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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말들> 책 앞표지
 <엄마의 마지막 말들> 책 앞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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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의 보호자이자 관찰자이자 기록자였다.'

고전학자인 박희병 서울대 교수가 307일 동안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소멸해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을 기록한 책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 인지저하증을 앓고 계셨지만 구십 년의 생을 마무리할 때까지 주체성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셨다. 작가는 어머니께서 병상에서 하신 말씀들을 아들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가치를 부여했다. 짧게 뱉어낸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았으며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제된 언어로 담담히 써 내려간 기록이지만 그 어떤 인문학서보다 깊이 있고,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기에 충분한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료시스템의 현실

또한 이 책은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의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개선점을 제시하고 있다. 병원에 따라 환자들을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나 돌봄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요양병원은 적극적인 의료 행위를 하는 의료기관이다. 반면에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고통을 덜 느끼면서 사시다 가시게끔 하는 케어(Care)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생명 연장을 위한 개입이 없다. 장애나 불편이 있으면 치료를 해주는 정도에 그친다.

요양병원과 요양원도 차이가 있다. 요양병원은 의사나 한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병원인 반면, 요양원은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시설이다. 사실 '요양'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요양 시설을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삶의 종착역,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감옥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요양병원이 아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한 작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환자의 상태는 호전될 수도, 악화될 수도 있다. 죽음을 앞당길 수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사물화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죽어가는 시간도 인간 삶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인의 눈에는 호스피스 병실의 환자들이 생활도 없으며 그저 죽음을 대기하고 있는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건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분들에게도 나름의 생활이 있으며 남루한 삶이지만 삶이 영위되고 있다. 그러니 무시하거나 얕보아서는 안 되며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 존중과 배려는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91쪽)

어머니의 사투리

작가의 어머니는 병상에 계시는 동안 사투리를 자주 구사하셨다. "내가 아파 니 기 챈다", "니가 내 때문에 많이 에비따", '기 채다'는 '귀찮게 한다, 힘들게 한다'는 뜻이고 '에비따'는 '여위었다, 수척해졌다'라는 뜻이다. 평상시에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언어들이 병상에 계신 어머니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아들은 말한다. "아입니더 그런 말 마이소" 어머니의 옛스러운 말들은 아들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 속으로, 추억의 파편들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말들은 의미가 해독되지 못했을 뿐 결코 의미 없는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을 통해,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됐다. 엄마의 마지막 선물이다.

엄마는 생의 마지막에 내게 큰 공부를 시키신 것이다(200쪽)'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자잘하고 사소한 말들을 뱉으셨지만, 어머니의 말들 속에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고 무게감과 큰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느낀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으셨던 어머니는, 죽음의 과정에서도 배려의 힘을 보여주셨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죽어가는 것 역시 삶의 과정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 내시려는 것처럼.
 
엄마의 죽음의 과정은 삶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즉 엄마가 평생 살아온 과정과 방식이 죽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결정했다.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평생 늘 해오신 말들을 했고 
늘 해오신 걱정들을 했으며 늘상 눈을 주곤 했던 대상들에 눈을 주셨다.
엄마 평생의 사랑의 방식은 죽어가는 과정에도 관철되었다.
나는 이 점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397쪽)

고령화 시대의 삶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또한 중요한 화두가 됐다. 주체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령자들을 위한 의료복지와 사회적 시스템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을 누군가의 사적인 기록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원하는 죽음의 방식은 무엇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더불어, '나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과 예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질문까지 확장시킨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주체성을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박희병 교수 어머니의 삶을 존경하게 된다.
 
엄마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끝까지 인간으로서 버티며 의미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스스로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힘겹고 어려운 일이었으며 가족과 의사와 간호사와 간병인, 그리고 의로 체계가 돕고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가족의 이해와 협조, 세심한 판단이 없다면, 의사와 간호사의 윤리의식과 헌신적인 보살핌,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정의된 의료 행위가 없다면, 간병인의 주의 깊고 적절한 돌봄이 없다면, 호스피스 의료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뒷받침과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398쪽)

한 인간의 아름다운 죽음을 목도하면서 이미 세상을 떠난, 혹은 함께 하고 있지만 와병 생활을 하고 있는, 아직은 건강하지만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체득하고 흡수하고 새로운 형태로 발산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해 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

박희병 (지은이), 창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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