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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구워낸 참조기는 짭조름하면서도 바삭바삭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 이종찬
조기, 니 하나만 있으면 된다
다른 반찬 아무 것도 필요 없다
혹 욕심을 쬐끔만 더 섞는다면
조선간장 하나 니 귀걸이처럼 있으면 된다

그래, 니 나의 오랜 사랑도 이와 같지 않겠느냐

- 이소리, '조기' 모두


기운을 북돋아주는 물고기, 조기(助氣)

저만치 봄이 서서이 다가오면서 온몸이 탁 풀린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하품이 자꾸만 나오는 게 기운마저 하나도 없다. 밥상 앞에 앉아 이 반찬 저 반찬 집어 먹어보아도 혓바닥이 꺼끌거리는 게 입맛이 통 나지 않는다. 마악 밥솥에서 지어낸 달콤한 내음 풍기는 밥을 한숟갈 입에 넣어도 입속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이럴 때, 노르스럼하게 구워낸 참조기 한 마리 조선간장에 찍어 먹어보자. 이른 봄에 가장 맛이 좋은 참조기는 환절기 잃어버린 입맛과 기운을 되찾아주는 밥도둑 중의 으뜸 밥도둑이다. 하긴, 참조기가 오죽 맛이 좋았으면 옛 이야기에 자린고비 양반이 말린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맨밥을 먹을 때마다 조기 한 번 쳐다보며 꿀꺽 삼켰다고 했겠는가.

조기는 예로부터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고단백 전통음식이다. 우리 조상들의 밥상에서 특히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은 말린 조기(굴비)는 소화를 돕고 영양가까지 듬뿍 들어 있는 까닭에 <동의보감>에 "기운을 북돋아주는 물고기라 하여 '조기'(助氣)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조기는 우리 나라 바닷가에서 음력 3월에 잡힌 참조기 중 알을 밴 것만 골라 말린 '알배기굴비'를 최고로 친다. 영광굴비를 최고로 치는 까닭 또한 법성포 앞바다인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참조기가 특히 맛이 고소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데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북서풍)의 영향으로 건조조건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 마산 어시장 곳곳에 놓여있는 참조기
ⓒ 이종찬
영광굴비, 간수 빠진 천일염에 절여 바닷바람에 말려

조기는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해풍에 말려 만든 영광굴비가 가장 이름이 높다. 영광굴비는 먼저 조기의 아가미를 헤치고 조름(물고기의 아가미 안에 있는 빗살 모양의 숨을 쉬는 기관)을 떼낸 뒤 바닷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이어 조기 아가미에 굵은 소금을 잔뜩 집어넣고 조기 몸통에도 굵은 소금을 친다.

이때, 소금은 '섶간'이라 불리는 소금창고에서 1년 넘게 보관해 간수가 모두 빠진 천일염을 쓴다. 그리고 항아리에 담아 이틀쯤 절인 뒤 조기를 꺼내 보에 싸서 하루쯤 눌러놓았다가 채반에 널어 조기 몸통이 빳빳해질 때까지 바닷바람에 말린다. 그리하면 그 이름 높은 영광굴비가 태어난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잡히는 조기는 대략 13여 종이다. 그 중 가장 이름 높은 조기는 참조기와 수조기이다. 몸빛이 회색을 띤 황금색이어서 '황석어'(黃石魚)라고도 불리는 참조기는 입이 불그스레하고 몸통 가운데 있는 옆줄이 다른 조기에 비해 굵고 또렸하다.

수조기(부세)는 참조기보다 몸이 가늘고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크며 빛깔이 노르스름하다. 특히 수입 조기는 우리나라 조기보다 비늘이 거칠고 옆줄이 또렷하며 목 부위가 회백색 혹은 흰색을 띠면서 몸에 광택이 난다. 하지만 수조기나 수입산 참조기는 우리나라 참조기보다 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뒷맛도 깔끔하지 않고 육질이 흐물흐물한 편이다.

▲ 조기는 예로부터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고단백 전통음식
ⓒ 이종찬
굴비(屈非)는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라는 뱃노래가 있을 만큼 어민들의 삶을 넉넉하게 채워주던 조기. 좋은 조기는 머리가 둥글고 두툼하며, 비늘이 몸통에 잘 붙어 있고, 배나 아가미에 상처가 없어야 한다. 더불어 눈이 선명하고 몸통이 노란빛을 띠며, 아랫입술에 붉은 빛이 도는 것이 뛰어난 조기다.

조기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고려 17대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정주(지금의 법성포)로 귀양을 갔다가 바닷바람에 말린 조기를 먹은 뒤 그 맛이 하도 뛰어나 임금에게 올려 보냈다. 그때 이자겸은 말린 조기에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뜻으로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말린 조기가 굴비란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때부터.

