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다. 매화 흐드러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매실이 달렸다. 휑-하던 들녘도 마늘, 양파와 유채꽃으로 생기를 띠고 있다. 산자락과 과원엔 배꽃, 사과꽃,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도 어느새 연둣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파리 한 줌 쥐어짜면 손바닥에 연녹색 물이 들 것 같다.
도로변 마을 앞에 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다. 팽나무가 많다. 느티나무도 보인다. 도로변 가로수이고,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이고, 마을숲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수령 수백 년은 족히 돼 보인다.
나무도 크고 굵다. 키 20∼30m, 가슴높이 둘레 2∼3m쯤 된다.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70여 그루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조상들이 신목(神木)으로 여기며 숭배한 당산나무이고 정자나무다. 지난 10일 이 곳을 찾았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오른다. '팽총'을 만들어 놀던 기억이다. 팽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초여름이었다. 작은 대나무 대롱에다 팽나무 초록열매를 한 알씩 넣고 쐈다. 대나무 꼬챙이를 탁- 치면, 대롱 속 열매가 팽-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팽나무 이름 유래다. 열매도 맛있었다. 새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잔가지는 약재로 쓰였다.
'청천리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숲'이다. 광목간 도로변,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청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무안읍에서 목포 방면으로 옛 1번 국도를 타고 3㎞ 지점이다. 숲이 자연유산(천연기념물)으로 지정돼 있다. 숲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50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달성 배씨와 관련된다. 마을 앞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거칠고 매서웠다. 농사에도 큰 피해를 줬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었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팽나무와 개서어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바닷바람을 막아줬다는 얘기다. 시나브로 자손이 늘고, 마을도 번창했다.
청천마을은 1400년대 중반 증암 배회가 터를 잡았다. 산세 수려하고, 마을로 흐르는 시냇물이 맑다고 '청천(淸川)'이다. 지명처럼 냇물이 마을을 관통한다. 마을 뒤 승달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이다. 수량은 많지 않다. 좁은 골목과 담장, 허름한 집은 옛 시골마을 풍경 그대로다. 농업을 주제로 그려진 담장벽화에서 마을의 내력을 짐작해 본다.
마을 안쪽에 반듯한 기와집이 보인다. 달성 배씨 사당 청천재(淸川齋)다. 입향조인 배회, 무열공 배현경, 율헌 배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83년 후손이 세웠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리고, 나중에 다시 지었다. 유허비는 1893년 세웠다.
청천재는 동학혁명 때 집강소(執綱所)로 쓰였다. 집강소는 동학군이 치안을 바로잡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려고 전라도 고을에 설치한 자치기구다. 1894년 5월 동학군이 전주를 점령하고 정부와 맺은 전주화약 이후다. 무안 집강은 서남부지역 대접주 배상옥이 맡았다.
배상옥은 백산봉기에 참여하고, 호남동학군을 이끌었다. 평소 백마를 타고 다니며 동학군을 지휘했다. 무안 해제 임치진에 설치된 지휘부와 석용리 연병장을 오갈 땐 배를 타고 창포만을 누볐다. 창포만은 매립돼 사라지고, 지금은 농경지로 바뀌었다.
배상옥은 1863년 삼향면 대월리(현 목포시 대양동)에서 태어났다. 달성 배씨 집성촌인 대월리는 객주가 있고, 난장이 선 곳으로 늘 북적였다. 집안은 중농 수준의 부자였다. 본명은 규옥, 자(字)는 상선이다. 상선과 규옥의 앞글자를 따 '상옥'으로 불렸다. 관군의 추적을 피해 신분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한다.
배상옥은 목포진을 공격해 확보한 무기로 동학군을 무장시켰다. 임치진에 무안동학 지휘본부를 설치했다. 삼향면 대월리와 해제면 석용리에 연무장을 만들어 군사 훈련도 시켰다.
배상옥은 갑오년 11월 17일 고막원(나주시 문평면)과 고막포(함평군 학교면) 일대에서 관군에 맞서 싸웠다. 관군에 패하고 해남의 한 섬에 숨어 지내다가 붙잡혔다.
배상옥은 '동학의 괴수'로 불렸다. 주민들 사이에선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그래야 무탈했다. 그의 무덤 소재를 알 수 없는 이유다. 그의 위패만 청천재에 모셔져 있다. 청천마을에선 배상옥·규찬 형제를 비롯 병선·병현·병만 3형제와 정기·정규 형제 등이 동학혁명에 앞장섰다.
무안동학의 중심지였던 청천마을은 간척되기 전까지 포구마을이었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방풍림이 조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달성 배씨 집성촌이다.
마을에 배씨 서당이 있었다. 지금은 표지판으로만 남아 있다. 목포대학교 총장, 국회의원을 지낸 배종무가 이 마을 출신이다. 배종무의 어머니가 80여 년 전 터를 잡은 절집 마곡사도 승달산 자락 큰바위 아래에 있다.
"이 골짜기를 법푸네골, 가재골이라 부릅니다. 폭포 소리가, 흡사 구슬이 부딪혀 우는 것 같다는 명옥폭포도 있었어요. 나환자들이 물을 맞으며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한때 산삼이 많이 났다고 했고, 그런 연유로 장뇌삼도 많이 재배했죠. 지금은 다 옛 얘기입니다."
마곡사 주지 정평스님의 말이다.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숲에서 다시 마을을 바라본다. 산세 좋다. 마늘과 양파밭 한데 어우러진 마을은 평범하다. 나무그늘에서 마주한 바람결이 달보드레하다. 쉬어가기에 좋은 마을숲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