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화제 속에 방송되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강감찬 장군을 연기하고 있는 최수종은 KBS 연기대상 4회 수상에 빛나는 명배우다. 특히 최수종은 왕 또는 장군 전문배우로 유명한데 <태조 왕건>의 왕건, <해신>의 장보고, <대조영>의 대조영, <대왕의 꿈>의 무열왕, <임진왜란 1592>의 이순신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최수종이 사극에서 악역 연기를 하는 장면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할리우드에서는 톰 크루즈가 대표적인 '선역전문배우'로 꼽힌다. 물론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는 동생을 연기한 <레인 맨>이나 살벌한 살인청부업자를 연기했던 <콜래트럴>처럼 톰 크루즈가 영화에서 악역이나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톰 크루즈는 대표작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비롯해 대부분의 영화에서 정의로운 선역을 맡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수종과 톰 크루즈 외에도 작품 속에서 주로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유명 배우가 있다. 바로 차인표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차인표도 악역을 연기했던 작품이 있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큰 스케일로 화제를 모았던 김지훈 감독의 화재 재난영화 <타워>였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타워>는 2012,2013년 겨울시즌에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타워>는 2012,2013년 겨울시즌에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CJ ENM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도전하는 감독

1997년 단편영화 <온실>을 연출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김지훈 감독은 1998년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에서 연출부로 참여했다. 2000년 박기형 감독의 신작 <비밀>의 조감독을 맡았던 김지훈 감독은 2004년 차인표와 조재현 주연의 <목포는 항구다>를 통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김지훈 감독은 조폭코미디와 누아르를 섞었던 <목포는 항구다>로 전국 179만 관객을 동원하며 무난하게 충무로에 입성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김지훈 감독은 2007년 <공동경비구역JSA>의 원작자 박상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두 번째 영화 <화려한 휴가>를 연출했다. <화려한 휴가>는 김지훈 감독의 사실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730만이라는 많은 관객을 모았다. 실제로 <화려한 휴가>는 2007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심형래 감독의 <디워>(842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한지 2년이 지난 2009년 '3D영화' <아바타>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해운대>의 감독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윤제균 감독은 김지훈 감독을 앞세워 '한국형 3D영화'에 도전장을 던졌다. 김지훈 감독과 하지원, 그리고 넓게는 '한국 3D영화의 흑역사'가 된 <7광구>였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며 최소 400만 이상의 관객이 필요했던 <7광구>는 224만 관객에 그치며 김지훈 감독에게 첫 번째 시련을 안겨줬다.

하지만 김지훈 감독은 이듬 해 또 다시 100억 원 이상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차기작 <타워>를 선보였다. 스타배우 설경구, 손예진과 함께 <화려한 휴가>의 김상경,<목포는 항구다>의 차인표 등이 출연한 <타워>는 전국 518만 관객을 동원, <7번 방의 선물>,<베를린> 등 쟁쟁한 경쟁작이 많았던 2012, 2013년 겨울시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하지만 김지훈 감독은 <타워> 이후 무려 9년 간 신작을 개봉시키지 못했다.

2017년에 촬영을 마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개봉이 미뤄진 가운데 김지훈 감독은 2021년 여름 치승원, 김성균, 이광수, 김혜준 주연의 재난 코미디 <싱크홀>을 먼저 선보였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개봉한 <싱크홀>은 219만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다. 하지만 2022년 4월 촬영 종료 5년 만에 개봉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평단과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면서 41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12년 만에 제작된 한국형 화재 재난영화
 
 <타워>는 화려한 볼거리 외에도 설경구,손예진,김상경으로 이어지는 호화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됐던 영화다.

<타워>는 화려한 볼거리 외에도 설경구,손예진,김상경으로 이어지는 호화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됐던 영화다. ⓒ CJ ENM

 
한국에도 화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고는 쉽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2000년 한국에서도 <싸이렌>과 <리베라메>라는 '파이어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들이 제작·개봉했다.

