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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르르릉~ 때르르릉~’

탁상시계가 한참을 부르르 떨더니 제풀에 지친 듯 뚝 멈췄다. 그날따라 저 뿔 달린 도깨비 모양의 시계가 몹시도 미웠다. 가시 돋친 방망이를 휘둘며 아내를 일터로 내쫓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 집 밖으로 던져버릴까 생각했지만 저렇게 귀청을 째는 듯한 소리를 듣고서야만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나는 아내를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오지랖이 넓은 아내는 세 달 전에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언젠가는 다단계판매의 속옷을 판답시고 생난리를 피우더니만 이번에는 또 보험설계사가 자기 적성에 딱 맞아떨어지는 직업이란다. 유별나게 요란을 떠는 것이 꼴불견이었지만 그러다 제풀에 지쳐 물러서겠지 하는 맘으로 그냥 두고 보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 아내가, 날이 가면 갈수록 회사에 나가는 일이 버거웠는지 요즘 들어서는 신열을 앓듯 끙끙거렸다. 웬만하면 늦은 오후에나 살짝 얼굴만 비추라고 다그쳤지만 몇 푼 안 되는 출근 수당 때문에 포기 못한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저 괴상한 탁상시계가 두 번 째 딱딱거려야만 힘겹게 실눈이라도 뜰 수가 있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쯤 되면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그 잘난 오지랖이 나자빠질 때가 되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를 쓰고 매일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겉으로야 이렇게 희한한 일이라고 너스레를 놓지만 나는 아내의 속엣 응어리를 잘 안다. 알량한 글쟁이 흉내내느라 제대로 된 직장 하나 갖지 못한 내가 아주 번듯하게 보아란 듯이 카페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통에 아내는 사모님 소리를 들어가며 안방에 들어앉은 지 두 해 남짓 되었는데 이제 그마저 산통이 다 깨지고 말았다. 주인이 건물을 팔아버린 통에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늘같이 믿고 있는 남편이 설마 식구들을 굶기기야 할까마는 새 밥벌이 트는 동안만이라도 생계에 보탬이 되보려는 그녀의 가엾고 오진 마음이란 것을 잘 아는 터이다. 버럭 소리 내뱉으며 당장 때려치우라는 성깔도 부리지 못하였다. 그냥, 가장으로서 부끄럽고 우세스러울 뿐인걸 어떡하랴.

발뒤꿈치에 물집 들도록 발품을 팔다가 매정한 인심에 슬킨 가슴이 한두 번 뿐일까. 저녁 늦게사 들어오는 아내가 가사노동쯤이야 조금 등한시하면 어떨까마는 그마저 덜어놓지 않는다. 밀린 빨래며 아이들 숙제에다 또 카페의 주방까지 거든다고 밤잠을 자지 않는 통에 제 몸이 배겨나겠는가 말이다.

책 그만 읽고, 그 잘난 마실 그만 돌고 빨래 좀 하고 아이들 밥도 챙겨 먹여주라며 생떼를 쓰면 그만일 텐데 잘난 남편 위신 떨어진다며 그 또한 절대 싫다고 한다. 거기에다 아이들 따뜻한 국물에 아침밥 먹여 보내야 머리에 힘쓸 수 있다고 새벽잠까지 설쳐대니 원, 자기가 용가리통뼈라도 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 못할 엄마의 마음이다.

한 번은 아내 몰래 아침거리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내심 그녀가 좋아라 펄쩍펄쩍 뛸 줄만 알고 지긋이 안아주려는 참이었는데 되레 핀잔을 한 바가지나 먹어버렸다.
“새벽까지 카페 일보느라 힘들 텐데 아침잠까지 설치면 내 맘이 더 불편하니 절대 이러지 마세요. 알았죠?”
정색하고 달려들던 아내의 표정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손 하나 찔끔 도와주지 못했다.

그 날 아침도 아내는 첫 번째 벨소리에 눈을 뜨지 못하였다. 벨소리에 뒤척이는가 싶더니 이내 스르르 조용해지는 것이다. 그 날만큼은 저 뿔 달린 시계를 확 던져버릴까 생각했지만 꾹 참고서 가만히 시계 바늘을 반시간 되돌려 놓았다. 삼십분쯤 늦어진다고 해서 무슨 큰일나겠냐 하는 마음이었지 별 뜻은 전혀 없었다.

삼십분 늦어진 시간의 두 번 째 벨소리에 겨우 눈을 뜬 아내가 여느 때처럼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어맛!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와서 탁상시계의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혼잣말로 궁시렁 대는 것이다.

“어라, 시계 건전지가 다 떨어졌나? 시간이 삼십 분이나 늦었네......어쩌나 서둘러야겠네.”
뒤척인 듯 눈을 뜬 나는 무슨 영문인지 도통 모른 척 슬쩍 운을 뗐다.
“그래? 건전지 수명이 다했나 보네. 내가 아이들 깨울 테니 당신은 아침 준비나 해.”
“그러게 말이에요... 그럼 당신이 아이들 옷가지들이랑 준비물 같은 거 챙겨주실래요?”
“응, 그러지 뭐.”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 다시 잠을 청하려던 찰나에 가슴에 뜨끔한 기운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아침마다 아내가 앓고 있던 신열은 나에게 있어 얼마나 가슴 시린 아픔으로 자리 잡았던가. 그 소리는 가난에 지쳐 얇아진 내 가슴팍을 사정없이 도리깨질 해댔다.

그런데 잘하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묘책이 생긴 것이다. 아침마다 아내 몰래 시계바늘을 조금씩 되돌려 놓고 은근슬쩍 아내의 아침 일에 기웃거려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도면밀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알량한 돈 조금 번답시고 가사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그녀의 자존심을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그녀의 아침 일거리를 뺏어와야만 했다. 그리고 달콤하게 늘어지는 그녀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는 행복 또한 덤으로 맛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십여 일에 걸친 치밀한 공작으로 인해 그녀에게서 아침 일을 몽땅 빼앗아 오는데 성공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슬그머니 나에게로 무너져 내리면서 던진 그녀의 말 한 마디가 날 또다시 동분서주하게 만들었다. 밥벌이 궁리로 눈이 벌게져야만 했다.

“참, 알고도 속는 재미가 솔찬하네요... 그렇지만 오래가면 안 된다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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