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기를 치르면서 최소 10명 이상의 선수가 출전하는 야구나 축구에서는 선수 한 명이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진 않다. 아무리 전성기의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 CF)라도 매 경기마다 5~6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전선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농구나 배구에서는 마이클 조던이나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처럼 선수 한 명이 팀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현재 여자프로농구에서 팀과 리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단 한 명의 선수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농구팬들이 KB스타즈의 박지수를 이야기할 것이다. 실제로 프로 출범 후 단 한 번도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던 KB는 박지수와 함께 했던 최근 7번의 시즌에서 두 번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박지수는 세 번의 정규리그 MVP와 두 번의 챔프전 MVP를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수를 거느린 KB는 지난 시즌 10승20패(승률 .333)의 초라한 성적으로 6개 구단 중 5위에 머물렀다. 박지수가 공황장애 여파와 손가락 부상이 겹치면서 단 9경기 출전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즌 동안 '안식년'을 보낸 KB는 이번 시즌 다시 강력한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특별한 이유는 따로 없다. 단지 리그 최고의 선수 박지수가 새로운 등번호 7번을 달고 '건강하게'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뼈저리게 느낀 '에이스' 박지수의 공백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수는 몇몇 국제대회와 박신자컵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수는 몇몇 국제대회와 박신자컵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KB는 2017-2018 시즌부터 2021-2022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정규리그에서 121승37패(승률 .766)라는 엄청난 성적으로 두 번의 챔프전 우승과 세 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WKBL 무대를 지배했다. 이 기간 동안 KB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구단은 같은 기간 KB보다 1승이 부족한 120승을 기록했던 우리은행 우리원 뿐이다. 그리고 KB가 WKBL의 강호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박지수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분당경영고 시절부터 성인대표팀의 주전센터로 활약했을 정도로 떡잎부터 남달랐던 박지수는 2016-2017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B에 입단했다. 첫 시즌 신인왕을 수상한 박지수는 세 번째 시즌에 KB에게 프로 첫 챔프전 우승을 안기며 역대 최연소(만20세3개월5일) MVP에 등극했다. 박지수는 2018년4월 WNBA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해 2라운드5순위 지명을 받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WKBL과 WNBA,그리고 대표팀을 오가며 '세 집 살림'을 하던 박지수는 2021-2022 시즌 새로 합류한 강이슬과 뛰어난 호흡을 과시하며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대표일 일정을 소화하던 작년 7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박지수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는 여자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에게는 물론이고 박지수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던 KB에게도 엄청난 악재였다.

박지수 없이 시즌을 시작한 KB는 지난 시즌 하위권을 전전하며 위기에 빠졌다. 박지수가 없어도 최소 중위권 경쟁은 가능할 거라던 농구팬들의 예상이 크게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나원큐와 최하위를 다투는 신세로 전락한 KB는 작년 12월17일 그토록 기다렸던 박지수가 코트에 복귀하면서 대반격을 시작하는 듯 했다. 실제로 KB는 박지수 복귀 후 9경기에서 6승3패를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박지수는 2월 1일 하나원큐전에서 왼쪽 중지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아웃판정을 받았고 KB는 결국 10승20패, 정규리그 5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KB가 정규리그 5위에 그쳤던 것은 변연하(BNK 썸 수석코치)가 부상으로 7경기 출전에 그쳤던 2010-2011 시즌 이후 12년 만이었다. 그리고 KB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탈락한 후 우리은행은 어렵지 않게 통산 1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박지수 컴백-강이슬 재계약, V3까지 간다
 
 3년 계약으로 KB에 잔류한 강이슬은 이번 시즌 빼앗긴 '3점슛 여왕' 자리를 되찾으려 한다.

3년 계약으로 KB에 잔류한 강이슬은 이번 시즌 빼앗긴 '3점슛 여왕' 자리를 되찾으려 한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한 박지수는 지난 6월 대표팀에 복귀해 파리 올림픽 예선과 박신자컵,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차례로 출전했다. 비록 한국 여자농구는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내는데 실패했지만 KB 입장에서 박지수의 복귀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쁜 소식이었다. 박지수 입장에서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실전경기를 소화하면서 지난 시즌 부상 등으로 부족했던 운동량을 채울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됐다.

KB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두 번째 FA자격을 얻은 슈터 강이슬과 계약기간 3년에 연봉 총액 3억5000만원의 조건에 FA계약을 체결했다. 2년 전 강이슬을 영입했을 때보다 연봉은 4000만원 줄어 들고 계약기간은 1년 늘었다. 지난 시즌 5시즌 연속으로 지키던 3점슛 1위 자리를 이소희(BNK)에게 내준 강이슬은 29.9%까지 떨어졌던 3점슛 성공률을 다시 예년 수준으로 끌어 올리면서 빼앗긴 3점슛 여왕 자리를 탈환하려 한다.

KB의 FA시장 움직임은 강이슬 재계약에서 그치지 않았다. KB는 지난 4월 하나원큐에서 FA자격을 얻은 포워드 김예진을 계약기간 3년, 연봉 8000만원의 조건에 영입했다. 김예진은 프로 입단 후 네 시즌 동안 출전시간 10분을 넘기지 못하다가 2021-2022 시즌 21분, 지난 시즌 24분의 출전시간을 기록한 대기만성형 선수다. 화려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있지만 지난 시즌 스틸 1위(1.9개)에 올랐을 정도로 외곽 수비에서는 장점이 확실한 선수다.

주전도약 첫 시즌이었던 2021-2022시즌 어시스트 2위(5.64개)에 오른 데 이어 지난 시즌에도 어시스트 3위(5.23개)를 기록한 허예은은 안혜지(BNK)와 WKBL을 대표하는 젊은 포인트가드다. 허예은은 입단 당시부터 장점으로 꼽히던 돌파력과 패싱센스에 경기를 풀어 나가는 노련미와 경험까지 쌓이며 기량이 부쩍 성장했다. 다만 통산 26.7%에 불과한 3점슛 성공률을 조금 더 끌어 올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력적인 포인트가드가 될 수 있다.

흔히 직전 시즌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이 비 시즌에 눈에 보이는 전력강화를 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에도 자연스럽게 하위권으로 분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KB는 단지 부상선수 한 명이 복귀한다는 이유로 다크호스도 아닌 우승후보로 분류되고 있다. 돌아오는 선수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현존하는 WKBL 최고의 선수 박지수이기 때문이다. 과연 박지수가 돌아오는 KB는 이번 시즌 5연속 7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했던 과거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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