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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치시민물결과 기후정치바람 그리고 단비뉴스는 4월10일 총선이 기후위기 대응의 전환점이 되도록 각 지역 후보의 기후정책을 점검하고 기후유권자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벽보 제출 마감일인 27일 서울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가 각 후보의 선거벽보를 정리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2번 국민의힘 최재형, 7번 개혁신당 금태섭, 8번 가락특권폐지당 김준수, 9번 대한국민당 김종갑, 10번 민중민주당 차은정, 6번 새로운미래 진예찬 후보.
▲ 한자리에 모인 종로구 후보자 선거벽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벽보 제출 마감일인 27일 서울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가 각 후보의 선거벽보를 정리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2번 국민의힘 최재형, 7번 개혁신당 금태섭, 8번 가락특권폐지당 김준수, 9번 대한국민당 김종갑, 10번 민중민주당 차은정, 6번 새로운미래 진예찬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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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만큼 '심판'을 입에 올리기 좋은 기회도 없다. 각 정당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심판을 거론하고 또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를 통한 심판은 주권자의 선택이 핵심이다.

종로구 시민으로서 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떤 심판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직접 알아보고자 3월 30일 오후 대학로를 찾아갔다.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오후 5시에는 종로구 현역 의원인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 유세가 있고, 오후 6시에는 개혁신당 금태섭 후보의 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먼저, 현 여당인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 측 유세는 더불어민주당과 곽상언 후보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시민들에게 국정을 발목 잡고 있다는 제1야당과 소속 후보에 대한 심판을 호소한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보통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중간 성적평가를 의미한다. 잘했으면 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못했으면 여당을 심판한다. 그런데 이를 뒤집는 혁신적 발상이랄까. 어쨌든 심판은 심판이다.

오후 6시가 지나고, 모든 유세가 끝났음에도 국민의힘 유세 차량이 그 자리를 계속 지켰다. 예정대로라면 개혁신당 금태섭 후보의 연설이 이어져야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쪽 유세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일종의 '알박기'인가? 급한 대로 금태섭 후보 페이스북에 접속해 봤지만,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날도 저물고 바람도 차가워져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금태섭 후보의 페이스북에서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제1야당을 모두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금태섭 후보는 양당 모두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을 피력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심판은 심판이다.

4월 1일에는 통인시장에서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후보의 유세가 있었다. 곽상언 후보 측은 현 국정 책임자들의 실정과 무능을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을 부탁했다. 어쨌든 심판은 심판이다.

인왕산에 산불이 났다
 
2023년 4월 2일 오후 산불이 발생한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 인왕산 산불 2023년 4월 2일 오후 산불이 발생한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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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지역구 선거에는 총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러나 유세 일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후보는 3명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머지 후보들은 선거 유인물과 TV토론 등으로 공약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어쨌든 심판은 심판인데,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종로구 시민으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심판'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23년 4월 2일 인왕산에 산불이 났다. 낮 12시쯤 처음 연기가 피어올랐다는데, 인왕산 자락에 살던 나는 그로부터 한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헬기 소리가 한 번 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기를 띄고 들려오기에 그제야 창문을 열고 밖을 봤더니 지척에 있는 인왕산이 불타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현실적인 풍경의 재래랄까.

나는 노트북이라도 들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하나 싶으면서도 인왕산이 불타는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산불이 난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와 2021년 러시아 시베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서울시 16배 크기의 면적을 불태웠고, 러시아 시베리아 산불은 대한민국 면적의 약 91%에 해당하는 지역을 집어삼켰다.

인왕산 산불은 다음날인 4월 3일 1시 무렵 완전히 진화됐다. 불길이 25시간 동안 태운 면적은 축구장 32개가량이었다. 서울시 화재 중 역대 최대 규모였고, '예상 피해 면적이 30~100㏊, 평균 풍속이 초속 4~7m, 예상 진화 시간이 8~24시간일 때 발령'되는 산림청의 '산불 대응 2단계'가 내려진 것 역시 처음이었다. 종로소방서에 전화해 인왕산 산불 원인을 물었더니 정보 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산불 원인은 미상인 경우가 많다고.

기후위기 막는 최전선 소방수가 사라지고 있다

대형 산불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러했듯, 전 세계적인 전염병처럼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캐나다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2023년 5월 산불, 하와이주 역사상 최악이라는 2023년 8월의 산불, 텍사스주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2024년 3월의 산불 등등(러시아는 매해 가마처럼 불타고 있다).

인왕산 산불은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진압됐지만, 태풍, 가뭄, 홍수 같은 재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가는 배경, 특히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형 산불의 규모와 지속 기간이 역대 기록을 계속 깨어나가는 배경에 기후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2022년, 비영리기구인 세계자원연구소는 지난 20여 년 동안 전 세계 산림의 4분의 1가량이 산불로 손실됐다고 발표했다. 이것의 의미는 두 가지다. 기후 위기를 막는 최전선의 소방수가 산불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대형 산불의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지고, 더욱 잦아지리라는 것. 대형 산불은 기후 위기의 결과이자 동시에 원인이 됐다(2023년 캐나다 산불로 배출된 탄소는 캐나다 연간 탄소 배출량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준엄하고 무섭고 객관적인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것인가, 기후 재난이 하는 것인가?

기후재난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방법
 
2023년 4월 6일 오후 서울 인왕산 일대에 지난 2일 발생한 화재로 인해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3년 4월 6일 오후 서울 인왕산 일대에 지난 2일 발생한 화재로 인해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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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를 직접 보러 가기 전, 나는 주요 후보들의 사무실에 전화해 기후 관련 공약, 특히, 인왕산 산불 대비 같은 종로구 내 기후 위기 관련 공약이 있는지 물었다. 다들 준비가 안 된 탓인지, 협의 후, 상의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만 답했다.

당 차원에서 10대 공약으로 기후 위기 관련 문제를 포함시킨 정당도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관련 공약은 이전 선거에도 있었다는 점과 공약이 공염불로 그치기 일쑤라는 점, 지역 내의 현안과 밀접한 기후 관련 공약이 없다는 점 등은 아쉬움을 넘어 절박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심판의 주체가 시민에게서 대형 산불 같은 기후 재난으로 넘어간 상황을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다.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시민들은 심판의 주체이자 동시에 기후 재난이 주관한 심판의 대상이 됐다.

다시 말해보자. 선거만큼 '심판'을 입에 올리기 좋은 기회도 없다. 인왕산 산불은 꼭 작년 이맘때 일어났고, 대한민국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인왕산 산불이 또 다른 산불로 이어지는 상황, 대형 산불 같은 기후 재난이 인류를 속수무책으로 심판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나는 '기후 유권자'가 될 생각이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잘 아는 정당과 후보, 기후 위기 관련 공약을 준비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편을 심판하는 것, 이것이 기후 재난에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방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기창은 2014년 장편소설 <모나코>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방콕>,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이 있다.


태그:#기후위기,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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