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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은 줄 알면 '알아야 할' 일도 참 많다는 대목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본' 책이 참말로 좁쌀만큼도 안 되며 우리가 '보면 좋을' 책이나 '보아야 할' 책이 산더미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고 생각은 하지만 '모르는' 줄은 생각하지 못하기에 참으로 많은 걸 놓치며 삽니다. 모든 걸 다 잡으며 살 수는 없겠죠.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게 참 많기에 이 모든 소중한 걸 잡아채지 못하면 우리 삶이 팍팍하고 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먹을거리, 입는 입을거리, 사는 집을 어떻게 먹고 입고 살게 되었는지, 우리가 쉬는 공기나 마시는 물이 어떻게 우리 앞에 있는지, 이러한 자연과 생명체라는 것이 어떠한지 '알' 때와 '모를' 때는 사뭇 다릅니다. 알면 알수록 자기라는 임도 소중하고 이웃도 자신이 밟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그마한 생명체까지도 소중한지 알지요.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배우고 책으로 읽는 지식쪼가리가 얼마나 작은지도 알고, 이렇게 작지만 작은 지식쪼가리조차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해서 아웅다웅하고 맞은'편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좁은 자기 머릿'속에서만 맴돈다는 사실도 알아갈 수 있지요.

나서 죽는 날까지 여름지으며 살아간 사람은 책으로 배운 앎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여름지기는 수많은 사람을-자기 자신과 식구뿐 아니라- 먹여 살립니다. 자신이 땅을 갈고 일구고 김매고 나락 베고 걷어서 털고 빻은 쌀을 나랏님도 먹고 마을 공무원도 먹고 공장노동자도 먹고 초등학생도 먹고 버스기사도 먹지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여름을 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새에 수많은 사람을 먹여살리고 있는 여름지기는 자기가 일구는 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농사연장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나락 한 톨도 소중히 여기며 자기가 누는 똥과 오줌을 다시 거름으로 씀을 알기에 똥도 오줌도 모두 소중히 여기죠.

김매고 피뽑는다 하면서도 이러한 풀도 생명체로 느끼지요. 김을 매는 가운데 무쳐 먹으면 좋은 나물이나 약풀도 알아갑니다. 이렇게 배우고 느끼고 부대끼는 삶은 자기 스스로도 일깨우고 일으켜 세우지만 낯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일깨웁니다.

일한 대로 품삯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피와 땀도 요즈음 조금씩 사람들이 깨달아가고 있지요. 이제는 여름지기가 아닌 노동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으로 자리잡아가니까요. 그리하여 이제는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 하고 늘 곁에 두지는 않아도 학교를 다니고, 일터를 다니면서도 보는 또 다른 '연장'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책읽기는 마음으로 우리 머리를 갈고 일구고 김매고 피뽑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책읽기란 여름지이(농사)는 어떠한 책을 읽으며 할 수 있을까요.

책방을 가면서 이러한 대목을 생각해야 합니다. 책읽기가 한낱 글자만 줄줄 읽고 외우는 일이 아니라 읽으면서 책 속에 담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곰삭이'고 '되새기'고 '돌아보'는 일인 만큼 책을 읽는 일은 '모르고 있다'는 걸 아는 우리를 깨우치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르고 있는' 걸 '아는' 걸로 거듭나게 하는 한편, '모르던 걸' 알면서 새롭게 일을 하고, 그 동안 눈길을 두지 못했던 곳에 눈길을 두며 '나누는 삶'을 꾸려갈 수 있습니다.

탈북자 현실, 꽃제비 이야기를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며 알기 어려우나 (사)좋은벗들에서 펴낸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지금 상황과 현실을 깨닫고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모를'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않은' 밭을 '알고 깨우치'는 책읽기가 됩니다. 새책방에 가든 헌책방에 가든, 자신이 찾는 책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깨우치고 이끄는 책을 보는 일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름짓는 여름지기가 자기만 먹고 살 생각으로 여름짓지 않듯 책을 읽을 때도 자기만 잘 살고 배부리고 지식도 가득 채우면서 젠 체 하려 읽는 게 아니라 다 함께 나누면서 즐거이 살아가는 삶을 살려고 '책을 읽는' 거지요.

이를 벗어난 책읽기는 책읽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셈' '생각'이 없이 읽는 책은 '자기가 모르고 있음'을 '알아가는' 책읽기가 아니라 '나는 알고 있다'는 뜬구름 잡는 생각을 더욱 부추기는 일입니다. '자기가 온 누리에서 일어나고 터지는 일을 잘 모르고 있음'을 모르면서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러면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막말을 하게 이끌죠.

