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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9일 정부는 2024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 중 연구개발 예산은 31조1000억 원에서 5조 2000억 원이 감소된 25조 9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전년 대비 삭감률은 16.6%에 달한다. 연구개발 예산은 그동안 연평균 10.9% 증가하여 왔다. 예산이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 벌어지는 일이다.

정부의 예산 삭감 움직임에 과학계에서는 잇달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과학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은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서울대, 고려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 총학생회는 '과학자를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성명을 주도적으로 준비한 KAIST 학부 총학생회 강동재 회장과 KAIST 대학원 총학생회 이동헌 회장을 지난 8월 30일 KAIST에서 만났다. 성명을 준비한 이유와 바라는 점을 들어봤다. 
  
"대한민국 이공계 미래를 위해선 R&D 예산 삭감 안돼"
 
강동재 KAIST 학부 총학생회장(왼쪽)과 이동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
▲ KAIST 학생회 대표자 강동재 KAIST 학부 총학생회장(왼쪽)과 이동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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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 성명서를 준비하면서 여러 과정이 있으셨을 텐데요. 우선 어떤 계기로 성명을 발표하게 되셨나요?

강동재 : "과학기술혁신본부에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주요 사업비 삭감을 통보했다는 내용을 8월 9일자 기사로 접했습니다. 저희 총학생회 차원에서 보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과학자로서 연구를 하는 데, 굉장히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안을 들여다보면서 과학자들에 대한 존중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명문을 작성해서 다른 학교들의 연대를 이끌어냈고 여러 학부·대학원 총학생회가 연대하여 성명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 이번 정부의 발표가 과학자로 성장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셨는데요.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시나요?

강동재 : "카이스트는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입니다. 현재 많은 분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추후 과학자로서 혹은 연구원이나 산업계에서 과학 기술을 활용하는 직업을 갖는 것을 꿈으로 삼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이 학생들에게 갑작스러운 R&D 예산 삭감은 현재, 그리고 나중에 해야 할 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공계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은 지금도 본인의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고, 진로·직업 그리고 '연구'라는 일 자체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자리의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넘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학생들의 뜻이 꺾이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현실적으로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위한 투자가 줄어들고 이것이 도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큽니다.

많은 이공계 학생이 성명문에 뜻을 모은 이유는 이러한 내용에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단순히 학교의 예산이 줄어든다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이공계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산 책정, 현장 존중하고 의견 조율하는 과정 필요"
 
김동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지난 8월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수영 행정국방예산심의관, 김언성 재정정책국장,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 김동일 예산실장, 유병서 예산총괄심의관, 조용범 사회예산심의관, 황순관 경제예산심의관.
 김동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이 지난 8월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관련해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수영 행정국방예산심의관, 김언성 재정정책국장,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 김동일 예산실장, 유병서 예산총괄심의관, 조용범 사회예산심의관, 황순관 경제예산심의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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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사회적 이슈가 됐었는데요. 이런 현상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을까요?

강동재 : "본인의 꿈과 일자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안정성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연구에 큰 뜻을 품고 있는 학생들에게 국가의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본인의 미래와 직업 자체에 대하여 안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장 이 사안 하나만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이 줄어들고 이공계 기피 현상도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카이스트의 예산도 당장 삭감된다고 하는데요.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는 바로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원생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동헌 : "지금 대학원생들에게는 출연연의 예산이 줄어드는 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일반적인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서 외부 과제를 위탁 용역 받으면 저희가 참여연구원으로 들어가 과제를 수행하는데요. 출연연 예산 20%가 삭감되면 과제 5개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대학원생 5명이 일하고 있다고 치면, 한 명은 아예 과제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러면 그 학생은 생활적인 측면에서 타격이 큽니다.

이미 몇몇 대학원생 같은 경우에는 과제를 줄여나가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고요. 타 연구실에서는 '어떤 과제가 위험하다더라'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이 사건 하나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이탈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일들이 하나씩 쌓여가다 보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입장에서 '굳이 이공계 안 가도 되겠다'는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가면 갈수록 이공계 기피가 심화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이번에 성명을 발표하신 것을 보니까요. '존중'이라는 두 글자가 인상 깊었습니다. 현재 과학자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나요?

강동재 : "기사를 통해 접하기로는 대통령님께서 과학 기술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각 출연연에서 예산을 작성할 때 5% 정도 증액하여 준비하였고 무난한 통과를 예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주요 사업비가 25% 내지 30% 정도 삭감된 예산안을 전달받았고, 이 과정에서 소통과 존중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이 삭감되어야 한다면 과학자들과 함께 논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 있어 현장을 존중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동헌 :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만약 지침 자체가 단순하게 예산을 줄일 테니까 기관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지, 새는 돈을 어떻게 줄일지 현재 과학자분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수립하면 좋겠습니다."

"R&D 예산 삭감, 재고돼야"

- 이번에 연구개발 예산을 줄인 것이 몇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요. 과연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옳은 일일까요?

강동재 : "과학 기술의 발전을 위해선 확실한 결과 혹은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연구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실한 결과에도 투자하고 실험을 해야 창의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예산을 비롯해 국가가 도와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과학자들이 걱정 없이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 있어서도 예산 삭감은 재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동헌 : "예산안이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내년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봅니다. 그 측면에서 R&D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것은 미래를 설정하는 방향의 변화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자체가 지금 OECD 국가 중에서 GDP 대비 수출 비중이 되게 큰 수출 중심의 무역 국가입니다.

수출 품목은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등 첨단 산업 비중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광물도 부족하고, 인적 자원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R&D에 투자를 많이 해서 국가 경쟁력을 살려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산안이 삭감된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요?
 
이동헌
: "이공계에 온 지 이제 10년이 됐습니다. 중학생 때는 '왜 한국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을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원에 와서 연구하며 느낀 점은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린다는 점이에요. 어떤 연구든 위에서 쌓아온 데이터도 있어야 하고, 실험 방법론이나 같이 연구하는 동료들의 높은 수준도 필요합니다. 연구 문화도 조성이 되어야 하고요.

그런 연구 인프라 구축이 최소 50년이나 100년 정도 걸립니다. 노벨상을 말씀드렸는데요.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 대부분 연구 인프라 구축에 100년, 200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나라들에서 바로 창의적인 연구가 많이 나오는데요.

우리나라는 이제 50년 정도 이공계에 투자했습니다. 단기간에 서구 영미권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 견줄만한 인프라 구축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연구 환경 부분만큼은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는 단순히 재정을 투자하고, 사람을 많이 뽑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결국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 친구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친구들이 이공계 대학 혹은 대학원을 선택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운 벽들이 있습니다. 그 벽을 뚫어주는 게 이공계에서 많은 성과를 내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태그:#KAIST, #R&D,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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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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