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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인조 밴드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의 1집 [Play.ers]
최근 2~3년간 가요계의 동향을 보면, 확실히 이전보다는 다양성 면에서는 한 차원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멜로 펑크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아소토 유니온)가 등장하는가 하면, 라운지 팝(클래지콰이)에서 서프 록(오! 브라더스), 레게(버즈라이더스)에 어반 소울(얼바노)까지. 게다가 엠-보트와 YG 사단 소속의 흑인 음악 가수들까지 감안하면 범위는 더 넓어진다.

발라드와 랩 댄스 일변도이던 가요계에 이만큼의 다양성과 골라 듣는 재미가 생긴 것만 해도 충분히 즐거워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다채로운 스타일의 성찬 속에서도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음악들이 해외의 '쿨한' 유행을 별다른 자각 없이 고스란히 흉내내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요컨대 근래 등장하는 '본토음악'들이란 것이 복제할수록 품질이 떨어지는 유사(시뮬라르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근래 가요계의 이 경향을 '유사 본토 음악'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물론 이 새로운 경향이 해외 음악 장르를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과정임을 감안한다면 가혹한 평가일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국내 밴드들도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내는데 신경 써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물론 이는 어떤 가수들이 주장하듯 '한국적 R&B', '한국적 월드뮤직' 따위의 괴이쩍은 음악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 12인조 밴드 커먼 그라운드 멤버들
ⓒ JNH
막 데뷔 음반을 낸 12인조 대형 브라스 밴드 커먼 그라운드(Common Ground) 역시도 이 '유사 본토 음악'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속한다. 이들은 기타-베이스-드럼-퍼커션-키보드-보컬 등의 기본 포지션 외에 두 대의 색소폰과 두 대의 트럼펫, 그리고 한 대의 트롬본으로 이루어진 거창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언론을 통해서는 '국내 최초'의 대형 밴드로 소개되고 있는데, 과거 정성조나 안건마의 악단이 작곡자의 백밴드 형태였음을 감안한다면 최초라는 수식어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또 음반 타이틀이 [Play.ers]라는 사실은 커먼 그라운드가 '가수'보다는 연주자 중심의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출발은 좋다. 인트로 격인 "Horny Play"에서 커먼 그라운드는 트럼펫 마우스피스를 이용해 말울음 소리를 비롯한 '기예'를 펼쳐 보이며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허비 행콕을 연상시키는 키보드 전주로 시작해 질풍처럼 애시드 펑크로 내달리는 "Sexy Soul" 역시도 그간 국내 음반에서 들어보지 못한 시도임에 분명하다. 이 곡은 보컬과 밴드 멤버들의 재기 넘치는 콜 앤 리스폰스, 일사불란하게 쭈욱 내뿜어대는 브라스 섹션의 찰진 맛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멜로 펑크 넘버 "Solitude"나 김현철 4집을 떠올리게 하는 "상처", "소금사탕" 등도 다소 개성이 결여된 보컬만 제외한다면(시종 박효신처럼 들린다) 밴드의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커먼 그라운드의 음악 역시 '유사'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소 평이한 작곡은 리듬감을 중시하는 이들 음악의 특성상 지나친다고 해도, 브라스를 동원한 펑크 음악의 흥취를 이 음반이 제대로 살려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펑크는 넘치는 에너지이고, 흑인의 로큰롤이며, 영혼이 충만한 싸이키델릭 반응(<대중음악사전>, 로이 셔커 저)"이라는 혹자의 언급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펑크나 애시드 재즈는 술 마시고 춤추고 성교하는 난봉꾼스러운 맛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커먼 그라운드는 너무 점잔을 뺀다. 마치 연미복을 입은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것은 밴드 리더가 '건전한 어반 소울 듀오' 얼바노(Urbano)의 김중우라는 점에서 연유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밴드 멤버들이 세션맨 출신이라는 한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커먼 그라운드의 음악이 안정적인 맛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 일류 펑크 밴드들의 광기어린 음악을 들어온 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라고 하는 편이 솔직한 반응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브라스를 남발한다는 악평을 들었던 김현철 4집도 이보다는 신나는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커먼 그라운드의 등장은 국내 가요계에 날로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소개' 차원에, 그리고 '최초'의 멍에에 얽매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국내 음악인들도 해외의 것을 똑같이 '복제'하는 수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으니 말이다.

커먼 그라운드로서도 1집을 통해 연주 실력만큼은 충분히 보여준 만큼, 다음 음반에서는 자신들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추구하는 애시드-펑크의 장르적 특성을 보다 면밀하게 추구할 필요도 있겠다.

기왕 이런 음악을 하려거든, 좀 더 과감하게 섹시해질 필요가 있다. 신사적인 디오니소스는 주신(酒神)으로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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