그 후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고 김지훈 감독은 소방관들의 사투와 희생, 생존을 위한 인간의 의지와 본능을 그린 화재 소재의 재난영화 <타워>를 만들었다.

<타워>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에서 헬기사고로 인해 대형화재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김지훈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영화 속 실감나는 화면을 연출하기 위해 많은 장면에서 CG가 아닌 현장에 실제로 불을 붙여 촬영을 했다. 영화의 백미 중 하나였던 물탱크에서 물이 범람해 인물들을 덮치는 장면 역시 고양시의 특수효과 전문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물론 <타워>는 대형빌딩의 화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제목도 비슷한 할리우드의 재난영화 <타워링>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적지 않은 부분에서 <타워링>과 설정이 겹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빌딩 설계자 폴 뉴먼과 소방대장 스티븐 맥퀼이 투톱 주인공으로 나오는 <타워링>처럼 <타워> 역시 베테랑 구조대장 강영기(설경구 분)와 타워스카이 시설관리팀장 이대호(김상경 분)가 영화를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워>의 설정이 <타워링>과 비슷했다면 스토리 진행은 3년 전에 개봉했던 <해운대>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해운대>에도 출연했던 설경구와 김인권, 고 송재호 배우의 캐릭터는 <해운대>에서 맡았던 캐릭터와 상당히 유사하고 김상경과 손예진의 러브라인 역시 <해운대> 속 설경구와 하지원 커플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재난영화의 특성상 스토리가 단순한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관객들이 <해운대>를 잊기에 3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정의의 아이콘' 차인표의 배신(?)
 
 차인표가 연기한 조회장의 과시욕이 없었다면 타워스카이의 대형화재도 없었을 것이다.

차인표가 연기한 조회장의 과시욕이 없었다면 타워스카이의 대형화재도 없었을 것이다. ⓒ CJ ENM

 
2000년대 초반 남북문제를 왜곡한다는 이유로 <007 어나더데이>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고 탈북자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에 출연했던 차인표는 <타워>에서 이기적인 타워스카이의 CEO 조회장을 연기했다. 기상조건 악화에도 타워스카이의 화려함을 자랑하기 위해 헬기사용을 불법으로 승인 받아 타워스카이 화재의 원인을 제공한 조회장은 영화 중반 사람들이 빠져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방화벽을 내리며 많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기도 했다.

<해운대>에서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줬던 김인권은 <타워>에서도 119 구조대원 오병만 역을 맡아 <해운대> 못지 않은 생존본능과 함께 개그캐릭터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건물이 붕괴되고 바닥의 함몰로 밑으로 추락해도 끈질기게 목숨을 건진 오병만은 풀장 안에 숨어 있던 교인들을 만나 이동하던 중 물폭탄을 만난다. 오병만은 마지막에도 강영기의 희생으로 물살에 휩쓸려 한강으로 빠져 나와 목숨을 건지지만 강영기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한다.

<아저씨>와 <시크릿 가든> 이후 2010년대 초반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신스틸러'로 활발하게 활동한 김성오는 타워스카이의 주방 일식파트에서 근무하는 인건을 연기했다. 여자친구인 민정(이주하 분)에게 프로포즈를 시도하다가 번번이 실패한 인건은 건물화재로 크게 고생하지만 민정과 함께 끝까지 살아 남는다. 김성오는 2012,2013년 겨울 시즌 <타워>와 <나의 P.S. 파트너>, <반창꼬>까지 3편의 영화에 동시에 출연했다.

<해운대>의 김유정, <부산행>의 김수안처럼 재난영화에는 어른들의 보호와 희생 속에 끝까지 생존하는 어린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타워>에서는 조민아가 연기한 이대호의 딸 이하나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화재 후 아빠와 힘들게 만난 하나는 구름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다리가 붕괴되면서 다시 아빠와 헤어진다. 하지만 신입 소방관 이선우(도지한 분)의 활약으로 무사히 구조돼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와 재회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타워 김지훈감독 설경구 차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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