흔히 프라이팬에 구워서 먹는 조기는 찌개나 조림, 찜 등 여러 가지 조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말린 조기는 그냥 쭉쭉 찢어서 먹거나 고추장에 재어두었다가 밑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또한 조기에는 비타민 A와 D가 많아 쇠약한 몸, 야맹증, 피로해소 등에 도움을 주며, 특히 지방질이 적어 소화가 잘되므로 성장기의 어린이나 소화기관이 약한 노인에게 그만이다.

▲ 노릇노릇 맛나게 익어가고 있는 참조기
ⓒ 이종찬
"참조기 구운 거는 언제 먹어도 맛이 좋아"

지난 11일(일) 저녁 6시.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지. 혼잣말을 지껄이며 냉장고를 열어 여기저기 뒤졌다. 하지만 두 딸과 함께 맛나게 저녁을 때울 만한 마땅한 반찬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큰딸 푸름이(16)가 "아빠, 냉장고 야채박스를 열어봐, 어젯밤에 엄마가 참조기 사 온 게 있을 거야, 오늘 저녁 그거 구워 먹자" 했다.

옳커니, 싶었다. 프라이팬에 노르스럼하게 구운 참조기는 두 딸도 참 좋아했지만 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참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사실,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조기 한 마리만 있으면 다른 밑반찬이 필요 없었다. 특히 참기름 서너 방울 톡 떨어뜨린 집간장에 노르스름한 조기를 찍어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정도였다.

냉장고에서 참조기를 꺼낸 나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른 뒤 참조기를 굽기 시작했다. 가스불은 중간불에 맞췄다. 왜냐하면 참조기는 중간불에서 노르스름하게 구워내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참조기가 익어가는 구수한 내음이 감돌기 시작하자 두 딸이 부엌을 들락거리며 "아빠, 배 고파" 소리를 수없이 되뇌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난리를 피워? 너희들이 참조기 맛을 알긴 알아?"
"참조기 구운 거는 언제 먹어도 맛이 좋아."
"아빠! 우리 만날 저녁 때마다 참조기 구워 먹자."
"언제는 만날 저녁 때마다 수제비 끓여먹자고 하더니?"
"그럼, 하루는 수제비, 또 하루는 참조기 구워 먹으면 되지."
"겨울방학 내내 공부는 지독하게도 안 하는 녀석들이 맛은 알아가지고…."


▲ 돈 실로 가세. 돈 실로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로 가세
ⓒ 이종찬
세상에, 이렇게 깊은 맛을 내는 물고기가 다 있다니

그날, 두 딸과 함께 맛나게 먹은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참조기. 갓 구워낸 참조기는 짭조름하면서도 바삭바삭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맛이 그만이었다. 특히 참조기는 하얀 속살보다 노르스럼하게 구워진 참조기 껍질이 훨씬 더 맛있었다. 하지만 두 딸은 참조기의 하얀 속살을 뜯어내 집간장에 찍어먹는 것을 좋아했다.

금세 두 딸의 밥 공기가 뚝딱 비워졌다. 내 밥공기도 따라 뚝딱 비워졌다.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간장게장, 갈치속젓을 비롯한 멸치육젓, 갈치찌개 등도 밥도둑이라 하지만 진짜 으뜸 가는 밥도둑은 바로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낸 참조기였다. 생선 특유의 비린 맛도 나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깊은 맛을 내는 물고기가 다 있다니.

새삼 참조기의 깔끔하고도 고소한 깊은 맛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래. 다음에는 굴비의 고장 영광에서 먹는 것처럼 굴비를 사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구워내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에 한 번 찍어먹어 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참조기 매운탕과 찜, 조림도 한 번 만들어 보아야겠다.

"아빠, 밥 좀 더 주면 안 돼?"
"나도"
"짜아식들! 마치 며칠 굶은 녀석들 같구먼. 참조기 구운 게 그렇게 맛이 좋아?"
"아빠, 다음에는 그 자린고비 양반이 밥 먹을 때마다 쳐다보았다는 그 굴비도 한 번 구워먹자."
"굴비는 참조기보다 영양가가 높긴 하지만 몹시 짜기 때문에 신장병이나 고혈압 혹은 자고 나면 얼굴이 자주 붓는(부종) 사람한테는 안 좋아."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야?"
"알고나 먹으라고."
"하여튼 <오마이뉴스>에 맛기사 쓰는 아빠는 못 말려."


▲ 진짜 으뜸 가는 밥도둑은 바로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낸 참조기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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