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켜보는 김원형 감독 10월 3일 오후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SSG 김원형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경기 지켜보는 김원형 감독 10월 3일 오후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 랜더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SSG 김원형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SSG 랜더스가 김원형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지난 10월 31일 SSG 구단은 김 감독과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하며, 그 이유로 팀 운영 전반의 변화와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로써 김 감독은 창단 첫 통합우승과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한 지 불과 1년 만에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김원형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와 SK 와이번스 등에서 선수생활을 보냈고 통산 134승(역대 9위)을 달성한 정상급 투수였다. 은퇴후에는 SK-롯데-두산 코치를 거쳐 2020년 11월에는 친정팀 SK 와이번스의 8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이후 SSG가 SK를 인수하면서 김원형 전 감독은 SK의 마지막 사령탑이자 SSG 초대 사령탑이 됐다.
 
부임 첫해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6위에 그치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2022시즌에는 개막부터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시즌 내내 1위를 놓치지 않고 결국 마지막 경기까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서도 키움 히어로즈와 명승부를 펼치며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완성했다. 구단은 김 감독의 공로를 인정하여 계약금 7억 원, 연봉 5억 원 등 3년 총액 22억 원에 재계약을 선물했다. 이는 국내 지도자 가운데 역대 최고 대우였다.
 
디펜딩 챔피언 입장에서 맞이한 2023시즌에는 다소 기대에 못미쳤다. 시즌 초중반까지 선두권을 형성했으나 7월 이후 성적이 서서히 하락하면서 5강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간신히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하며 가을야구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준PO에서 4위 NC 다이노스에게 충격적인 '스윕 앤 업셋'을 당하며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지난 시즌에 비하여 김원형 감독의 경기운영과 선수기용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부 SSG 팬들 사이에서는 김원형 감독의 지나친 베테랑 의존과 올드한 경기운영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감독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난은 어느 프로 감독에게나 존재하는 레퍼토리였고, 야구계에서 통합우승 감독을, 그것도 재계약 1년 만에 경질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SSG는 정말로 김원형 감독을 내치면서 이 세계에서 불가능한 시나리오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 정용진 구단주가 개인 SNS에 쏟아진 일부 SSG 팬들의 감독 경질요구에 "나도 알고 있으니 기다려보라"는 의미심장한 뉘앙스의 답글을 단 것은 복선이 됐다.

재계약 1년 만에 경질된 통합우승 감독

김원형 감독 개인의 능력과 공과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구단이 팀의 발전을 위하여 감독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면 그것은 구단의 고유한 권한이다. 다만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타당한 명분과 절차, 원칙이 갖춰져야 했다.
 
김원형 감독이 굳이 잘려야만 했던 명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계악 첫해 5강 진출조차 실패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올해보다 더 심각했지만 정작 그때는 김 감독을 신임했던 구단이다.

SSG가 지난 시즌 우승 직후 김 감독과 역대 최고 대우로 재계약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감독의 능력을 신임했다는 의미다. 그동안 선수단 장악이나 개인사 등에서 큰 구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김 감독을 경질한 것은, 바로 그를 임명한 구단주와 프런트 역시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자승자박인 셈이다.
 
SSG 측은 김 감독을 경질한 사유가 성적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 시즌 우승, 올해 3위를 기록한 감독을 성적 때문에 자른다고 하면 누가 봐도 이유가 궁색하다.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성적과 상관없이 언제든 감독이 잘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SSG가 성적 대신 내세운 감독교체의 명분은 '변화, 혁신, 세대교체'다. 그런데 하나같이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추상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막연히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한다고 세대교체가 되는 것일까? 불과 1~2년 전까지 추신수같은 노장 선수를 수십억에 영입하고 구단주의 야구 사랑을 과시하며 '윈나우'을 압박하는 분위기였던 것은 SSG 구단이었다.
 
설사 김 감독의 야구가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맞지 않아서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예의가 필요했다. 엄연한 계약기간이 있고, 감독은 현장을 대표하는 리더이자 전문가로서 그에 걸맞는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첫 우승을 이룬 공로와 상징성 등을 감안할 때 상호합의하에 결별 같은 좋은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SSG는 일방적으로 김 감독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김 감독은 해임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명백한 '토사구팽'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는 곧 프로 감독의 계약기간이란 휴지조각과도 같으며, 언제든 무슨 사유로든 버림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자연히 이는 후임 감독에게도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승 감독까지 하루아침에 경질시킨 마당에, 과연 얼마나 대단한 후임자를 감독으로 데려오겠다는 것인지 야구계와 팬들은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메이저리그 출신인 박찬호와 추신수가 유력한 차기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루머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출신이지만 전문 코칭 경험은 전무하다. SSG는 이들의 후보설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전임자의 선례가 있으니 SSG 후임 감독은 구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야구철학을 소신껏 펼쳐보이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으며, 우승을 해도 토사구팽 당할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감수해야 한다. 대체 SSG가 내세운 변화와 혁신의 실체는 무엇인지, 이제는 구단이 대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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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형감독 SSG랜더스 경질 후임감독 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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