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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탁신이 좋아요."
탁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방콕 프라나콘 지역 한 아파트 관리실에 근무하는 와나와 폼켁디 씨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젊으니까요."

태국 수상 탁신 시나왓은 현재 태국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7월 26일 52번째 생일을 맞았으니 젊긴 젊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젊다는 이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3월 총선 승리 이후 5개월간 정력적으로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그것이 바로 인기의 비결이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등 태국 사회 전 부문에 걸쳐서 개혁과제를 설정하고 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탁신은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항상 "앞으로 10년 이내에 태국에서 가난을 몰아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탁신 수상은 지난해 9월부터 재산은닉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는데 다음달(8월) 초순이나 늦어도 중순 안으로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헌법에 따르면, 모든 정부 공직자는 자신의 재산 내역을 공직자 부정 조사 기구인 NCCC(National Counter Corruption Commission)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아울러 태국 헌법 제 295조는 만일 이를 거부하거나 재산을 은닉했을 경우에는 5년간 공직에 취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탁신 수상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8일 NCCC 클라롱 찬티크 사무총장은 최종 논고를 통해 '탁신 수상과 그의 아내가 10억 바트 가량의 재산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분산시켜놓고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클라롱 사무총장이 언급한 다른 사람이란 탁신 수상의 친척, 가정부, 운전사, 경호원 등이다.

이에 대해 탁신 수상은 혐의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그렇게 한 것을 전혀 몰랐을 뿐더러 비서가 NCCC에 재산을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대해 잘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태국 언론은 이런 주장을 옹색한 변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아내와 함께 사업을 했던 탁신 수상이 그런 큰 규모의 재산 이동을 몰랐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분위기를 봐서는 다음달 헌법재판소가 유죄 판결을 내리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의 유죄를 주장한 클라롱 NCCC 사무총장은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탁신 수상에 대한 강력한 지지 여론 때문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만약에 그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방콕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15명의 재판관들은 각종 협박과 로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7월 26일 방콕 제6구역 경찰 책임자인 수포즈 시라푼 씨는 헌법재판소와 클라롱 NCCC 사무총장을 폭력에 대비해 철저히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탁신 수상의 지지자들은 또한 만일 탁신 수상이 물러나게 된다면 "태국 경제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헌법도 중요하지만 태국의 국가이익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탁신 수상을 지지하는 일부 변호사는 태국 헌법의 공직자 재산 신고 조항에 대해 "만약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국가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색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탁신 수상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그가 부수상의 직책을 그만둔 1997년 12월부터 5년이라는 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타협책을 내놓고 있다. 그렇게 되면 탁신 수상은 2002년 12월에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번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내려지는 시점으로부터 5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만약에 탁신이 한국 대통령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봤다.

일단 그렇다면 그는 아예 기소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기소돼서 법정에 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기소돼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면 그는 전혀 국정을 돌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야당이 그를 가만히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국 사회는 자신들의 현직 수상을 법정에 세웠고 그 수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오늘도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분주히 일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한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이 "우리 정치를 동남아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발언"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전 대변인의 발언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탁신 수상의 문제만 놓고 봤을 때 태국 정치의 수준은 우리 정치의 수준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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