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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의 새 앨범 [One Plus One is One]
영국 평단의 극찬 속에 데뷔해 새천년 머큐리 음악상까지 거머쥔 영국 포크 팝 계의 무서운 신예,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의 2년만의 정규 음반이다. 아마도 국내 팬들에게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를 장식하던 따스하고 인간미 넘치는 포크 록 음악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영화 전체에 드리운 영국식의 날카로운 유머와 개인주의적인 인물들의 태도는 배들리 드론 보이 특유의 서정적인 사운드와 멋진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한편으로 음악 평론가 출신의 원작자인 닉 혼비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이어 발표된 [Have You Fed the Fish?] 역시도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나 닉 드레이크(Nick Drake)를 거론하는 평자들의 기대치를 배반하지 않는 매력적인 음반이었다. 다만, 이 신예 뮤지션에게 무언가 새롭고 당돌하고 혁신적인, '영국의 벡(Beck)'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면모를 요구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음반이었던 모양이다.

요컨대 배들리 드론 보이에게는 두 가지의 양면적인 기대가 존재한다. 여전한, 변함없는, 몇 백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아름답고 유려하고 인간미 넘치는 노래를 들려줄 것에 대한 기대와 - 반대로 뭔가 다른, 특별한, 독창적인 음악을 선보일 것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새 소식이 막 궁금해질 즈음에 딱 맞춰 발표된 신보 [One Plus One is One]는 두 부류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음반이라 할 만하다.

우선 포크 팝의 신봉자들. 이 음반은 기본적으로 이런 부류의 싱어송 라이터에게 기대되는 요소들을 하나 빠짐없이 충족시키고 있다. 처음 몇 곡만 들어도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One Plus One Is One"의 능수능란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찰랑거리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플러킹을 번갈아 가며 엮어내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구슬픈 플루트 선율이 어우러지는 "Easy Love", 처연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의 현악기와 물결처럼 은은한 나일론 기타가 고혹적인 "This Is That New Song" 등등.

사람들이 '포크 팝 싱어송 라이터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존재한다. 서정적이고도 온기 넘치는 사운드의 포근함, 유머러스한 노랫말과 넘치는 재치, 유려한 멜로디,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다면 '영국산 벡'다운 면모는? 이를 위해 배들리 드론 보이는 조율이 잘 된 피아노 한 대를 꺼내든다. 그리고 피아노를 통해 경쾌하면서도 화려한 리듬감을 불어넣으며 변화를 시도한다. 오케이, 배들리 드론 보이는 본작에서 피아노를 '리듬 악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다섯번째 곡인 "Another Devil Dies"부터 확인이 가능하다. 이 곡에서 피아노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도입부에서는 아르페지오로 명징한 선율을 만들어내다가, 첫번째 버스(verse)에서는 선율과 리듬을 동시에 담당하고, 코넷과 드럼이 등장하는 두번째 버스부터는 독자적인 전개를 보이면서 비트의 싱코페이트를 더욱 자잘하게 만든다.

이어지는 "Blossoms"에서는 키보드가 배턴을 이어받는다. 세 박자의 코믹한 리듬을 뒤뚱거리며 전개하는 키보드와 단조의 플루트가 이루는 대조가 흥미로운 곡이다. 이외에도 "Stockport"와 "Take The Glory"에서도 피아노가 중심이 되어 그 특유의 또렷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음색으로 리듬과 선율을 동시에 만들어가는 부지런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곡은 음반 정중앙에 자리한 "Four Leaf Clover"과 "Logic Of A Friend", 그리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Holy Grail"일 것이다.

"Four Leaf Clover"에서는 피아노-기타-핸드클랩-드럼이 제각기 펼쳐내는 폴리리듬적인 효과가, "Logic Of A Friend"에서는 피아노를 통해 드럼 비트 사이에 묘한 텐션을 만들어내는 유머 감각이 인상적이다.

또한 대미를 장식하는 "Holy Grail"는 7번 트랙 "Year Of The Rat"의 확장판 격인데, 8분여 러닝 타임의 대곡답게 변화무쌍한 전개를 보인다. 우선 초반부엔 어린이 코러스와 실로폰이 'Holy'한 분위기를 만드는 동안, 심벌을 딸그락거리는 드러밍은 피아노와 함께 네 박자의 위태위태한 리듬을 이어간다.

4분여쯤부터 피아노가 스타카토로 음표를 빼곡이 찍어대면서 변박자를 시작, 16비트를 두들기며 정신없이 내달리다가 뒤를 잇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사운드 이펙트로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펑키하고 카랑카랑한 기타 리프로 요란을 떠는 "Summertime In Wintertime"과 함께 이 음반에서 가장 이채로운 순간이다.

확실히 배들리 드론 보이는 영리한 존재다. 순진한 척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지만, 누구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신작 [One Plus One is One]를 통해서 그는 기존 자신의 음악적 특질을 유지하면서, 은근하고도 과감한 진폭의 변화를 시도하는 양면적 과제의 절충을 멋지게 성공하고 있다. 그 결과 서정성과 인간미 넘치는 포크-로파이 팝의 매력에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에서 이펙트를 거세한 듯한 경쾌하고 활기 넘치는 리듬감이 더해졌다.

한편으로 강화된 피아노의 비중은 배들리 드론 보이가 닉 드레이크와 엘리엇 스미스의 영향권을 넘어, 존 레논이나 엘튼 존 류의 '피아노 맨' 선배들의 전통마저도 담아내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전통과 변화가 멋진 합일을 만들어내는, 제목 그대로의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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