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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6호선 망원역 1,2번 나들목

<영광서점> 안으로 들어가기는 여섯 달만입니다. 지지난달에 책방 앞까지 왔으나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6호선을 뚫으면서 길을 넓힌다며 육호선 길가에 있는 건물을 모두 헐고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길 넓히려는 건물 헐기를 끝낸답니다. 그래서 <영광서점>도 문을 닫지 않았을까 슬그머니 걱정스러웠습니다.

<영광> 언저리에 있는 일터에서 일할 때는 이곳을 드문드문 찾아와 임자를 찾지 못하는 알뜰한 책을 건지곤 했는데 그렇게 찾아오면서 사진 한 장 찍어두지 않았거든요.

낯도 이름도 모르는 헌책방이 문을 닫는 일도 가슴 아프지만 드문드문이지만 꾸준히 찾아갔던 곳이 문을 닫을 때 사진 한 장 남겨 놓지 않았다면 가슴이 철렁 한답니다.

숨을 헐떡이며 찾아갔습니다. 저에겐 다행이지요. 문은 열려 있고 가게 안에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무분이 여럿 계십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많이 헝클어진 책을 뒤적입니다. 책방에서 책을 보는 동안에도 가게 앞에 있는 건물을 허느라 시끄럽습니다. 더구나 언저리에서 쿵쿵대는 소리와 함께 덜덜덜 떨리는 기운이 책방 안으로도 닿고요.

<영광서점>은 지하철 육호선이 뚫리며 찾아가기 훨씬 수월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육호선 탓에 지금 있던 가게를 헐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기에 이곳을 찾는 책손님도 줄었습니다. 이곳 책방만이 아니라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 길도 다 뜯어내고 지하철 공사한다며 길도 막고 사람도 막아 다니지 못하게 했으니 장사가 될 턱이 있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영광>으로 가려면 지하철 육호선 망원역에서 내려 1,2번 나들목으로 나와서 망원동쪽, 마포구청쪽, 상암경기장 짓는 곳쪽으로 오십 미터가 조금 안 되는 거리를 걸어가면 됩니다.

그러나 <영광서점>은 언제 철거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책방을 꾸리고 있습니다. 철거 날짜가 잡히면 바로 뒤편에 새로 얻은 자리로 옮기기로 했다고는 하지만요.

책 이야기는 듣지 못하지만

<영광>에 있을 때 아저씨나 아저씨 동무분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귓가에 흐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며 귓가를 스치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책' 이야기는 드물어요. 왜 그럴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광>에서 한두 시간 책을 찾고 보고 셈하면서 자연스레 몸으로 느끼겠더군요.

지긋이 책방에 찾아와 이런저런 책을 살피고 보면서 아저씨와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꺼내고 나누려는 사람이 없기에 아저씨도 그만 책 이야기보다는 다른 쪽 이야기를 더 꺼내는 게 아니냐 싶더군요.

<마당> 합본호 네 권을 비롯해서 모두 스무 권이 넘는 책을 고르면서 `이 책은 짝이 안 맞는데 더 없나요?' `마당 합본호는 책장에 꽂힌 게 모두인가요?' `고대에서 펴낸 <한국문화사대계> 말고 <한국문화대계>는 없나요?' `<한글새소식> 합본호는 책값만 셈하고 나중에 가져갈게요. 오늘 산 책짐이 많아서 못 들고 가겠네요' 하는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니 아저씨도 처음엔 제가 책을 고르는 일에 그다지 눈길을 안 두시다가도 조금씩 말문을 여십니다.

더불어 동무분들과 나누던 살아가는 이야기를 넘어 `5월까지 가게를 한다는데 언제인지는 날도 안 잡혀서 모르고 여기 바로 뒤에 가게를 새로 얻었어요' `날짜 잡히면 그리로 옮기려구요' `책방 사진이요? 허허. 이거 찍어서 뭐해요? 나중에 자리 옮길 텐데' 이렇게 아저씨도 찬찬히 말문을 트실 때 `책방 사진 찍겠다'고 하면서 `나중에 자리를 옮기면 이곳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사라져 버리지 않느냐'고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두면 이런 헌책방이 있었다는 흔적이 되지 않겠냐'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찍으세요' 하고 허락해 주십니다.

`책 좀 보러 왔어요'

<영광>에서 책을 보노라면 `.... 책 있어요?' 하고 묻는 학생들이 가끔 있습니다. 이 날(2/7)도 나이 지긋이 잡수신 아저씨가 들어오셔서 `장준하 책 있습니까?' 하고 여쭙긴 했지만 <영광> 아저씨는 없다고 짤막하게 말씀하시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고 제가 좀 뒤진다면 찾을 수도 있겠으나 "불러서 있으면 사고 없으면 마는 뜨내기 손님"이기에 아저씨가 그냥저냥 손님으로 잘 마주하지 않으시지 않나 싶습니다.

