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영화영상인연대에서 지역영화 지원사업을 통해 발행하는 < Secene1980 >

광주영화영상인연대에서 지역영화 지원사업을 통해 발행하는 < Secene1980 > ⓒ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지난 7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 대상을 수상한 대구 유지영 감독.

지난 7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 대상을 수상한 대구 유지영 감독. ⓒ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광주영화영상인연대에서 계간 형태로 발행하는 < Scene 1980 >은 2019년 11월 창간호 이후 지난 7월까지 14호를 발간했다. 영화잡지가 대부분 사라진 시대, 지역영화를 중심으로 비평과 정책, 다른 지역 소식 등을 담아내는 특별한 영화전문지는 신선함을 안겨줬다. 지역영화의 대내외적인 소통에 소중한 역할을 감당하는 중이다.
 
2021년 전북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장편영화 <희수>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감정원 감독의 작품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을 향한 작은 지원이 이뤄낸 큰 결실이었다. 57회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프록시마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한 장편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유지영 감독은 지역영화의 비중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들 지역영화의 성과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사업이 이뤄낸 대표적인 성과들이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에서는 12억에 불과한 지원이 없어지면서 지금까지 이뤄낸 모두 성과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감정원 감독은 "지역영화를 키운 것은 영진위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과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인데, 정부 예산 삭감은 지역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수진 < Scene 1980 > 편집장은 "지역영화 사업을 통해 잡지 발행이 가능했었는데, 갑자기 예산이 없어진다고 하면 계속 발행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겉모습만 증가, 실제는 대폭 삭감
 
2024년 영진위 예산(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국내 영화제 예산 절반 삭감에 반발해 부산, 전주, 부천영화제 등 국내 50개 영화제가 먼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관객과 독립영화 단체 등의 후속 연대 항의 서명도 예고된 상태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지원 삭감 문제도 심각하다. 영진위 등에 따르면 2024년 국내·국제영화제 지원예산이 50억 2000만 원에서 내년에는 24억으로 52.2% 삭감될 예정이다. 기존 40개 영화제가 지원을 받았으나, 20개 정도로 절반 줄어들게 된다.
 
이는 박근혜 정권 당시의 블랙리스트보다 더 심각한 후퇴다. 2017년 예산에서 '국제영화제 예산'은 40억 대에서 25억으로 40% 정도 삭감됐다. 세월호 다큐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 과정에서 당시 정권의 보복이었음이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에서 당시 청와대가 주도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국내영화제 지원예산의 경우 4억 2000만 원 정도였고. 둘을 합하면 29억이었다.
 
2024년 영진위 예산(안)은 여기서 한참 더 후퇴한 것으로, 기존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아예 예산 자체를 없애버리는 게 기본이 됐다. 사실상 한국영화 특히 독립영화 말살 정책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고 영진위 전체 예산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비록 미미한 수준이지만 올해 850억에서 855억 정도로 5억 정도 늘었다. 문제는 올해 729억 전체가 영화산업 육성 및 지원 사업비로 책정됐다면 내년 예산에는 463억으로 270억 가까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80억 원이었던 영화투자조합 예산이 일반회계로 바뀌면서 250억으로 늘어났고, 로케이션 지원 등 신규 사업이 생기는 과정에서 그만큼 다른 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이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올해 지원사업 전체와 비교해 보면 실질적 삭감 비율은 30%에 달한다. 영화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어진 블랙리스트의 만행을 윤석열 정권이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체부 장관에 유인촌 특보를 내정한 것은 블랙리스트 시대가 다시 시작됐음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될 정도다.
 
지난 15일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유인촌 장관 내정 철회요구 기자회견에서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는 "지역영화 예산 삭감 등과 관련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의혹들이 유 후보자를 다시 한 번 문체부 장관을 시킨다는 발표로 해소됐다"며 "유 장관 내정은 한류 파괴"라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 "블랙리스트 의혹 유인촌, 인사청문회 말고 검찰에 가야" https://omn.kr/25nns)
 
"팔 걷어붙이고 돕겠다" 대통령 약속은 허언이었나
 
이번 영진위 예산(안)의 지원사업 대폭 삭감은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정책을 날려버리려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지역영화 지원예산의 경우 항목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여서, 앞으로 신규 예산으로 다시 편성되려고 해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한 지역 영상기구 관계자는 "영진위가 지역 관련 정책 아젠다를 만들고 사업화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아직도 과정 중에 있다"면서 "만들기는 어려운데, 끝내는 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정성우 집행위원장은 "전남과 목포에서 지역영화 문화 활동과 독립영화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영진위 정책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아무런 기반이 없던 전남의 유일한 희망으로 시나리오를 통해 단편영화도 만들게 됐는데, 이 모든 기반이 무너질 위기라는 것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부 독립영화인들은 "지역 말살 정책이다"라고 주장할 만큼 격앙된 분위기다. 금강역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대현 감독은 "정부가 지역 소멸을 막겠다며 지역 살리기 예산에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데, 12억에 불과한 예산을 더 늘리지는 못할망정 아예 없애고, 이걸 성명서 내고 항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창피하다"고 말했다.
 
배우 송강호 만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영화관계자 초청 만찬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와 사진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배우 송강호 만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6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영화관계자 초청 만찬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송강호와 사진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연합뉴스


문체부는 예산 삭감과 관련해 "방만한 보조금 운영, 낭비적 요소, 이권카르텔적 요소를 점검하고 불공정, 비합리, 비효율을 제거했다"며 "재정지원사업 선정과정에서 전문성 또는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거나, 집행상의 비효율성이 중대한 사업에 대해 분야를 막론하고 폐지, 삭감했다"는 입장이다. 문체부의 한 실무관계자는 "모든 지역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며 영화 쪽만 삭감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과가 있는 사업마저 무분별하게 예산을 삭감했다는 비판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올해 대비 3.5% 증가한 문체부 예산(안)과 비교해 실질적인 사업비가 30% 정도 깎여나간 영진위 예산(안)은, 독립영화와 지역영화 말살이라는 영화계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칸영화제 수상자들에게 만찬을 베풀며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일이 있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도와드리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허언에 불과했던 셈이다.
영화 예산 독립영화 지역영화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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