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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8일.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아체인들을 상대로 연설하기로 되어 있던 반다아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라야 이슬람 사원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가 라야 사원에 도착한 오전 11시 경엔 이미 약 3천명을 헤아리는 군중이 모여 있었다. 인도네시아 군경은 사원 주변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를 철저히 통제했다.

시내 중심부로 통하는 모든 길에서 검문이 행해졌고 사원 주변으로 갈수록 그 강도가 세졌다. 나는 이날 아침 사원 주변에서 경찰이 수상한 사람들을 지목해 몸수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몸수색을 당했는데 나를 검문하던 경찰에게 말보로 한 갑을 사주고 별 탈없이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좀처럼 찍기 어려웠던 경찰 사진도 찍고 시시껄렁한 농담도 주고 받았다.

오전 11시 30분 경 반다아체 공항 방향에서 여러 대의 군 트럭이 달려오자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경찰이 메가와티 대통령이 온다고 말해줬다. 메가와티 대통령이 탄 차는 15분 후인 11시 45분 특수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에 나타났다.

이 때 연단 제일 앞에 포진하고 있던 일군의 청중들이 일제히 인도네시아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는데 이들은 누가 봐도 동원된 청중이었다. 이들은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메가와티 대통령이 입장할 때, 연설 중간 중간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들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았다. 연단 주변에는 '반갑습니다 메가와티', '사랑해요 메가와티'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차량이 도착한 후에도 한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메가와티 대통령은 12시 15분 사회자의 상당히 긴 소개 후에야 연단에 올랐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푸른 색의 긴 드레스를 입고 차분하지만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연단에 올랐다.

이 때 동원된 청중들이 일제히 환호했지만 대다수의 청중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단을 응시했다. 무척 어색한 장면이었다.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는데 일부 청중만이 박수를 치고 나머지 대다수는 '그래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연단을 응시하는 장면은 아체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청중들은 가랑비를 맞으며 오랫동안 메가와티 대통령을 기다렸는데 정작 대통령의 연설은 너무 짧았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연설이 단 5분만에 끝나버린 것이다. 청중들은 메가와티 대통령이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퇴장할 때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돌아서서 각자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한 청년이 메가와티 대통령의 연설을 통역해줬는데 "아체인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이 연설의 골자였다.

통역을 해준 함자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은 "어떤 방법으로 평화를 이루겠다는 말도 없이 오로지 말로만 평화를 이루자고 주장한다"고 메가와티 대통령의 연설을 꼬집었다. 그는 "아체인들은 대부분 독립을 원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유아체운동(GAM)과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짧은 연설을 마친 메가와티 대통령이 퇴장하자마자 많은 청중들이 썰물처럼 사원을 빠져나간 것과는 달리 12시 30분 약 1백을 헤아리는 숫자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일부 학생들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얼굴을 드러낸 채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메르데카 아체'라는 구호를 외쳤다. 우리 말로 하면 '아체 독립만세'다. 많은 시민들은 이들의 시위를 지켜볼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시위를 인도네시아 군경은 제지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사원을 빠져나가 대열을 이뤄 약 1백여 미터를 행진했는데 인도네시아 군경은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 나도 시위대를 따라 행진을 했는데 시위대는 사원 안에서와는 달리 밖에서는 일절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행진 중에 몇 명의 여학생이 말을 걸어와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위대가 눈깜짝할 사이에 해산해 버렸다. 이 때 만난 아울리아라는 여학생은 "오늘 메가와티의 연설에 매우 실망했다"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고 따지듯이 말했다. 아울리아는 메가와티 대통령의 말투로 "포기브 미, 포기브 미"라고 말하며 빈정댔다.

나는 이날 여러 아체인들에게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는데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이었다. 한 시민은 "독립은 안되고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냐"고 말했고 어떤 시민은 "메가와티가 정말로 우리 아체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은 오히려 아체인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오후 5시 경 나는 시 외곽 콸라 거리에서 4대의 대형 트럭에 나눠 타고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을 목격했다. 약 2백명 정도 돼 보이는 이 학생들은 모두 흰 색 상의로 복장을 통일하고 노란 손수건을 머리나 손목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흔들었다. 내가 이들을 본 곳은 인도네시아 경찰이 주둔하고 있는 한 캠프 앞이었는데 경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 학생들의 구호도 역시 '메르데카 아체'였다.

왜 경찰들이 이날 학생들의 시위를 제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아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표방한 인도네시아 정부가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이라는 역사적 이벤트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메가와티 대통령은 이날 짧은 일정을 마치고 수도 자카르타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고 난 아체는 모든 것이 그대로다. 인도네시아 군경과 자유아체운동(GAM)의 대치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날 저녁에도 몇 발의 총성을 들었다. 아체인들과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싸움은 별다른 상황 진전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너무나 짧았던 메가와티 대통령의 아체 방문은 되려 아체인들에게 자카르타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키웠다.

인구 410만명의 인도네시아의 한 주인 아체는 지금 전쟁 상황이다. 주요 도시와 도로는 인도네시아 군경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지만 가까운 산이나 밀림 속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약 3천명으로 추산되는 자유아체운동(GAM) 반군들이 수시로 인도네시아 군경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체 지역을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검문을 당했는데 아체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25년째 살아오고 있다. 그들이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한 이래 고통받아 온 25년의 세월에 비해 단 5분에 그친 메가와티 대통령의 연설은 너무 짧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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