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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고 고동영 일병의 어머니 이순희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도중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7년 10월 고 고동영 일병의 어머니 이순희씨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도중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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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무죄야! 네가 왜 무죄야!"

30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505호 법정 안팎에서 탄식과 절규가 터져 나왔다. 휴가 중 생을 마감한 고 고동영 일병 사건의 헌병대 수사를 무마하려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된 육군 중대장 A씨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방청석에서 선고 결과를 들은 고인의 어머니 이순희씨는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고, 피고인석에 있던 A씨는 고개를 숙인 채 이씨를 지나쳐 법정을 빠져나왔다. 

"동영이 대신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가세요! 어차피 우리 애는 갔고 돌아오지도 않는데, 기차에 부딪혀 몸 반쪽이 없어진 애를 떠올리며 사는 트라우마를 당신이 압니까!" 

법정 밖 엘리베이터 앞에서 A씨의 외투를 붙잡은 이씨가 오열하며 쓰러졌다. 한동안 소란이 이어진 후 A씨도 이씨의 손을 잡은 채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이씨와 함께 법정을 찾은 다른 군 사망 유족들이 "진정 어린 사과라도 해달라"고 권유했고 A씨는 고개를 숙이며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참을 오열하던 이씨는 "이런 판결이 나올 때면 정말 씁쓸하다"고 한탄했다. 

재판부 "심정 이해한다"면서도 "제보자 외 증언 없다" 판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등법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서울고등법원.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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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7일 육군 제11사단 전차대대 정비반에서 복무 중이던 고인은 부대 간부 폭언 등에 의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휴가 중 자신이 좋아하던 기찻길에서 목숨을 끊었다.

모친 이씨가 2017년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한 고인의 유서에는 "군생활 한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가는데 너무 힘들다", "(간부들이)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한심하게 보고, 답답하게 보고", "겉으로 괜찮은 척, 좋은 척 하는 것도 이젠 한계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정비관의 변덕스런 성격도 싫고 다른 정비 간부들에게 피해 주고 그러는 것도 싫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씨는 고동영 일병 사망사건 이후 간부들을 모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헌병대 조사에서)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고 모른다고 말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했다는 이 발언은 7년이 지난 2022년 같은 부대원이었던 제보자가 군인권센터에 전하면서 알려졌다.

유족은 제보를 토대로 A씨를 군검찰에 고소해 기소까지 이뤄졌으나 1심 군사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남성민 박은영 김선아 부장판사) 또한 같은 결론을 냈다. 판결에 앞서 남성민 재판장은 어머니 이씨를 호명한 뒤 이같이 말했다. 

"이순희님이 재판부에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사정을 잘 고려해 심리해 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저도 두 아들을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이순희님이 어떤 심정에 있을지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짧은 위로의 말을 건넨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을 은폐하라는 발언을 할 때 병사들 40∼50명이 함께 있었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이러한 증언을 한 사람(제보자) 외에 피고인의 말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며 "현재 피고인과 업무적 관계가 없는 간부 병사들 17명도 피고인이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는 취지로 사실 확인을 해줬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제보자의) 진술이 7년 지나 기억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진술만으로 그와 같은 사실과 (A씨의) 발언이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군인권센터 "재판부 무책임... 자식 잃은 부모, 언제까지 진실 찾아야 하나"

유족과 함께 사건을 공론화한 군인권센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체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언제까지 진실을 찾아 헤매야 하는가. 이번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이 사건은 고인 소속 부대 간부 중 한 명이 고인 어머니를 수소문해 찾아와 당시의 일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면서 시작됐다"며 "제보자의 진술과 피고인인 중대장(A씨)이 모아온 다른 부대원들의 진술이 상이하다면 증거조사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군인권센터는 "그러나 1심 군사법원도,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도 이러한 절차를 꼼꼼히 밟지 않고 피고인을 위해 진술해 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제보자의 말을 거짓말인 것처럼 결론을 내렸다"며 "상식적으로 전역한 지 오래된 제보자가 거짓으로 제보할 까닭이 없음에도 이러한 결론을 낸 것은 재판부가 무책임하고 나태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보훈부는 (유족의) 보훈 신청 과정에서 '고인이 개인 사유로 사망한 것'이라 주장하며 보훈을 인정하지 않다가 유족과의 소송 끝에 대법원이 군대 내 괴롭힘과 업무상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자 그때서야 (고 일병을) 보훈대상자로 지정했다"며 "오늘 판결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는 책임을 방기하며 진실을 조사하고 확인할 책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태그:#고동영일병사망사건, #군사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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