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렇게 할 거였으면 새만금에서 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강행했으면 부대시설을 잘 갖출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 이렇게 할 거였으면 새만금에서 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강행했으면 부대시설을 잘 갖출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처음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전 세계 청소년 4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 잼버리 야영장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후진적이고 낙후한 모습이었다. 일부 구간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속출하는 온열 환자 발생에 대응하는 정부와 조직위의 모습에 참담한 마음마저 들었다.

1920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그야말로 지구촌 청소년들의 꿈의 무대다.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대원들은 잼버리에 참가하기 위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벼룩시장에 참여하기도 한다. 참가비에 견줄 수 없는 일생일대의 환상적 경험이자 글로벌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폭염은 그렇다 치고, 기본도 안된 행사장

필자도 세계 잼버리는 아니지만 1986년 경주에서 열린 한국 잼버리에 참가했었다. 전 세계는 아니지만 외국 청소년들을 만날 소중한 기회였다. 스카우트의 '준비' 정신과 '일일일선(一日一善)'의 공통된 공감대를 가진 지구촌 친구들과의 만남은 필자가 성장하면서 자긍심과 용기, 도전 정신을 가지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1년 고성 세계 잼버리 이후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159개국 4만여 명이 참가하는 세계 잼버리가 열린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새만금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필자는 '잼버리'그 자체에 흥분했다. 그야말로 대환영의 심정이었다.
  
세계 잼버리가 고통의 잼버리로 전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세계 잼버리가 고통의 잼버리로 전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아프다.
ⓒ 제25회 세계잼버리 공식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내 '왜 새만금에서?'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매립 당시부터 농어촌 용지로 지정된 새만금은 전형적인 간척지다. 물 빠짐이 괜찮은지, 허허벌판과 높은 습도가 잼버리에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믿었다. 허허벌판에 그늘막을 세워 뜨거운 햇빛을 차단하고 숨 막히는 습도는 시원한 바람으로 해소할 것이라 믿었다. 텐트에서 자고 야외에서 활동하는 합동 야영대회의 성격을 가진 잼버리를 성공으로 이끌게 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바로 먹고, 자고, 씻고, 싸는 기본 환경이라는 것을 정부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필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런 잼버리가 한국에서 고통의 잼버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망연자실 지켜보고 있다. 폭염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기진맥진 쓰러지고, 아직 괜찮은 청소년들도 의욕을 잃고 그늘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 새만금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심지어 코로나도 발생한 상황이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러운 화장실과 불이 들어오지 않는 샤워실에 폭염을 피할 마땅한 곳도 부족하다. 야영장에 자라난 풀과 매일 물어뜯는 풀벌레까지.. 정부와 조직위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벌레에 물린 잼버리 참가자의 다리 모습
 벌레에 물린 잼버리 참가자의 다리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핵심은 폭염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

필자는 새만금 잼버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길 누구보다도 바란다. 휴가를 반납하고 지도자로 참여한 각 지역의 대장(스카우트 지도자)들, 조직위원회에 참여해 그야말로 헌신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는 스카우트 지도자들의 그 열정을 알기에 비판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에 근거 없이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항간에 '왜 하필 이렇게 더울 때 잼버리를 하는 거냐'라고 비판하는데 이는 잘못됐다. 합동 야영대회는 나라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지만 청소년들이 참가하기에 여름방학이 낀 7~8월이 보편적인 기간이다. 물론 역대 잼버리 중 12월과 1월에 걸친 겨울에 개최된 적도 있지만 "왜 여름에 잼버리를 하냐"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

잼버리 때는 보통 더웠다. 여름에 열리는 합동 야외 행사다 보니 날이 더워 힘든 것은 사실이다. 때때로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새만금은 더운 게 문제가 아니다. 더위의 성격이 질적으로 다른 심각한 폭염인데 정부가 무능력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 외국 스카우트 대원이 새만금 잼버리 델타구역에서 지친 듯 책상에 누워있다.
 한 외국 스카우트 대원이 새만금 잼버리 델타구역에서 지친 듯 책상에 누워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중환자가 나오지 않았으니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환자가 발생하면 행사를 축소하겠다는 인식에 환장할 노릇이다. 정부(여성가족부)는 마치 자신들이 상관없는 것처럼 '조직위원회에 문의하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대는 3일 성명을 내고 "더 큰 일이 발생하기 전에 행사를 즉각 축소하고 대부분 프로그램을 실내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전북민중행동,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최소한 야영지 내 행사를 전면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온 국민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가슴 졸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잼버리 개최지로 선정된 게 2017년, 6년이라는 준비기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무엇을 한 거냐"는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학교 밖으로 내쳐진 청소년단체

