뀐 뒤로 이용이 좀 꺼려진다고 한다.

노선 일부가 고속도로를 경유하는데, 버스 차량이 입석형으로 바뀐 뒤 안전띠가 사라져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아무리 천천히 달린다고 해도 고속도로 다른 차량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고속운행이 불가피한데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고속도로 이용 차량의 안전띠 설치는 하나의 상식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현재 수도권에는 고속도로를 일부 경유해 서울 도심과 안산·일산·분당 등 주변 신도시를 잇는 시내 일반버스 노선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 노선에 투입된 입석형 버스의 경우 승객 좌석에 안전띠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대형사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고속도로의 안전 사각지대로 시내 일반버스 차량의 안전띠 설치 실태를 짚어봤다.

안전띠는 운전기사 좌석만

대학생 김아무개씨가 매일 통학하는 5601번 버스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을 출발해 안산시청-KTX 광명역-석수역-구로디지털단지 등을 거쳐 여의도환승센터까지 편도 기준 50㎞가 넘는 장거리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그런데 석수역과 광명역 구간은 중간 정차 없이 고속도로(제2경인고속도로 석수나들목→일직 분기점→서해안고속도로 광명역나들목)를 이용해 운행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해당 노선은 지난 4월 19일자로 직행좌석버스에서 시외 구간을 운행하는 시내 일반버스로 변경되면서, 안전띠가 설치된 좌석형 차량(대우버스 'BH115E 로얄이코노미') 대신, 시내 일반버스용 입석형 차량을 새로 구입(총 16대, 현대자동차 '뉴슈퍼에어로시티' 8대, 대우버스 'BS106 로얄시티' 8대)하여 운행하고 있다.

운행구간도 과거 안산역에서 시화지구(시흥시 정왕동)까지 연장해 해당 노선버스 기사들은 4시간 걸리는 왕복 100㎞ 구간을 강행군하고 있다.

▲ 5601번 버스 외부
ⓒ 이준혁
이 노선의 고속도로 주행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체험에 나섰다.

우선 고속도로가 비교적 한산하고 승객도 적은 주말 오전 안산 방향 버스. 석수역을 출발한 버스에 입석 승객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빈 좌석도 없어 교통 정체가 심한 출·퇴근시간대를 빼면 속칭 '바람과 함께 달리고 있다'는 직행좌석버스 시절의 썰렁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시흥대로를 운행할 때와 달리 석수IC(제2경인고속도로)를 진입한 순간, 버스는 무서운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살펴본 버스의 계기판 속도는 무려 80㎞/h. 이러한 고속운행은 서해안고속도로와 만나는 일직분기점의 급커브 구간 통과시 일시적 속도 감소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광명역 IC를 나올 무렵에야 50㎞/h 이하로 급감했다.

이는 입석 승객이 있었고, 고속도로 정체가 그다지 심하지 않던 평일 오전 안산방향 승차 때나 평일 낮 서울 방향 승차 때도 큰 차이가 없었다. 평일 아침에는 좌석에 앉은 노인들이 손잡이를 놓칠세라 꽉 잡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 차량에 운전기사 좌석을 제외하곤 단 한 군데에서도 안전띠를 찾을 수 없었다.

안전띠 없어도 합법

▲ 법제처(www.moleg.go.kr) 종합법령정보센터의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27조 1항에는 안전띠 설치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 이준혁
고속도로를 달리는 해당 노선버스가 일반도로보다 고속으로 달리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같은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다른 차량 모두가 시속 100㎞ 내외의 제 속도를 내는데 홀로 저속으로 운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전띠를 달지 않은 시내 일반버스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건 합법일까, 불법일까? 놀랍게도 시내 일반버스는 고속도로를 경유하더라도 좌석에 안전벨트를 장착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좌석안전띠 장치'에 관해 규정한 제27조를 살펴보면 '제1항'에 '자동차의 좌석에는 안전띠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좌석에는 이를 설치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해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제3호'를 살피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 제3조 제1호 가목 및 나목의 규정에 의한 시내버스운송사업과 농어촌운송사업에 사용되는 자동차로서 그 노선 중 일부 구간을 자동차전용도로 또는 고속국도를 운행하는 시내 일반버스의 좌석'으로 되어 있다.

즉, 본래 자동차의 좌석에는 좌석안전띠(안전벨트)를 설치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시내 일반버스의 경우 각 좌석에 안전벨트를 설치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의미이다. 좌석형 버스와 달리 좌석 등받이 높이가 낮은 입석형 버스의 경우 사고시 오히려 더 위험한 데도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예외규정 개정 시도 무산

취재 과정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내 일반버스 차량에도 안전벨트 설치를 의무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2001년과 2004년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 과정에서도 개정안에 이런 내용이 포함됐지만 끝내 무산되었다는 사실이다.

