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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무렵이었을 것이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동생이 휴가 인사차 집에 들렀다가 아이들에게 이만 원 씩 쥐어주고 갔다. 아이들이 군것질하기에는 큰 돈이다 싶은 생각에 아내는 당분간 맡아둔다는 명목으로 돈을 빼앗아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5학년인 아들 녀석은 모처럼 받은 큰 용돈을 실컷 써 볼 요량이었는데 몹시 실망스러워했다. 뺏어 간 만 원 짜리 대신 천 원 짜리 한 장씩만 달랑 손에 쥐어주니 아이들은 급기야 울음보를 터트렸다.

입이 댓 자나 튀어나온 아이들이 측은하다 싶어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당신, 그러지 말고 이참에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을 미리 시키면 어쩌겠어? 한 달 치 용돈 미리 줬다 생각하고 사용처를 일일이 기록하게 하는 거야.”
“당신은 참, 우리 아이들을 몰라서 그래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얼씨구나 하면서 며칠도 못가서 그 돈 다 동나고 마네요.”

“하, 이 사람이 해보지도 않고 왜 그래? 당신은 그렇게 우리 아이들한테 자신이 없어?”
“누가 자신이 없대요? 얘들 맘이 다 그렇다는 거죠. 당신 맘대로 하세요. 난 몰라요.”

모처럼만에 아이들에게 후한 점수를 따고 이만 원과 함께 용돈기록장을 만들어 주었다. 단 돈 일 원이라도 틀리면 앞으로 용돈 타 쓰기에 힘들 것이라는 엄포와 함께 말이다. 아이들은 당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결론이 실망스럽게도 쉽게 나버렸다. 성격이 차분하고 촘촘한 딸아이는 고작 삼천 원만 썼을 뿐이며 기록장에는 거의 일기 형식을 빌어서 세세하게도 적어 놓았다. 그 반면에 아들 녀석의 거금 이 만 원은 그새 바닥이 나버렸고 기록장에는 학용품 몇 개 산 거 외에는 전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다.

어쩐지 한 며칠 늦은 저녁까지 아들 녀석의 얼굴을 도통 볼 수가 없었다. 피시 방이며 오락실을 거쳐 군것질까지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으리라. 그런 아이들의 용돈기록장과 용돈 잔액을 일일이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 컸던지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어차피 작은아빠에게 받았다는 용돈의 의미가 더 컸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딸아이와 아들 녀석의 용돈기록장을 자세하게 비교해가며 딸 녀석을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지난달과 똑같이 용돈 이만 원씩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 달도 마찬가지로 결과는 똑 같았다. 극구 말리던 아내에게 핀잔을 심하게 얻어 듣는 보너스까지 톡톡히 받은 채로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두고 아들 녀석에게 일일이 쓸 만큼의 돈만 타다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고민고민하다 조그만 상자 속에다 천 원짜리 절반과 백 원짜리 동전 이만 원을 넣어 놓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써야할 용도를 쪽지에 적어 넣으라고 하였다.

그 후 첫 달도 한 달이 되기 훨씬 전에 용돈이 다 떨어졌다. 사용처를 적은 쪽지도 많이 부족했다. 월말에 왜 부족했던가를 생각하며 몇 가지 사용처를 새로 적어 놓았다. 둘째 달도 마찬가지였지만 용도를 적는 쪽지가 이만 원의 합계에 근접해 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 달 째 쯤 되자 사용처 쪽지와 용돈의 금액이 거의 일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용돈 사용 일도 거의 한 달을 채우는가 싶었다.

물론 별종이다 싶은 딸아이의 돼지저금통에는 만 오천 원 정도의 저축액이 생겨났지만 아껴쓰고 계획적인 씀씀이를 전혀 몰랐던 아들 녀석으로서는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 녀석의 용돈 씀씀이에 변화가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로서 한 가지 더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아들 녀석의 용돈 상자 월말 결산 때 꼭 써야 할 곳에 썼는지 그리고 좀더 아낄 방법은 없었는지를 따져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쯤에서 그만 두기로 하였다. 이제 막 변성기로 접어들어 훌쩍 커버린 녀석이 스스로 깨우치고,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떤 경우에는 절반의 가르침이 전부의 가르침보다도 훨씬 큰 울림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오늘 아침에 부랴부랴 학교로 뛰어 가는 아들 녀석을 붙잡고 조그만 선물을 하나 건넸다. 캉가루표 윤기 반지르르한 지갑 속에 빳빳한 이만 원과 용돈 기록장이었다. 몹시 귀찮은 듯 고개만 끄덕 하며 달아나는 무덤덤함이 못내 섭섭하였지만, 한편으로 그런 아들 녀석이 대견스러운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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