자신과 아무런 끈도 인연도 없다면, 우리는 모두 자기가 먹고 입고 마시고 자는 먹을거리, 입을거리, 살 곳을 제 힘만으로 다지고 만들고 갖추어야 합니다. 공기도 물도 모두 자기 힘만으로 얻어야겠죠.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먹어야 하는데 자기가 먹는 밥이든 고기든 나물이든 물고기든 모두 자기 나름대로 생명체로서 살아온 임(존재)일 뿐 아니라 누군가가, 자연의 힘이 키우고 이끌어온 임입니다. 그렇기에 '나 혼자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없고 '나 혼자만'이 잘나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지요.

책을 읽는 일은 이러한 얼거리를 깨달아 가면서 자기란 한 사람(개인)이 큰 테두리 안에서 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북돋우는 일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헌책방에 갈 때마다 늘 책을 한 권이라도 들고 나옵니다. 제가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저를 이끌고 일깨우는 책은 제가 '알고 있는 책'만이 아니니까요. 제가 '모르고 있던' 훨씬 더 많은 책들을 살피면서 '모르고 있던 책'을 '알아' 가고 그러면서 책을 보는 눈도 더욱 웅숭깊게 갈고 닦고 다집니다. 온갖 책들을 훑어보고 둘러보면서 '빛나는 책이 하나 있기까지 이렇게 많은 책들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책을 보세요. 그 가운데 어느 책 하나는 제 마음에 드는데 다른 수많은 책은, 제가 이름도 낯도 모르는 다른 사람 마음에 드는 책이라는 일. 이 얼마나 놀랍고 새로 깨달으면서 배워갈 일입니까.

제가 '아는' 책이 있으나 제가 '모르는' 책이 훨씬 많고, 제가 '모르는' 책 속에 저를 사람답게 이끌고 '모름을 알아라' 하는 일깨움이 있다는 일. 이 얼마나 반갑고 가슴 뛰고 신나는 일입니까.

우리는 어느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100이면 100, 다 알면서 만나지 않습니다. 부랄동무든 어깨동무든 씨동무 개동무든 100을 알지 못하지요. 늘 새로 만나고, 같이 사는 가시버시도 날마다 새롭게 서로를 알아갑니다. 우리가 보는 책도 모르고 지나가는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 많은 '모르는' 책들을 살피고 둘러보면서 '알아야 할' 것을 그 가운데 뽑아내기도 하고 '알고 난 뒤' 몸으로 실천할 일을 배웁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100이면 100, 모두 모르는 흰 종이 상태'에서 책을 만나서 읽습니다.

헌책방을 찾아갈 때는 늘 '모름'과 '낯섬'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오늘은 또 내가 모르는 어떠한 새로운 책을 만날까?"하는 꿈과 생각으로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걱정하지요. "엊그제도 찾아간 헌책방인데, 오늘 다시 가면 모르는 새로운 책을 얼마 못 보지는 않을까" 하고요.

그러나 헌책방에 가서 '책'도 만나지만 '사람'도 만나기에 그러한 걱정은 헌책방에 닿는 그때 사라집니다. 가시버시도 날마다 함께 살아도 늘 새로운데 며칠만에 만나는 책방 임자나 갈 때마다 모두 새롭게 만나는 수많은 책손님들은 얼마나 '모르면서' 살아가는 일이 많은가를 보여 주지요.

한 마디로 줄이자면 이렇습니다. 헌책방은 '우리가 모르는 책'을 '새롭게' 만나러 가는 곳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몇 줌 되지도 않는 '알고 있는 책'을 머릿속에 그려 놓고 찾아가면 손에 쥐고 나올 수 있는 책은 한 권도 없다.

그래서 헌책방을 찾아갈 때는 머릿속을 하얗게 비우고 가야 한다. 그러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쥐뿔도 없는 자기 자신'을 일깨우고 깨우칠 반갑고 곱고 좋은 책을 헌책방에서 '새롭게 찾고 알아'가자고요. 그래야 언제나 즐겁고 발걸음도 가붓하고 신나는 헌책방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헌책방얘기]는 제가 헌책방을 다니며 책방 임자분들과 다른 책손님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들으며 배우고 깨달은 생각을 갈무리한 글입니다. 

가끔씩 [헌책방얘기]라는 말머리를 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헌책방 나들이 이야기와 사진 이야기와 책 이야기와 함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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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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