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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재활치료과정.
ⓒ 김혜원
80대 노모를 모시고 있는 50대 가장인 이아무개씨는 요즘 은근한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보건소에서 간이 치매검진을 받고 오신 노모가 치매가 의심된다며 정밀검진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보건소에서 치매 1차 검진을 받으셨거든요. 검사 결과 치매가 의심된다면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는데, 검사비용이 만만치 않아 망설이고 있습니다. 주변에 검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혈액검사니 MRI(자기공명 영상진단), MRA(자기공명 방식으로 혈관 부분만 자세히 영상 진단하는 검사), CT(컴퓨터 단층 촬영) 같은 검사를 받는 데 100만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고요. 돈 때문에 못해드린다고 할 수도 없고 답답합니다."

"정밀검사 받아야 한다는데 너무 비싸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이씨만이 아니다. 78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박아무개 할머니도 만만치 않은 병원비 때문에 남편의 검사를 미루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영감하고 나하고 둘 다 검사를 받았거든. 그런데 우리 영감이 수치가 높게 나왔나봐. 치매가 오고 있다면서 병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데 병원비가 무서워서 못가고 있어. 아주 없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공짜로 해주지만 우린 해당되지도 않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공연히 걱정만 하나 늘었다니까. 그냥 이렇게 살다 죽지 뭐."

▲ 치매 판정을 위해서는 가족들의 설문도 중요하다.
ⓒ 김혜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치매노인은 36만4000명. 65세 이상 인구의 8.3%에 달한다. 2015년에는 58만명(9.0%)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치매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국민보험공단 통계(2004년)에 따르면, 그 액수가 연간 3조4000억~4조4000억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부터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들이 전국 19개 보건소에서 치매무료검진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지자체별로 노인복지관이나 노인관련 시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인지기능검사, 치매설문응답 등 치매에 대한 1차 진단을 무료로 해주고 그 결과를 통보해준다.

치매 검사와 관련, 성남의 한 지역 보건소 방문보건센터 담당자는 "사는 지역과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긴 하지만 우리 지역의 경우 검사를 받으러 오는 노인 중 60~70%가 치매로 의심된다"고 밝히고 "그런 경우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검사로 치매가 의심되는 노인은 물론 치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노인들까지 본인의 상태를 확실히 알게 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치매정밀진단비용 또는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정부대책은 현재 없다. 치료약조차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만 한 달에 수십만원에 이르기도 한다.

성남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병원 접수비나 정밀검진, 약값이 모두 무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때문에 검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서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약값도 보험 적용 안 돼... 치매가족들의 이중고

▲ 한 치매환자의 의료비 영수증. '보험100'이라고 표기된 것은 비보험 항목. 한 달 약값만 20만원이 넘는다.
ⓒ 김혜원
전문가들은 치매야말로 조기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질병이므로 국가의 지원 대책이 하루 빨리 확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초기 치매환자 1명을 돌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연간 787만원.

그런데 중증환자의 경우 그 비용은 배 이상 뛴다. 서국희 한림대 교수(의학)의 연구에 따르면 장기요양이 필요한 경우 연간 1600여만원의 비용이 들며, 전일 간병이 필요한 경우엔 비용이 연간 5300만원에 달한다.

낮 동안 치매노인을 돌봐주고 있는 경기도의 한 치매노인보호센터 관계자는 "초기에 치매를 발견한 경우 치료약만 복용하고도 상태가 좋아지기도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검사비, 병원비, 약값이 너무 비싸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치매 부모를 보호센터에 맡기고 모시러 오지 않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이 관계자는 "중증 치매노인을 모신 대부분의 가정이 크든 작든 경제난과 가정불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히고 "정부가 그동안 치매 조기치료에 대한 홍보나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증으로 발전했을 때 들어갈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초기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며 이에 관한 정부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장애판정해 의료비 혜택 받게 해달라"
맞고 때리고 닦고... 치매환자 가족들의 '전쟁' 같은 삶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들고 나 역시 등짝을 후려갈긴다. 맞고 때리고 또 맞고 때리고…. 그러기를 30분쯤, 바지를 벗기고 그 앙상한 다리에 덕지덕지…. 수건으로 다리 사이사이를 닦고 엉덩이를 닦는다."

한국치매가족협회 홈페이지(www.alzza.or.kr) '가족수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이곳에는 치매가족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치매에 걸린 친정아버지를 돌보는 딸이라고 밝힌 아이디 '○○엄마'는 아버지와 벌이는 전쟁 같은 일상을 올리면서 "지금 우리 가족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호소했다.

1년 전쯤부터 치매증상을 보이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를 한 종교단체 시설에 맡겼다는 또 다른 치매가족은 "이젠 봉사하는 사람마저 구타하고, 전선을 끊어 놓고, 창문을 넘어서 다니는 등 극심한 (아버지의) 치매증상 때문에 더 이상 (시설에도) 맡겨둘 수가 없게 됐다"고 아픈 마음을 털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치매가족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아버님을 시설에 모시려면 월세 보증금마저 빼야 할 처지"라고 한탄했다. 대부분의 치매환자 가족들은 이처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치매환자 가족들은 정부와 사회가 자신들의 고통에 관심을 보여달라고 호소한다.

한 치매환자 가족은 이 게시판에 ▲치매환자에게도 장애판정을 해 병원비 등 혜택을 받게 해줄 것 ▲보호자가 사정이 있을 때 2박 3일 정도 입원시킬 수 있는 병원급 시설 또는 주간보호 시설을 마련해줄 것 ▲부양자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을 운영해줄 것 ▲MRI 검사 등 각종 검사비를 확실히 보장해줄 것(예방차원의 검사는 전혀 보험적용이 되지 않음) ▲경찰서에 치매전담 부서를 마련해줄 것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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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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