책방에 들어와서 아저씨에게 `안녕하세요. 책 좀 보러 왔어요' 하고 인사하고 십 분이든 이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여러 가지 책을 훑기도 하고 살피기도 하는 사람에게는 아저씨는 아무 말씀 안 하십니다. 물론 아저씨도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에게 `어서오세요' 하고 친절하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 듯하지만 책방을 찾는 손님들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이들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99년부터 <영광서점>을 다니는 동안 먼저 인사하는 책손님을 저 또한 한 사람도 보지 못했죠. 하지만 저나 제가 아는 이들과 함께 <영광>을 찾아가서 먼저 인사를 하면 아저씨도 반가이 인사를 받아 주셨죠.

<영광>만이 아니라 어느 헌책방이라도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서 누구라도 먼저 본 사람이 인사를 한다면 좀 더 사람사는 곳 느낌도 받고 나눌 수 있지 않나 싶어요. 헌책방이 "이거 있어요?" 하고 물어서 "이거 여깄습니다" 하고 탁탁 주문하는 대로 찾아줄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이쯤에 그러한 책 종류를 모아두었으니 한 번 찾는 책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찾는 책이 없어도 여러 가지 책구경이나 하십시오" 하는 곳임을 생각한다면 더 좋겠습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

황석영씨가 엮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단 `2번 자료모음'이 있더군요. `전남사회운동협의회'에서 자료모음으로 사진자료를 펴냈더군요. 사진 상태는 아주 안 좋습니다. 사진 원판을 쓴 듯한 자료는 없는 듯하고 모두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2차 자료를 받아서 가위질해서 모아서 만들지 않았나 싶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자료마저 드물었던 때(1987년 5월) 엮었기에 시대를 담아낸 값어치가 있다고 봅니다. 김지하씨 원작을 대본삼아서 연희광대패가 함께 엮은 <마당굿 밥 1집(1987)>도 건지고 <김열규-신화/설화,한국일보사(1975)> 같은 소중한 손바닥책도 건집니다. 한국일보사에서 펴낸 손바닥책은 헌책방에서도 소중한 편에 들어서 다른 손바닥책은 싸면 500원에서 비싸면 2000원에 거래하는데 한국일보사판은 2500원을 받기도 할 만큼 드물지요. <신화/설화(1975)>는 더구나 김열규씨가 처음 민속 연구에 발을 디뎠을 때 엮어낸 책으로서,

<1부 신화>
1.한국신화의 개관
2.고려왕조의 신화,전설
3.무속신화-바리데기의 경우
4.신화와 문화적 정통
5.신화와 민속-현재를 살고 있는 신화
<2부 민담>
1.민담구성과 인생
2.민담과 서민정신
3.민담의 민담사고
<3부 민속>
1.민속과 민속학
2.속담의 민간사고

자그마한 책 안에서 이렇게 꼼꼼하게 연구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실은 `속담의 민간사고' 같은 글은 국어학 연구자들에게도 꽤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싶습니다.

`환경시'를 모아서 엮은 <고형렬-서울은 안녕한가,삼진기획(1991)>은 첫판조차 다 팔리지 않았을 책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1991년이라는 때에 드물게 `환경' 하나만을 글감 삼아서 환경 문제를 제대로 깨닫자는 마음과 비나리로 엮은 알찬 시모음입니다.

외대 졸업생 시모음

<외대시단 1집(1976)>이라는 시모음도 하나 보았습니다. 외대 졸업생 가운데 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 시를 모은 책으로 허세욱,김재현,홍윤기,이영걸,이 탄,이유경,김정란 이렇게 일곱 사람 글을 담았습니다. 여기서 `김정란' 시를 보니 `외대학보'에 실었던 `젊음이 가고'란 시를 오려서 끼워두기도 했더군요.

물론 이 책은 `비매품'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회활동으로 이름이 드높기도 한 김정란씨가 처음 시를 쓴다고 끄적였을 때 쓴 작품을 살필 수도 있는 소중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는 이에게 선사할 책으로 <손상익-만화 세상이 오고 있다,한국문화사(1992)>라는 책도 집었는데 이 책은 `만화평론가 1호'로 신문공모에 뽑힌 손상익씨가 마찬가지로 `만화평론 묶음 1호'로 펴낸 책입니다. 이 책에서 다룬 만화가를 살피면,

김종래 / 신동헌 / 박기준 / 신동우 / 고우영 / 이정문
이두호 / 강철수 / 방학기 / 박수동 / 이원복 / 배금택
허영만 / 한희작 / 이용명 / 김형배 / 조관제 / 강명주
신영식 / 황미나 / 이진주 / 장영철 / 이희재 / 이현세
이항규 / 박흥용 / 이건상 / 박영숙 / 황수방 /
오카다 오사무 / 김성환

이렇습니다. 처음 낸 만화평론모음이라 해서 어설프거나 깊이가 얕은 글도 없지 않으나 앞으로는 이보다 더 곰삭이고 갈고 닦은 평론을 선보이면 될 터이니 새로이 만화평론이나 비평을 하는 이들이라면 <만화 세상이 오고 있다> 같은 평론모음을 꼭 읽고 `적어도 이보다는 더 잘 써야' 하지 싶습니다.

