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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어려우면, 어려운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환한 빛도 어둠일 뿐이다.(서정오)"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김종철 씨는 <반시주의,육문사(198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인은 시인임과 동시에 민족공동체의 일원이며, 그 공동체의 구성원인 민중이 억압과 수탈에 신음할 때 마땅히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 옳다면,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높이지 않는 시인은 성대가 고장난 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이성복 같은 시인은 `경험을 추상화해내는 일'을 하지 않은 채 `탁월한 공상력을 품고 환상의 시'나 쓰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땅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인간의 생산적인 사유가 아니라 비생산적인 공상의 유희'라고 꼬집지요. 그리하여 오규원 씨 스스로 자신을 말하는 `눈물 나는 잠꼬대' 소리밖에 시를 못 쓴다고 평가합니다.

살아가며 김종철 씨가 비판하고 꼬집듯 `방관자의 호사취미'로 책을 내고 책을 찾아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안이한 은유의 숲'으로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이는군요.

허영자, 김후란, 유안진 같은 이들을 두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들은 이 사회의 억압도 고통도 더러움도 착함도 `눈의 나라 시민'이 되면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학처럼 단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중과 동떨어져 사는 귀족적인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주의적 공상을 즐기면서 없는 고통을 있는 고통처럼, 없는 사상을 있는 사상처럼 분칠하는 시인들보다는 소박하고 솔직하고 단순하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참말로 시를 쓰든 문학을 하든 뭐를 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서 깨닫고 배워야 할 글은 아이들이 꾸밈과 거짓이 없이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낀 대로 쓴 글입니다.

올챙이가 살려 달라고
입만 나물나물거린다.
올챙아, 그렇지만 난
숙제니까 너를
잡을 수밖에 없는 거야.
올챙이가 살려 주지 않는다고 운다.
나는 올챙이가 불쌍했지만
관찰하고 놓아 주려고 하니
이미 죽어 있었다.
참 불쌍하였다.
<1985.6월>

경상도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이호철 선생님이 스물다섯 아이들 글을 모아서 엮은 <큰길로 갈테다,한길사(1988-절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시를 쓴 아이는 적어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에게 이끌리고 있기에 `불쌍함'만 느끼고 자신이 잡아서 죽인 일을 죄스럽게 여기지 않죠.

학교 갈 때 현정이가
할아버지한테 돈 달라고 졸랐다.
할아버지는
돈주머니를 살펴보시고
툭툭 털으셨다.
돈 십 원밖에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 죽노
죽어라 죽어 하셨다.
엄마, 할배한테 돈 좀 주소.
눈물이 나왔다.
할배한테 조르는
현정이와 오빠가
죽도록 미웠다.
<1985년 9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쓴 시죠. 좀 길지만,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쓴 산문도 함께 보세요.

<생일 초대, 1985년 11월 20일>
광석이 생일 초대를 받고 가기로 약속하였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초대 받았다고 하니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면 집에 못 들어온다고 하셨다. "나는 생일날에 차가운 밥 싸 가지고 일한다. 아이들한테 과자 한 번 못 나누어 줄 것을 왜 가!" 나는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 생각해 보니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 가기 싫었다. 나는 내 생일날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남의 것만 먹으면 되나.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돈 1000원을 주셨다. 갔다 오니 아버지께서는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셨는지 가만히 계셨다.


아이들은 자기가 겪고 보고 느낀 삶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물론 자신이 겪은 삶을 `문학'이라는 틀로 알뜰히 담아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몸으로 부대낀 삶도 없고 삶을 느끼는 마음도 없이 글만 나불거린다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용두질밖에 못 됩니다.

<사과란 토끼야>라는 일본 정박아 이야기를 다룬 비매품 책(1975)을 보면 머리말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일본관광객들이 눈을 가려야만 할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경제면과 물질면에서 번영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일본이 잘 돼 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참말로 일본이 잘 돼 간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면이 마음으로부터 존중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들 인간은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세계 속에서 눈에 보이는 한 부분만을 보고, 그것을 진실로 착각하기 때문에 물건의 본질을 찾아내지 못한다. 본질을 보여 주어도 그것을 거부한다."


지은이는 일본사람이 일본에서 태어난 `정박아'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하면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써야 비로소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와 견주면 어떨까요? 일본사람이 한국에서 자기 책을 옮겨 내면서 썼던 그 말대로 우리가 못난이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덧붙이는 글 | * 1970년대 책도 이제 헌책방에서 보기 드물어가는 책으로 자리매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열 해 쯤 뒤면 1980년대 책들도 보기 드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아직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나온 괜찮은 책,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판되어서 시중 책방에서는 보기 드문 책을 헌책방 나들이를 하노라면 가끔씩 쏠쏠히 찾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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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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