2001년 개정 시도 당시 건설교통부는 "고속도로 경유 시내버스의 경우 입석 승객, 빈번한 승하차 등의 운행 특성을 감안, 예외를 인정했으나 교통사고 발생시 대규모 인명피해가 예상돼 이를 의무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업자들에게 개선명령을 내리도록 각 시·도에 지시하고 관리 실태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 개선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 12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내용은 개정 규칙에서 빠졌다.

2004년 개정 시도 당시에도 건설교통부는 '운전자석 뒤 보호막 설치 의무화' 등과 함께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와 농어촌버스에 대해 안전벨트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한다고 입법예고했으나 2005년의 최종 규칙 개정에서는 역시 제외되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자동차팀 관계자는 "수도권 운수업체와 달리 비수도권지역 운수업체의 경우 재정 사정이 상당히 열악한 경우가 다수"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 차량으로 몇 개 노선을 운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차량에 안전벨트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 판단되어, 입법예고는 됐지만 법제처 심사와 규제개혁심의위원회 검토 과정 중에 '과잉 규제'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지방에 가면 영동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88올림픽고속도로 수혜지역의 경우 고속도로를 거치지 않으면 심하게 우회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특히 인터체인지 간격이 짧은 경우 및 개방형 구간에서는 일반도로를 굴곡 우회하는 것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다수 승객에게 나은 경우가 많다"며 시내 일반버스의 고속도로 경유가 불가피하고 설명했다.

일부 시내 일반버스는 자발적으로 안전띠 설치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과하는 223번 시내 일반버스 노선에는 안전벨트가 달린 좌석형 차량이 운행중이다.
ⓒ 이준혁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모든 시내 일반버스에 안전띠가 없는 건 아니다. 경기도 포천시 내촌을 출발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거쳐 서울 강변역까지 운행 중인 노선과,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과 공항신도시 구간을 운행하는 일부 노선에는 승객석에도 안전띠가 달려 있었다.

남양주 선진시내버스는 직행좌석버스(1001번)를 11번(내촌~강변역) 시내 일반버스 노선으로 전환해 구간 운임(최대 1600원)을 받으며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내 일반버스로 전환한 뒤에도 과거 직행좌석버스 때처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양주 퇴계원에서 서울 워커힐호텔 구간을 무정차로 운행하고 있다. 차량 역시 좌석에 안전띠가 달린 좌석형 차량을 투입하고 있었다.

선진시내버스 관계자는 "법적으로 시내 일반버스 차량의 고속도로 운행이 허용되지만, 퇴계원IC에서 토평IC까지 7㎞에 가까운 긴 구간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지나는 노선에 안전띠 없는 입석형 버스 차량 투입은 생각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인천 강인여객에서 운행 중인 223번(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공항신도시) 시내일반버스 노선의 경우, 과거에는 마을버스에서 주로 사용하던 입석형 중형차량(대우버스 'BS090 로얄미디')을 운행했으며, 역시 운전석 외 안전벨트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영종도 CNG(압축천연가스) 충전소 완공 이후, 영종도 내를 운행하는 시내 일반버스 중 승객이 가장 많은 223번 노선에 대해 좌석형 차량(현대자동차 '뉴슈퍼에어로시티 NSAC')으로 바꿨고, 이 과정에서 안전벨트를 장착한 차량을 신청 및 출고하여 운행 중이다.

강인여객 관계자 역시 "법적으로 안전벨트 설치를 강요하고 있지 않고 고속도로 통과구간 또한 심한 굴곡도 없는 짧은 구간이지만 엄연히 고속도로를 지나는 노선이어서, 승객 배려 차원에서 좋은 차량을 출고했다"고 밝혔다.

고속도로 주행 버스, 안전띠 설치 예외 없어야

고속도로의 최고제한속도는 승용차와 고속버스 기준으로 시속 100~120㎞이며, 최저제한속도는 시속 40~60㎞이다. 속도를 줄이고 싶어도 주변 차량 때문에라도 고속 주행이 불가피한 고속도로 현실에서 잠깐 거쳐간다고 사고 위험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시내 일반버스라 해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상, 고속 주행에 따른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띠 의무 설치에서 예외로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제 지난 2001년 4월에는 영동고속도로를 운행 중이던 시내 일반버스가 밴 승용차와 충돌해 9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시내 일반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달리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버스에 타고 있던 운전기사를 포함한 6명은 경상에 그쳤지만, 대형차량과 충돌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당장 고속도로를 지나는 모든 시내 일반버스 차량에 안전벨트를 장착하기는 어렵다. 신규 차량이든 기존 버스 차량이든 안전띠 설치 비용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운수업체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규칙을 바꾸지 못한다면 국가나 해당 지자체에서 안전벨트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충돌이나 추돌만이 사고가 아니다. 과속이나 급정거시 좌석에서 튕겨 나와 바닥을 구르거나 천장이나 앞좌석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는 일상적이다. 고속도로를 통행하는 시내 일반버스의 '쾌속'에 '안전' 개념을 더한다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태그:#시내버스, #안전띠, #고속도로, #수도권, #건설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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