<정옥순 엮음-애정론,지양사(1986)>은 헌책방에서도 보기 드문 책입니다. 이 책은 `노동자'들의 사랑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스스로 어떻게 제 자신을 다잡으면 좋을지를 갈무리해서 차근차근 이야기로 풀어간 책입니다. `사랑 이야기'는 많으나 그 사랑 이야기가 `우리 국민 거의 모두를 차지하는 농민이나 노동자 눈길'에 맞추지 못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 현실을 헤아리고 살피며 사랑 이야기를 엮어간 알뜰한 책이지요. <윤정모-가자 우리의 둥지로,문예출판사(1985)> 같은 소설과 <유 용주-크나큰 침묵,솔(1997)>같은 시, <김수정-크리스털 유,태영문화사(1994)>같은 만화도 골랐습니다.(사진 보세요)

`함석헌 사진'만 오린 전민조 사진책

<임응식-풍모>라는 사진책이 있습니다. 전민조씨도 사진기자 노릇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사진책을 행림출판사에서 하나 펴냈습니다. 이 책이 <영광서점>에도 한 권 있더군요.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했습니다. 얼마 앞서 신촌 <공씨책방>에서도 이 사진책을 보고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다시 제자리에 놓았기에 다시 마음이 뒤설레더군요. 그런데 사진을 하나하나 다시 넘겨보다가 `함석헌' 사진 한 장을 칼로 흔적도 안 남기고 도려냈음을 알았습니다. 한 장이 비고 그 빈 한 장에는 자리매김에 있듯 함석헌씨 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오려냈더군요.

아저씨에게 말할까 말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나중에 맡겨둔 <한글새소식> 찾으로 올 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냥 그 자리에 두었습니다. 그 사진책을 두고 아무 말씀도 아저씨에게 해드리지 않고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누군가 그걸 모르고 그 사진책을 샀다면 `속았다'는 느낌을 받고 책방 아저씨를 욕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니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왜 `자기가 찾을모 있는 곳'을 함부로 가위질을 하고나서 책을 슬쩍 팔아치우느냐는 생각 탓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 사진이 자기에게 꼭 있어야 한다면 사진을 오리고나서 자기가 그 사진책을 갖고 있던지 오렸음을 밝히고 따로 표시를 해두던지 해야 했을 텐데.

헌책방에서 이렇게 `오려진' 책을 가끔 봅니다. 이렇게 중요한 대목 하나를 오려낸 흔적을 보면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책을 보러 간다기보다 자기 잇속만 챙기러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책은 자기 잇속을 챙기러 보지 않습니다.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본다면 그건 책이 아닙니다. 그건 총입니다. 채찍입니다. 남을 부려먹고 울궈먹고 위협하려는 무기입니다. 하지만 책은 연장입니다. 농기구입니다. 망치와 못입니다.

책을 읽어서 앎을 얻고 슬기를 얻어서 자기와 이웃과 우리 삶과 온 누리를 아름답게 비추고 가꾸도록 일해야 합니다. 땀흘려 자기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 얻은 앎과 슬기를 다시 세상으로 내놓는 일이 `쟁기로 밭갈듯' `책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이렇게 써야 하지요. 그렇기에 책을 오리는 일은 엿이 먹고싶다고 낫을 팔거나 공장 기계부속을 몰래 떼어와서 팔아치우는 일과 같습니다.

앞으로 상암동 축구경기장을 다 지으면 마포구청 언저리는 퍽이나 어수선해지리라 봅니다. 그런데 어수선해지긴 해도 제대로 된 `문화공간'이 언저리에 없습니다. <영광서점>은 이곳에서 자그맣지만 사랑방 같은 문화공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적어도 마포구청 테두리에서 이곳이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무언가 행정이나 제도로 뒷받침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나아가 이곳에서 사는 많은 주민과 이곳 가까이에 있는 많은 출판사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 하면서 앎과 슬기를 얻고, 이렇게 얻은 앎과 슬기를 다시 사회로 내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서교동 영광서점] 02) 337-6064

* 지하철 2호선 1번 나들목에서 내려도 되나 그러면 너무 멉니다. 2호선을 타고 오신 분도 6호선 1,2번 나들목 있는 곳까지 걸어오시면 좋습니다. 버스는 2번과 131번이 책방 앞까지 지나가며 신촌과 홍익대학교 앞을 지나가는 마을버스 9번도 다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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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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