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 KB스타즈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4차전. KB 박지수가 우리은행 수비진 사이에서 슛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24.3.30

30일 충남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아산 우리은행과 청주 KB스타즈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4차전. KB 박지수가 우리은행 수비진 사이에서 슛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24.3.30 ⓒ 연합뉴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었다. '역대 최고의 팀'이 '역대 최고의 선수'를 넘어섰다.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이 박지수를 앞세운 청주 KB스타즈의 통합우승을 가로막으며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3월 30일 아산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 우리WON 2023-24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우리은행은 KB에 78-72로 승리했다. 우리은행은 KB를 3승 1패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여자프로농구 2023-2024시즌 챔프전은 그야말로 'GOAT(Greatest Of All Time)'들의 대결로 눈길을 모았다. 정규리그 우승팀 KB가 '역대 최고의 선수' 박지수를 앞세워 통합우승을 노렸다면, 우리은행은 국내 남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최다우승 기록을 자랑하는 여자농구 '역대 최고의 팀'이었다.

공황장애와 부상을 딛고 돌아온 박지수는 올시즌 정규 리그를 그야말로 평정했다. 20.3점, 15.2리바운드, 1.8블록슛, 2점슛 성공률 60.6% 등 공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싹쓸이했고, 마지막 6라운드를 제외한 1-5라운드까지 다섯 번의 라운드 MVP를 홀로 독차지하기도 했다. 사실상 개인 통산 4번째 정규리그 MVP를 이미 예약해놓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정선민-박찬숙-박신자 등 쟁쟁한 전설들을 제치고 이미 '여자농구 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지수를 앞세운 KB는 정규시즌 27승 3패, 승률 9할, 홈 전승(15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리그를 평정했다. 정규리그 4위 하나원큐와의 4강 플레이오프도 3경기만에 손쉽게 스윕하고 올라왔다. 박지수는 하나원큐를 상대로 평균 19.7득점 16.3리바운드로 플레이오프에서도 대활약을 펼쳤다.
 
이에 맞서는 우리은행은 23승 7패로 KB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며 손쉽게 통합우승까지 달성했지만 이번 챔피언전에서 홈어드밴티지를 KB에 내줘야 했다.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도 KB가 4승 2패로 앞섰고, 그나마 1번은 KB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고 박지수가 결장한 경기에서 당한 패배였다. 체력적으로도 4강전을 4차전까지 치른 우리은행에 비하여 3경기 만에 스윕하고 올라온 KB가 유리했다. 자연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KB의 우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은행은 챔프전 첫 경기부터 정규리그-4강전까지 이어온 KB의 홈 17연승 행진을 가로막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홈에서 KB가 올시즌 처음이자 유일한 패배를 당한 경기였다.

KB는 2차전에서 박지수의 활약을 앞세워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원정으로 치러진 3-4차전에서 우리은행의 상승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끝내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우리은행은 2년 전인 2021-2022시즌 챔프전에서 KB가 0-3으로 스윕당했던 아픔을 깔끔하게 설욕했다. 반면 KB는 2위로 챔프전에 올랐던 2020-21시즌 4위팀 삼성생명에게 덜미를 잡힌 데 이어 3년 만에 또 한번 챔프전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지략가'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의 승부수는 에이스 김단비를 박지수에게 일대일로 매치업시키는 전략이었다. 스몰 포워드이지만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인 김단비는 박지수와의 매치업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신장이 16cm나 열세임에도 김단비가 적극적으로 몸싸움으로 박지수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동안, 가까운 수비수들이 계속해서 도움 수비를 펼치며 공을 빼앗는 전략이 주효했다. 박지수의 득점과 리바운드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박지수로부터 파생되는 공격루트를 제한하고 KB의 수많은 실책을 유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 적중했다.
 
김단비는 공격에서도 자기 몫을 다해주며 사실상 풀타임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김단비는 챔프전에서 평균 39분 21초를 출전하며 21.75득점, 6.5리바운드, 6.5어시스트, 2.25스틸, 2.5블락슛이라는 믿기 어려운 원맨쇼를 보여줬다. 2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MVP도 김단비의 몫이었다.
 
박지수도 매경기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평균 24점, 17.3리바운드도 분전했다. 하지만 숫자로 드러난 기록에 비하여 실제 활약상은 그에 못미쳤다. 박지수가 37점, 20리바운드로 올시즌 챔프전 최다득점, 리바운드 기록을 올린 2차전만 겨우 신승했을뿐, 나머지 3경기에서는 우리은행의 수비에 고전하며 득점이 자주 막히는 답답한 장면이 반복됐다. 벼랑 끝에 몰린 4차전에서는 1쿼터 무득점에 이어 조기에 파울트러블까지 걸리며 심리적으로 흔들렸다.
 
다급해진 KB는 챔프전 도중 박지수에 대한 심판콜이 너무 야박하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WKBL은 판정기준에 문제가 없다며 KB의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박지수만 바라보는 KB의 단순한 패턴도 문제였다. 사실 KB의 선수구성은 박지수가 없더라도 이미 수준급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도 박지수 한 명이 이탈하자마자 4강 플레이오프도 오르지 못하고 우승에 5위팀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맛 본 바 있다.
 
올해 박지수의 정상적인 복귀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막상 가장 중요한 챔프전에서 이런 불안요소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믿었던 박지수가 막히자 다른 선수들까지 덩달아 흔들리는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4차전에서 팀 내 2옵션이자 국가대표 슈터라는 강이슬이 충격적인 무득점에 그친 장면이 대표적이다.
 
김단비나 박혜진, 최이샘 등 주전들 외에도 나윤정, 이명관 등 벤치 멤버들까지 코트에 나오는 모든 선수들을 고른 활약을 펼친 우리은행과의 차이점이었다. 우리은행이 '원팀'으로 똘똘 뭉쳤다는 것이, 박지수의 '원맨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챔프전의 운명을 갈랐다. 무엇보다 팀스포츠에서 아무리 뛰어난 슈퍼스타를 보유했다고 해도 팀보다 더 위대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은, 올시즌 우리은행의 이변이 더욱 값진 이유다.
 
우리은행은 이로서 챔프전 2연패를 포함하여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내 프로스포츠 통산 역대 최다우승 기록을 '13회'로 늘리며 또 하나의 역사를 수립했다. 챔피결정전전 우승만 놓고보면 12회다.
 
우리은행은 2003년 겨울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03년 여름리그, 2005년 겨울리그, 2006년 겨울리그,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6연패)에 이어 2019-2020시즌과 2022-2023시즌, 2023-2024시즌에도 연이어 우승컵을 품에 안으며 통산 열세 번째 정상에 섰다. 이중 2019-2020시즌은 중국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시즌이 조기종료되며 플레이오프 없이 우승을 확정한 바 있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로 불리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 13회 우승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해태 시절을 포함해 11회 우승을 차지한 것이 2위다. 남자축구 K리그에서는 전북 현대의 9회 우승, 남자배구 삼성화재의 8회, 남자프로농구의 울산 현대모비스의 7회 우승 등이 종목별 최다우승 기록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여자농구 역사상 최강의 왕조를 구축한 우리은행, 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선수로 올라선 박지수, GOAT 팀과 GOAT 선수간의 경쟁구도는 최근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다음 시즌에는 WKBL이 외국인 선수제도 부활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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