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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는 가지 마세요. 굉장히 위험해요"

지난 8월 28일 방콕의 한 여행사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여행자가 내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간다는 말을 듣고 한 말이다. 이 여행자가 말하는 곳은 바로 수마트라 섬 북부 아체 지역이다. 그는 지난 달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만난 한 한국인으로부터 현재 아체 지역 곳곳에서 자주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현재 아체 지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이 여행자의 말이 크게 과장된 것은 아닌 듯하다. 바로 며칠 전에도 인도네시아 군과 아체 반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아동 2명을 포함한 총 5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올해 초에는 인도네시아 군이 고등학교에 난입해 교사와 학생들을 고문했던 사건이 있었고 8월 말 현재 분쟁의 와중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수가 1200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1976년 자유아체운동(GAM)이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이래 연간 최고 희생자 수다. 이 수치는 현재 아체 지역의 상황이 매우 험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8월 30일 방콕을 출발, 육로와 해로를 통해 아체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 곳에 가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내가 가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눈으로 아체의 상황을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아체의 진실을 잘 모른다. 왜 자유아체운동(GAM)이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인도네시아 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왜 아체 지역 다수 주민들이 자유아체운동(GAM)을 지지하는지, 왜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유아체운동(GAM)을 강력하게 탄압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체로 간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는 남의 눈으로 세상을 봐 왔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때 모든 방송사가 CNN을 그대로 틀어댄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고 평소에도 우리나라 언론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AP, AFP, 로이터같은 통신사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봤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정보를 서방 언론에 의존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199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라는 나라의 흑인들이 백인 농장을 '탈취(?)'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CNN과 BBC는 흑인들이 불법적으로 백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무가베 대통령은 선거를 의식해 뒷짐만 지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연일 전 세계로 타전했다. 우리나라 방송과 신문에 그같은 논조의 보도가 그대로 나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때 MBC PD수첩팀이 짐바브웨 현장을 다녀와 우리에게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줬다. 짐바브웨 토지 중 90%가 넘는 땅을 단 5%도 안되는 백인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현실의 이면에는 식민의 유산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짐바브웨 흑인들은 '빼앗긴 우리 땅을 도로 찾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했는데 실제로 현재 짐바브웨의 백인 토지는 1백여년 전만 해도 흑인들의 땅이었다. 이를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빼앗은 것이다. 짐바브웨는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 토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무력에 의한 탈취'라는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물론 서방 언론의 보도처럼 흑인들의 행동은 실정법 위반이고 무가베 대통령의 정략적 이해가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시 MBC PD수첩팀의 수고로 나름대로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당시 PD수첩의 진행자들도 자신들의 취재에 대해 여러 차례 '서방 언론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 우리 눈으로 세상을 본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랑스러워했던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서방 언론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 우리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현장에 가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국제 취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국내 취재마저도 현장을 직접 찾지 않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는 영영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세계화 시대에 남의 눈으로 세상을 봐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최근 어정쩡하기는 했지만 아체 지역에 그나마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와히드 전 대통령이 물러나고 아체 지역 독립을 반대하는 메가와티가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해 아체 지역의 앞날은 더욱 험난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희생될지에 대해 많은 국제 NGO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자 이제 나는 아체로 떠난다. 앞으로 몇 회가 될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부족한 능력이나마 보고 느낀 그대로를 꼼꼼히 기록해 독자 여러분께 생생한 소식 전해 드리겠다. 자 이제 우리 눈으로 세상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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