지난 6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청소년단체는 사실상 고사 상태에 빠졌다. 스카우트를 비롯한 다양한 청소년 단체들이 학교 밖으로 사실상 내쳐졌다. '왜 청소년단체 지도자를 학교 교사가 맡아야 하나'라는 교원단체들의 오래된 항의가 그 배경이었다.

전국의 학교에서 청소년단체들이 사실상 퇴출되면서 청소년단체 회원들은 서울 기준 2020년 말 74개 학교 2만 2천여 명에서 2022년 말 432개교에 1만여 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잼버리를 두고 '외국 청소년들을 위한 잼버리가 될까 걱정된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국내 청소년단체의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청소년단체의 글로벌 축제라며 성공을 자신한 것 자체가 지금의 부실 준비 논란과 전혀 상관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청소년단체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공무원들이 중심이 된 조직위가 얼마나 잼버리에 대해 알고 있을지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야영으로 숙달된 스카우트 지도자들의 의견이나 경험이 얼마나 조직위에 반영되었을지도 의문이다.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위원총회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준비기간 내내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며 지금의 혼란은 “예견된 모습”이라고 밝혔다.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위원총회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준비기간 내내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며 지금의 혼란은 “예견된 모습”이라고 밝혔다.
ⓒ 이영일

관련사진보기

 
실제 잼버리 조직위에 위촉직 조직위원으로 참가한 한 위원은 필자에게 "사전 점검을 비롯해 행사 준비과정에서의 관리·감독이 매우 미흡했다"고 전해왔다. 그는 "위원 총회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준비기간 내내 제대로 된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며 지금의 혼란은 "예견된 모습"이라고 밝혔다.

매점을 설치하기 위해 들어간 물품 인프라 비용을 빼내기 위해 시중보다 10% 정도 가격을 올려 세계 청소년들 주머니로부터 충당하려 한 GS25의 천박한 장사 놀음도 비판받아 마땅하다(GS25는 3일 가격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행사 축소 등 발 빠른 조치를

잼버리 현장에 참가하고 있는 한 스카우트 지도자는 필자에게 "스카우트인으로서 이번 잼버리에 휴가를 대신해 봉사하는 입장에서 조직위의 안일한 대처, 운영이 참 가슴 아프다"고 전해왔다.

늘 남을 돕는 사람이 되기 위해 '준비'를 강조하는 4만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우리 정부는 말로만 성공을 외쳐온 것이 드러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배신감의 심정으로 풀이된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 잼버리 병원 찾은 환자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중증 환자가 없고 대부분 경미한 환자라고 말하는 조직위. 중증 환자를 어떤 기준으로 중증 환자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안전을 위해서라면 과도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밝혀 온 정부가 왜 "중증 환자가 발생하면 행사를 축소하겠다"라는 이상한 아집을 부리며 행사를 강행하는지 그 무사안일의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혹여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면 세계적인 비난과 망신의 잼버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 국격을 무너뜨리는 돌이킬 수 없는 그런 일을 모두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자녀를 한국에 보낸 한 해외 학부모는 "아들의 꿈이 악몽처럼 보여서 실망스럽다"며 후회했다고 한다. 국격보다 더 소중한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이 악몽이 되지 않기 위해 행사 대폭 축소 등 발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허둥지둥 내놓는 대책은 왜 미리 준비되지 못했을까. 기막힌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상황을 이겨내고 있는 청소년들과 스카우트 대장들의 헌신과 열정이 상처입지 않길 폭염보다 더 뜨겁게 바라는 마음이다.

태그:#잼버리, #새만금, #스카우트, #폭염, #온열환자
댓글1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