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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 8월, 일본과 중국을 다니며 현지 전문가를 연이어 만났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한중일 3국 상황으로 이어졌다. 박원서 쓰촨성 청두(成都) 한중글로벌센터장과 염종순 오사카지사 고문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엇보다 교포사회가 우려하는 건 한일, 한중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는 정치인들의 편협한 행태였다. 국익을 앞에 놓고 고민하기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혐중과 반일을 부추기는 바람에 현지에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역사 속에서 애증관계를 반복해왔다. 때로는 한 몸처럼 움직이다 결정적 순간에는 반목을 거듭했다. 우리에게 일본과 중국은 멀리하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덥석 껴안기도 애매한 관계다. 어느 나라보다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게도 구럭도 잃는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현지에서 접한 진영 정치로 인한 파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치권의 섣부른 태도 때문에 한일, 한중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황이다.

염종순 오사카 지사 고문은 "일본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확산돼 다행이다"고 평가하면서도 "이 때문에 불안감하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1당을 유지할 경우 정부 정책과 각을 세울 수밖에 없기에 지금보다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 정부는 '친 중국, 반 일본' 기조를 유지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친 일본, 반 중국'으로 전환했다. 외교정책 뒤집기로 인한 파장은 기업과 교포사회로 전가됐다.

박원서 청두 한중글로벌센터장은 "윤석열 정부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이 쏟아질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사드와 코로나19로 10년 가까이 어려움을 겪었기에 새 정부에서 분위기 전환을 기대했다. 하지만 반 중국 기조가 계속되면서 암울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대중국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요즘 일본 경제는 활기를 띠고 있다. 30년 침체에서 벗어나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다. '닛케이 지수'는 연초 2만5000대에서 출발해 3만3000을 돌파했다. 누적 30%가 넘는 가파른 상승이다. 지난 3월 말 이후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외국인 순매수 자금만 4조엔(36조원)에 달한다. 경제 성장률 또한 예사롭지 않다. 1분기 실질 경제 성장률은 0.7%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2.7%다. 우리나라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1.4%와 비교하면 두 배 수준이다. 상장 기업 순이익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여기에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을 타고 20조원이 넘는 반도체 관련 투자가 이어졌다. 엔저와 제로 금리에 기댄 일시적 현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우리 상황에 비춰 부럽다.

이에 비해 지난 30년 동안 흑자를 유지해왔던 중국 시장은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대 흑자 국에서 최대 적자 국으로 떠올랐다. 전체적인 수출 실적도 급감했다. 올해 6월까지 대중국 누적 적자액만 280억 달러에 달한다. 전체 수출 규모 감소 원인으로 대중국 수출 감소율(-20.6%)이 지목된다. 물론 대중국 적자를 온전히 외교 정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대중국 정책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중국 내 유일한 외국어 광고 간판인 "청두를 사랑합니다"
▲ 청두를 사랑합니다 중국 내 유일한 외국어 광고 간판인 "청두를 사랑합니다"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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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정부가 합작해 설립한 청두 한중혁신창업단지는 생생한 사례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양국 지원 아래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이 많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면한데 이어 사드와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사면초가에 처했다. 한류를 알리는 쇼룸까지 갖추고 중국 현지인들로부터 관심을 모았던 이곳은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인근 대로변 '청두를 사랑합니다'라는 한글 광고는 온탕과 냉탕을 오간 한중 관계를 상징한다. 중국 정부는 외국어 광고를 허가하지 않는다. 쓰촨성 한글 광고는 중국 내 유일하다. 그만큼 좋았던 시절을 알 수 있는 흔적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외교정책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널뛰기를 반복한다면 신뢰를 구축하기 어렵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을 뒤집거나 지지층 결집을 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건 단견이다. 일본 실리 외교는 좋은 반면교사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덕분에 수혜를 입었음에도 노골적으로 편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교역량은 2021년 코로나19 와중에도 불구하고 39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외교 덕분이다.

이와 달리 우리 정부는 정책 뒤집기나 지지층 결집을 목적으로 반일과 혐중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은 소재와 부품, 장비에서 강점이 있다. 또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며 원자재 매장량이 풍부하다. 우리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다. 한쪽을 적대시하거나 노골적으로 편드는 한일, 한중 외교는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다.
 
고층 건물로 빼곡한 청두 시가지
▲ 청두 시가지 고층 건물로 빼곡한 청두 시가지
ⓒ 임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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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태그:#오락가락 외교 정책, #정책 뒤집기, #한중혁신창업단지, #일본 경제 활기, #반일과 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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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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