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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증세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제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꽉 막힌 증세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제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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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복합적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한국의 세수는 항상 부족하다.

2020년 기준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24.2%를 조세로 걷었는데 한국은 20.0%에 그쳤다. 세금에 사회보험료까지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각각 OECD 평균이 33.5%, 한국이 27.9%였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세수입이 4.2%p, 사회보험료가 1.4%p 적다. 한국의 GDP가 2천조 원 정도이므로 단순하게 OECD 평균 수준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84조 원 정도를 더 걷을 수 있다. 이렇게 증세할 만한 여유가 큰 편인데 왜 이렇게 증세하기가 어려운가?

꽉 막힌 증세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제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횡재세, 데이터세, 로봇세, 탄소세... 새로운 세금, 새로운 상상력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위기, 고금리가 이어져 대다수 시민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앉아서 고수익을 올린다. 이들에게 한시적으로 세금을 걷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횡재세(Windfall Tax)이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상의 초과 이익을 얻은 법인에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도록 설계된다. 외부 요인으로 과도하게 누린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게 하자는 의미다. 특히 유럽에서 코로나19 위기 중에 널리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횡재세는 대부분 에너지 기업에 부과된다. EU 27개 회원국 중 24개국은 자국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이미 부과했거나 부과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유가가 폭등해 에너지 기업의 이익이 폭증한 것을 '횡재'로 본 것이다. 최근에는 고금리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은행권도 횡재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8월 7일 은행에 대한 횡재세 부과 방침을 밝혔다. 체코·리투아니아·스페인은 이미 은행에 횡재세를 징수하고 있다. 횡재세는 더 많은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 헝가리에서는 제약업체, 포르투갈은 식품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횡재세를 걷거나 걷으려 계획 중이다.

전체 세수입에 비했을 때 횡재세의 세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다. 따라서 횡재세 수입으로 복지지출을 대폭 늘릴 수는 없다. 다만 세금의 취지가 조세정의 차원에 부합하고 그만큼 의미 있게 돈을 쓸 수 있다.

한국에서도 21대 국회에서 정유사와 은행 등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이성만 의원(무소속)은 석유정제업자·액화석유가스 집단공급사업자를 대상으로 초과 소득에 20%의 세율로 횡재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정유사와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초과 이익에 50%의 세율을 적용하는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두 개정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유럽의 횡재세 부과 사례
 유럽의 횡재세 부과 사례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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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세 외에도 데이터세·로봇세·탄소세 등 여러 가지 세금이 논의되고 있다. 데이터 관련 기업은 개인과 국가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안되는 세금이 데이터세다. 개인이 제공한 원시 데이터를 기업이 사용할 때 정부가 그 사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데이터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얼마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할지, 세수입을 일반 재원으로 사용할지 아니면 정보제공에 동의한 개인들에게 분배할 것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로봇세는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으로 로봇 도입 혹은 자동화 유인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세수는 로봇화로 인해 소득을 상실한 노동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로봇세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무엇을 로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업들에 의해 세금의 취지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생산과정에 지능형 로봇이 대거 들어오지는 않은 자동화 1단계 상황이다. 따라서 로봇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계 설비'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데1) 이렇게 정의한다면 로봇세는 결국 보유한 기계설비만큼 기업에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자본 중에서 토지와 같은 비(非)기계설비를 우대하는 결과가 되어서 자칫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로봇세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로봇'을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반면, 탄소세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더 신속히 도입할 세금이다. 많은 국가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세를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하고 있다. 탄소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통·에너지·환경세를 없애고 새롭게 탄소세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고,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탄소세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탄소세의 최종적인 모습이 동일하다면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은 전환과정만 다를 뿐이다. 최종적인 모습이란 휘발유·경유·유연탄의 상대적 세율을 탄소 배출량에 비례하여 결정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적정한 수준에서 평균 세율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탄소세는 탄소배출 감소가 목적이기 때문에 가계나 기업은 탄소배출을 하는 만큼 세금을 물게 된다. 이 때문에 조세저항이 클 수 있다. 따라서 탄소세 일부를 '탄소배당'으로 분배해서 열심히 탄소배출을 줄인 사람에게 일종의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실제로 스위스는 탄소배당을 지급함으로써 탄소세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고 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었다.2)

부자혜택 구멍 막고 사회연대세 도입하자
 
지난 2022년 11월 26일, 민주노총·참여연대·진보당·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기본소득당이 '횡재세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26일, 민주노총·참여연대·진보당·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기본소득당이 '횡재세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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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에서 검토한 세원들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대규모의 세수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세원들은 그 자체로 의미 있지만, 그와 독립적으로 복지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증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증세는 기존 세제를 강화해야만 가능하다. 현재 한국의 세제가 누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진도를 낮추는 여러 '부자혜택'적 제도들이 포진되어 있다. 따라서 우선 이를 개편해 조세정의를 높이는 방식으로 일정 정도 증세를 이룰 수 있다.

한국은 비과세감면 제도가 과도하게 많고 고소득 가계와 대기업에 그 혜택이 돌아가는 비중이 높다. 소득세의 경우 소득이 분리과세되어 누진도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2천만 원 아래의 이자와 배당소득은 종합과세되지 않는다. 근로소득이 많은 사람이 금융소득도 많다는 점에서 이러한 제도는 고소득·고자산가들에게 유리하다. 또한 자산 매매 시에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약한데 이 역시 자산이 많은 계층에게 과도한 감세 혜택을 주고 있다.

이처럼 조세정의에도 어긋나고 세수입을 줄이는 조세 제도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 조세의 누진성을 높이는 개편을 먼저 진행하고, 지출 효율성을 높이고, 자연 증세를 활용하면 그래도 이전보다는 빠른 속도로 세수입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빨리 복지 증세를 하려고 한다면 더욱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그때에도 새로운 세금의 도입에 의존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사례로 드는 것이 프랑스의 일반사회보장세(CSG, Contribution Sociale Généralisé)이다. 이는 모든 소득에 비례세로 세금을 걷고 그 수입으로 저소득층의 사회보험료를 대신 납부하는 방식이다. 역진적 성격의 증세이지만 복지에 사용하겠다는 취지를 명확히 하여 노조의 찬성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도입했다. 프랑스는 원래 소득세 세수 비중이 매우 작았는데 CSG를 도입함으로써 단기간에 소득세 비중을 획기적으로 제고했다(1990년 4.4%→2018년 9.4%).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현행 직접세에 일정 비율 세액을 부가해 추가로 세금을 걷는 부가세(surtax) 형태로 사회연대세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 소득세의 10%를 지방소득세로 내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복지를 위한 증세임을 확실히 하고, 직접세를 대상으로 삼으면서 어떤 방식으로 소득을 얻거나 자산을 보유하든 상관없이 모든 납세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종합부동산세의 세액을 과세표준으로 삼아 납부세액의 10%를 세율로 부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복지 증세, 누진적 보편증세를 적극 제안함으로써 조세저항을 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관련기사]
대단히 이례적인 '트리플 위기'의 주범, 윤석열 정부 https://omn.kr/266vy
'내 세금을 왜 그런 데 쓰냐'는 질문에 답한다 https://omn.kr/266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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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범교, 2018, '기술발전과 미래 조세체계: 로봇세를 중심으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 백수연, 2021, '탄소세 논의 동향', 나보포커스 제34호, 국회예산정책처
    

덧붙이는 글 | 글 정세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1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횡재세, #데이터세, #로봇세, #탄소세, #사회연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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